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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입자'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바꿨나

2024.04.12
피터 힉스
Cern
힉스 입자를 이론화한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 교수가 지난 8일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영국의 유명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지난 8일(현지시간)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힉스 교수를 추모하며 BBC는 그의 이름을 따 지어진 ‘힉스 입자(힉스 보손)’의 발견에 관한 2022년 기사를 다시 한번 짚어봤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어떻게 말 그대로 우리 주변 모든 것에 대한 이해 방식을 바꿔놨을까.

지난 2012년 7월 4일,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연구진은 48년간 미완성 상태였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대형강입자충돌기는 지금껏 만들어진 가장 크고 복잡한 기계다. 이곳 연구진이 찾아낸 이 마지막 퍼즐 조각은 아원자 세계의 입자로,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 중 하나다.

바로 ‘힉스 입자’다. 힉스 입자의 존재 확인은 현대 물리학 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서 ‘표준 모형’이 비로소 완성됐다. 표준 모형이란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이루는 기본 입자와, 이러한 기본 입자가 조립된 레고 조각처럼 기능할 수 있도록 이들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는 힘을 설명하는 모형을 말한다.

그리고 대형강입자충돌기는 1964년 영국 출신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측하는 이론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이어진 탐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별세한 힉스 교수조차도 처음엔 “좋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며, 자신의 이론이 쓸모없는 계산에 지나지 않으리라 봤다. 그러나 그가 이론화한 이 힉스 입자는 대형강입자충돌기에 의해 그 존재가 입증됐으며,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이 “좋은 아이디어”로 힉스 교수는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한다.

대형강입자충돌기의 힉스 입자 발견 10주년을 기념해 2022년 진행된 인터뷰에선 전문가 2명에게 이 작디작은 입자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구성됐는가’라는 거대한 두 질문을 푸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들어봤다.

대형강입자충돌기(LHC)와 피터 힉스 교수
CERN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에 자리한 대형강입자충돌기(LHC)와 힉스 교수

표준 모형

사실 오랫동안 원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장 기본 구성 입자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원자도 사실은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 및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 등 더 작은 입자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제 이러한 양성자와 중성자조차도 더 작은 입자로 쪼갤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렇게 기본 입자와 이들 사이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를 합한 총 17개 입자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우주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자 및 이들 간 상호작용하는 힘 17개가 모인 집합을 ‘표준 모형’이라 부른다.

표준모형 기본입자
BBC

표준 모형을 구성하는 입자는 ‘페르미온’과 ‘보손’ 계열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페르미온은 이 우주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벽돌 혹은 레고 조각 같은 존재다.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다른 원자가 구성된다. 페르미온엔 쿼크 6개, 렙톤 6개 등 총 12개 입자가 있다.

즉, 우리가 아는 이 세상 모든 물질은 쿼크와 렙톤의 조합으로 이뤄진 셈이다.

한편 보손은 페르미온을 상호 작용하게 하는 힘을 전달하는 입자다. 보손엔 총 5가지 입자가 있으며, 각각은 물질을 상호 작용하게 하는 기본 힘 3가지 중 하나를 전달한다.

1. 쿼크를 하나로 강하게 묶는 역할을 하는 글루온

2/3. 원자의 핵을 다른 종류의 원자로 붕괴시키는 약한 힘을 전달하는 W보손 및 Z보손

4.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광자

사실 4번째 힘도 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할 ‘중력’이다. 그러나 아원자 수준에서 따지면 중력은 너무나도 약하기에, 그 영향력은 대부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표준 모형’에 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표준 모델’ 퍼즐을 거의 다 완성한 셈이다. 페르미온 계열이 보손 계열과 상호작용해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다루지 않은 5번째 보손이 있으니… 바로 ‘힉스 입자’다.

‘힉스 입자’란?

페르미온 12종류와 보손 4개까지, 우리는 표준 모형을 구성하는 17개 조각 중 16개를 살펴봤다.

이제 표준 모형을 완성할 마지막 한 조각, 즉 힉스 입자만 남겨둔 상태다.

힉스 입자는 ‘쿼크와 렙톤 같은 입자는 물질을 형성하는 질량을 지닌다. 그런데 이러한 입자들은 과연 어디서 질량을 얻었을까’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의 답을 구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소위 ‘힉스 장’을 통해 그 답을 설명할 수 있다. 힉스 장이란 우주 전체를 퍼져 있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장으로, 힉스 장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입자는 질량을 얻게 된다.

이 힉스 장엔 힉스 입자가 존재하며, 바로 이 힉스 입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프랭크 클로즈 이론물리학 명예 교수는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서 우리는 ‘힉스 장’이라 알려진, 우리 모두가 담겨 있는 이상한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힉스 장을 표현한 그래픽
Cern
힉스 장을 표현한 그래픽

책 ‘찾기 힘든 존재: 피터 힉스는 어떻게 질량의 미스터리를 풀었나’의 저자이기도 한 클로즈 교수는 “물고기는 물에 담겨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겐 힉스 장이 필요하다”고 비유했다.

1964년, 힉스 교수는 이 힉스 장의 존재를 최초로 이론화한 학자 중 하나이자, 힉스 장과 관련된 어떤 입자가 존재하리라 최초로 예측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힉스 입자로 알고 있는 입자가 단순히 이론적인 존재가 아닌 실재하는 존재임을 알게 된 건 2012년 발표된 대형강입자충돌기 실험 결과 덕분이다.

힉스 입자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의 ‘물리학 연구소’ 소속 노에 라모스 산체스 연구원에 따르면 힉스 입자의 발견은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3가지 측면에서 크게 바꿔놓았다.

우선 첫 번째로, 힉스 입자를 발견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의 퍼즐을 완성할 수 있었다. 라모스 산체스 연구원의 말처럼 “다른 입자와의 상호관계 등 원자를 구성하는 모든 입자에 대해 전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번째, 다른 모든 입자와는 다른 특별한 입자를 발견하게 됐다. 힉스 입자는 전자도, 양성자도 아니다. 이러한 입자의 질량을 부여하는 특정한 상호작용을 담당하는 존재다. 다시 말해, 힉스 입자는 우리에게 왜 다른 입자들이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는 핵심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이론을 지니게 됐다. 라모스 산체스 연구원은 표준 모형은 “인류가 확립한 가장 정확한 이론”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표준 모형은 무척 정밀한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클로즈 교수 또한 “몇 가지 작은 예외만 빼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아주 잘 설명할 수 있다”며 이에 동의했다.

입자 충돌을 표현한 그래픽
Cern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입자를 빠르게 가속해 충돌시킨 결과 생성되는 다양한 입자는 힉스 입자의 특성과 일치하는 흔적을 보였다

미래

한편 전문가들은 2012년 7월 4일 일어난 역사적 사건 이후, 입자 물리학에선 크게 손꼽을 만한 중요한 발견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 대형강입자충돌기와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미국의 입자 가속기)’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새로운 입자 또는 이전에 발견되지 않은 힘의 징후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만약 이렇게 되면 현존하는 표준 모형이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해당 실험의 결과는 그 정도로 결정적이지 않았다.

라모스 산체스 연구원은 “힉스 입자의 발견 이후 표준 모형은 그 어떤 것보다도 탄탄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표준 모형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질문이 몇 가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 입자물리학의 이 표준 모형으로는, 우주의 약 5%, 즉 일반 물질만 설명가능하다. 즉 우주의 27%를 구성하는 미스터리한 암흑 물질이 무엇인지는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울러 우주는 나머지 68% 또한 비슷하게 미스터리한 암흑 에너지로 구성돼 있다.

2013년 노벨상 시상식에서의 힉스 교수
Getty Images
2013년 12월, 힉스 교수는 힉스 입자를 예측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왜 우주엔 물질이 반물질보다 더 많은지, 혹은 왜 우주 팽창은 계속 가속하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빠져버린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중력이다.

한편 이러한 수수께끼를 풀고자 여러 이론이 등장했으나, 아직 그 어떤 이론도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표준 모형이 틀렸다는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클로즈 교수는 “나는 표준 모형이 위험에 빠지길 바란다!”면서 “만약 표준 모형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면, 우리는 이 모든 걸 설명할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얻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표준 모형이 지닌 ‘문제’는 바로 매우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표준 모형 이론이 최종적이며 완벽한 건 아니지만, 지금껏 우리가 접근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한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대형강입자충돌기(LHC)
Getty Images
힉스 입자 이론은 대형강입자충돌기(LHC) 건설로 이어졌다

단순한 이론을 넘어

힉스 입자를 표현한 그래픽
Getty Images

사실 지난 1964년, 오늘날 우리가 힉스 장으로 알고 있는 존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연구한 건 힉스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다른 과학자들도 이러한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힉스 교수만이 자신의 수학적 가설이 실재하는 존재, 즉 이론상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령이 아닌 실제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클로즈 교수는 “힉스 교수의 수학적 계산을 통해 무언가 이상한 존재가 있다고 가정하게 됐고, 오늘날 우리는 이를 ‘힉스 장’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클로즈 교수는 “이러한 장이 실제 존재한다면, 이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리고 이를 감지하는 방식이 바로 힉스 입자”라고 덧붙였다.

“힉스 교수는 이 사실을 알아차린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됐습니다.”

한편 힉스 교수는 은퇴 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거의 은둔하며 말년을 보냈다. 인터넷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전화만 사용했으며, 84개 계단을 걸어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살았다.

클로즈 교수에게 힉스 교수는 수년간 숨어있다가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 유명한 힉스 입자처럼 찾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리고 힉스 입자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영원히 바꿔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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