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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에 더 쉽게 빠지는 성격이 따로 있을까

2023.05.13
약통으로 휘감은 인체 골격 모형
Getty Images

지난 90년대 일부 제약 회사에선 ‘중독성 성격(addictive personalit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독성이 강한 진통제 약물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미국 제약회사 ‘퍼듀파마’는 마약성 진통제는 오남용 및 중독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마약성 처방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선보이면서 ‘중독성 성격’인 사람들만 이에 중독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옥시콘틴, 펜타닐과 같이 중독성 강한 마약성 진통제는 1999~2020년 사이에 미국에서만 5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이안 해밀턴 영국 요크대 중독학과 부교수는 특정 성격에 따라 중독될 수도, 중독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러한 주장은 “제약회사들의 입맛에 매우 잘 맞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제약 회사들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 제품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만큼 (성격이) 약하다면, 이는 당신의 문제지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과연 중독에 빠지기 쉬운 성격이라는 게 따로 있을까. 정말 유독 쉽게 중독되는 유형이 있을까.

중독성 성격이 따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는 게 현재 여러 정신과 의사 및 중독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이러한 주장은 중독에 빠져드는 데 개인의 통제력이 거의 혹은 전혀 없다고 정당화할 수 있기에 해롭다고 경고한다.

물론 전문가들 또한 중독과 관련이 있는 특정한 성격적 특성이 있다고 인정하나, 이는 “중독에 잘 빠지는 성격이 있다”는 식의 주장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한 내용이다.

영국 노팅엄 트렌트 대학 소속 저명한 행동중독학 교수인 마크 그리피스는 “중독성 성격”과 같은 말은 “완전히 근거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피스 교수는 “중독성 성격이 따로 존재한다는 소리는 중독만을 부르는 특성이 따로 있다는 소리와 같다”면서 “오직 중독만을 예측할 수 있는 (성격적) 특성이 있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런던 나이팅게일 병원 소속 정신과 의사이자 중독 전문가인 안슐 스와미 박사 또한 중독성 성격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중독이라는 매우 복잡한 내용을 흑백의 논리로 단순화해버리는 것”이라면서 “[중독을 예측할 수 있는] 성격적 유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중독자를 그런 식으로 분류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리피스 교수는 그렇다고 해서 “중독성 행동을 습득하고 발달시키고 유지”하는 데 관련이 있는 특정한 성격적 특성이 없다는 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신경증 또는 노이로제는 여러 중독과 연관되곤 한다. 외향성, 친화성, 성실성, (경험에 대한) 개방성과 함께 5가지 성격 특성 요소에 속하는 신경증은 스트레스나 위협 등의 부정적인 것에 반응하는 정도를 의미하는데, 이에 따라 매우 신경질적인 사람은 분노, 우울함, 불안감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쉽게 느끼고 이에 취약하다.

앞선 연구 175건을 분석한 결과 약물 남용 장애는 높은 수준의 신경증과 낮은 수준의 성실성(자제력 등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는 특성)과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인터넷 중독이나 운동 중독, 쇼핑 중독과 같은 행동 중독 또한 신경증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린피스 교수는 “신경질적인 성향이라면 불안도가 높다”면서 “사람들은 중독성이 있는 행동을 하거나 마약과 같은 물질에 의존해 자신의 신경질적인 특성을 다루고자 한다. 대부분 중독은 개인이 어떠한 상황이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관한 것으로, 우울증이나 신경증과 같은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기제에 깔려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독자들이 모두 신경질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없다는 게 그리피스 교수의 설명이다.

“신경질적이면서도 중독 장애는 없는 이들도 많습니다. 즉, 신경증은 중독과 관련 있긴 하나, 그렇다고 중독을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한편 해밀턴 교수가 지적했듯이 약물 의존 장애를 논할 때 무엇이 먼저인지 파악하기란 “끔찍할 정도로 어려울” 수 있다.

“약물에 의존하게 된 사람 중 우울증이나 불안감이 높아진 이들도 있다”는 해밀턴 교수는 “그렇지만 이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다. 그 사람을 마약에 빠지게 한 게 신경증이냐, 아니면 장기간 마약에 중독되며 우울증 및 신경증이 높아졌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와미 박사는 “중독은 매우 복잡하고 다방면에 걸친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동료 집단으로부터 받는 사회적 압력, 마약에 대한 조기 노출, 신체 및 성적 학대 경험 여부 등 여러 환경적 요인이 중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례로 지난 2018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마약 중독자의 경우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 ‘HK2’가 도파민 방출과 관련 있는 유전자 근처에 존재하는 사례가 더욱 자주 발견됐다.

또한 약물 중독자의 경우 해당 유전자의 근처에 HK2가 존재할 확률이 2~3배 비율로 더 높았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HK2와 해당 유전자의 근접성이 약물 중독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결론짓게 됐다.

그러나 스와미 박사는 이러한 연구 또한 “중독성 성격”이 “따로 존재한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HK2와 관련된 이러한 연구를 통해선 왜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중독에 빠져들기 쉬운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스와미 박사는 “만약 정말 중독자들이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고, 이러한 특징이 중독과 관련 있거나, 중독을 일으킨다고 가정한다면 분명 더 조기에 발현돼야 할 것입니다.”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이들의 사진을 들고 시위에 나선 사람들
Getty Images
옥시콘틴, 펜타닐과 같이 중독성 강한 마약성 진통제는 미국 내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며 비난받고 있다

한편 성별 또한 중독의 또 다른 위험 요소이다.

미국인 중 남성의 경우 전체의 11.5%가 약물 문제를 겪고 있는 것에 비해 여성은 6.4%로 낮았다. 이에 대해 해밀턴 교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성들, 그중에서도 특히 십 대 소년들은 위험을 감수하거나 충동적인 경향이 더욱더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충동성은 중독과 관련 있다.

그러나 해밀턴 교수는 여성들은 사회적 오명 등이 두려워 약물 중독 치료를 더욱 거리끼기에 이러한 데이터가 실제 현실과 괴리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성장 배경 및 환경 또한 중독에 빠질 위험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마약 중독자는 비중독자에 비해 어린 시절 성적 혹은 신체적 학대를 당했을 확률이 무려 2.7배나 높았다.

또한 지난해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 성적, 감정적 학대 또는 부모의 부재 등 4가지 주요 부정적 유년기 경험이 있는 이들은 성인이 됐을 때 알코올 관련 문제를 앓는 비율이 3배나 됐다.

이에 대해 스와미 박사는 “폭력, 성적 학대, 감정적 방치와 같은 심리 사회적 요인은 중독과 매우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난 유전적으로 중독되기 쉬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병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음주, 방치, 학대, 트라우마, 박탈감을 겪었음을 알 수 있죠. 이러한 요소는 세대를 거쳐 이어지며 결국 중독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한편 이렇듯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가 부족한 데도 ‘중독성 성격’이라는 용어는 계속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해밀턴 교수는 “언어에 담긴 사상이나 태도가 내면화될 수 있기에 용어 사용에 조심해야 한다”면서 “중독성 성격이 따로 있다는 식의 생각은 희망을 앗아간다”고 비판했다.

“사람들에게 이게 그들 앞에 펼쳐진 길이며, 그 어떠한 통제력도 지닐 수 없다는 소리니까요.”

스와미 박사 또한 이러한 주장이 매우 “치명적”이라는 데 동의했다.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사람들이 중독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상황을 개선하고자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그리피스 교수 또한 “결국 ‘난 중독성 성격’이라는 말은 ‘(그래서) 절대 치료될 수 없어’라는 뜻이라며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중독 환자들이 이를 통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스와미 박사는 “중독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질병과 마찬가지로 매우 복잡한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질병”이라면서 “모두가 간단한 해결책을 원하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마무리했다.

BBC Future는 이번 기사와 관련해 퍼듀파마의 의견을 들으려 했으나, 퍼듀파마는 지난 2021년 파산 신청 뒤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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