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삐삐 폭발'에 대해 현재까지 밝혀진 것들
레바논 전역에서 현지 시간으로 17일 무장 단체 헤즈볼라가 통신에 사용하는 무선 호출기, 일면 '삐삐'가 폭발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최소 9명이 사망하고 약 2,80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헤즈볼라는 적대국인 이스라엘을 비난했지만, 고도의 정교함을 요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번 공격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스라엘 당국은 현재까지 입장 밝히지 않고 있다.
사건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폭발 지점과 시간은?
폭발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현지 시간으로 17일 13시 45분경 시작됐다.
목격자들은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본 후 불꽃놀이 소리나 총소리 같은 작은 폭발음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한 CCTV 영상에서는 상점 앞에 서 있던 한 남성의 바지 주머니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최초 폭발 후 약 한 시간 동안 폭발이 계속되었다고 보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바논 전역의 병원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목격자들은 대규모 혼란의 현장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호출기는 어떻게 폭발했나?
전문가들은 헤즈볼라가 보안에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며 이번 공격의 규모에 충격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해킹으로 인해 무선 호출기 배터리가 과열돼 기기가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니다. 이는 전례 없는 시도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폭발 장면이 배터리 과열로 인한 폭발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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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문가들은 대신 제조 또는 운송 과정에서 무선 호출기가 변조된, 일종의 공급망 공격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한다.
공급망 공격은 최근 해커가 개발 중인 제품에 접근해 발생한 많은 유명 사건으로 인해 사이버 보안 업계에서 점점 더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급망 공격은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뤄진다. 하드웨어 공급망 공격은 디바이스에 손을 대야 하기 때문에 훨씬 드물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공급망 공격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무선 호출기를 몰래 조작하기 위한 대규모 작전이 필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전 영국 육군 군수품 전문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가짜 전자 부품 안에 10~20g의 군용 고폭탄이 각각 내장돼 있었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고폭탄이 영문과 숫자가 조합된 문자 메시지로 인해 작동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누구?
헤즈볼라와 가까운 한 소식통은 AFP 통신에 사망자 중 두 명이 헤즈볼라 의원 두 명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또한 헤즈볼라 대원의 딸도 사망했다고 밝혔다.
부상자 중에는 모즈타바 아마니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란 언론은 그의 부상은 경미하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또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는 이번 폭발로 다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피라스 아비아드 레바논 공중보건부 장관은 손과 얼굴 손상이 부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BBC의 뉴스쇼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부상은 얼굴과 눈, 손에 집중된 것으로 보이며 손의 경우 손가락이나 손의 일부가 절단된 경우도 있으며, 일부는 옆구리에도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응급실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헤즈볼라와 같은 특정 단체 소속인지 아니면 다른 단체 소속인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불행히도 고령자나 아주 어린 아이들도 있으며, 의료 종사자들도 일부 있습니다."
영국에 본부를 둔 한 시리아 인권 단체에 따르면 레바논 인근 시리아에서도 비슷한 폭발로 14 명이 부상을 입었다.
누구의 소행일까?
레바논 총리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비난했지만 현재까지 누구도 책임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나지브 미카티 총리는 이번 폭발이 “레바논 주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자 모든 기준에서 범죄”라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이번 공격의 배후라고 비난하면서 “민간인까지 겨냥한 이번 범죄적 공격에 대해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이 예상을 하든 하지 못했든, 이 기만적이고 악랄한 적은 반드시 이 침략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 혐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이번 공격의 배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랭커스터 대학교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사이먼 마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목표를 추적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 전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이번 공격의 규모가 "전례가 없다"고 밝혔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채텀 하우스의 리나 카팁은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통신 네트워크"에 “깊이” 침투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헤즈볼라가 '삐삐'를 사용하는 이유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저기술 통신 수단으로 무선 호출기에 크게 의존해 왔다.
무선 호출기는 문자, 숫자 또는 음성 메시지를 수신하고 표시하는 무선 통신 장치다. 한국에선 메시지를 수신할 때 나는 특유의 '삐'소리 때문에 '삐삐'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1996년 이스라엘이 하마스 폭탄 제조자 야흐야 아야쉬를 암살할 때 그의 손에서 휴대전화가 폭발한 사건 등이 발생하자, 헤즈볼라는 휴대폰이 보안 취약하다는 이유로 오래 전부터 이용을 꺼려왔다.
그러나 한 헤즈볼라 요원은 AP 통신에 이 무선호출기는 헤즈볼라가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브랜드 제품이라고 말했다.
CIA의 전 분석가인 에밀리 하딩은 이번 보안 침해가 헤즈볼라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정도 규모의 보안 침해는 물리적으로 해로울 뿐만 아니라 전체 보안 장치에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전했다.
“저는 헤즈볼라가 내부 집중 조사를 진행하느라 이스라엘과의 잠재적 충돌에 대한 주의가 분산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은?
헤즈볼라는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숙적인 이란과 동맹을 맺고 있다. 이 단체는 테헤란의 저항 축에 속해 있으며 수개월 동안 이스라엘과 낮은 수준의 전쟁을 벌이며 이스라엘 북부 국경을 넘어 로켓과 미사일을 수시로 주고받았다. 그 결과 양측 지역 주민 모두가 난민이 됐다.
이번 폭발은 이스라엘 내각이 북부 지역 주민의 안전한 귀환을 공식적인 전쟁 목표로 삼은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발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방한 중인 미국 관리에게 이스라엘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16일, 이스라엘 국내 정보 기관은 헤즈볼라에 의한 이스라엘 전직 관리 암살 시도를 저지했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긴장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양측이 전면전으로 넘어가지 않고 적대 행위를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이미 17일 폭발에 대응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상황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추가보도 : 프란시스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