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마두로 축출 정당했나…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 '국제법 논란'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극적인 사건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강제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조치가 과연 적법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마두로와 그의 아내는 현재 미국 법원에서 무기 및 마약 밀매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으며, 장기간 징역형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법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번 작전을 수행한 것과 관련해 선례나 국제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마두로 대통령은 과거 자신이 카르텔의 수장이라는 주장을 강력히 부인해 왔으며,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구실로 자신을 축출하고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자원을 손에 넣으려 한다고 비난해 왔다.
국제법은 유엔(UN) 안전보장 이사회 승인이나 진정한 자위권 행사 등 매우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정당화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과 마두로 대통령 체포가 이뤄진 지 몇 시간 만에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뉴욕에서 발부된 형사 기소장을 근거로 이번 작전을 정당화했다. 이번 작전은 '마약 테러리즘'에 대한 자위권 행사이며 국내 사법 진행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선봉에 선 인물은 팸 본디 미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는 X(구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마두로 대통령 부부는 "곧 미국 영토인 미국 법정에서 미국 사법의 엄정한 심판을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이번 급습이 미 법무부의 요청에 의해 수행된 작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작전을 사법 집행 차원으로 규정한 것은 베네수엘라 공습과 마두로 대통령 부부 축출에 앞서 의회의 승인이 없었다는 점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 법적으로 까다로운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적으로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지속적인 군사 작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마두로 대통령 부부가 축출된 만큼 미국이 당분간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월,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베니티 페어와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지상 공습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같은 달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이 견해를 반박했다.
의회가 기만당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루비오 장관은 4일, 이번 급습이 "본질적으로 사법 집행 기능"이지 전쟁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의회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전쟁부(국무부)가 법무부를 지원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 사법의 도망자"라고 강조했다.
- 트럼프 '정권이양까지 베네수엘라 운영...석유 인프라도 복구할 것'
-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위협하는 이유
- 베네수엘라 인근 해상서 유조선 나포한 미국, 선박 6척 추가 제재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이 의회의 사전 승인 없이 최대 60일간 단기 군사 행동을 개시할 수 있고, 이에 추가로 30일간 철수 기간을 허용하는 미국의 '전쟁 권한 결의안(War Powers Resolution)'을 근거로 들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의 군사 행동 권한을 규정한 이 결의안에서는 대통령이 48시간 이내에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틀 안에서 대통령은 의회에 사전 통보 없이 베네수엘라 공격을 개시할 법적 권한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미 의회는 초당적으로 추가 군사 행동을 제한하거나 종료하는 표결을 할 수 있다. 이 표결은 며칠 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적 의구심
그럼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국제법과 국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에 우려를 표하며 미국 베네수엘라 조치에 대한 법적 근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개입의 명분으로 든 마약 밀매와 갱 폭력은 범죄 행위로 간주하지만, 군사적 대응을 정당화할 수 있는 무력 개입의 국제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기자회견에서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석유 자산을 훔쳤다고 비난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하면 이를 되찾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다.
제레미 폴 미국 노스이스턴대학교 헌법학 교수는 "사법 집행 작전이었다고 말하고 돌아서서 이제 그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며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마크 웰러 런던 채텀하우스 교수는 국제법상 국가 정책 수단으로 무력 사용은 "무력 공격에 대한 대응 혹은… 즉각적인 전멸 위협에 직면한 인구를 구출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지되고 있다고 설명하며 UN의 승인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웰러 교수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무력 작전은 이런 요건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않는다"라며 "마약 거래를 억제하려는 미국의 이해관계나 마두로 정부가 본질적으로 범죄 집단이라는 주장은 어떠한 법적 정당성도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파나마 선례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마두로 대통령 축출의 정당화 근거로 1989~1990년 파나마 사건을 고려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당시 조지 H.W. 부시 행정부는 군사 개입을 통해 파나마의 사실상 군사 지도자,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강한 반감을 샀던 마누엘 노리에가를 권좌에서 끌어내렸고, 그를 마약 혐의로 재판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송했다.
전문가들은 35년 전 워싱턴이 파나마 운하 접근을 확보하려 했던 점과 현재 베네수엘라의 유전 문제 등 분명한 유사점이 있지만, 뚜렷한 차이도 남아 있다고 말한다.
웰러 교수는 워싱턴이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자위권을 근거로 삼고, 미국의 이익에 대한 임박한 위험을 언급하며 노리에가를 축출했다고 설명했다.
존 필리 전직 미 외교관과(미국 NPR과 인터뷰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두 사례의 가장 뚜렷한 차이로 노리에가 축출 이후 파나마에서는 대중적 야권이 권력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민주적 전환이 이뤄졌다는 점을 꼽았다. 미군도 곧바로 철수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베네수엘라는 이런 상황이 아니며 권력을 이어받을 세력도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유엔, '위험한 선례' 우려
마두로 대통령 축출 과정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는 마두로 대통령의 재판일 것으로 보인다.
웰러 교수에 따르면 미국 법원은 이른바 '커-프리스비(Ker-Frisbie) 원칙'을 따른다. 이는 피고인이 어떻게 미국 법정에 서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불법적인 무력 개입이나 납치"가 있었더라도 피고인이 심각하게 고문당하지 않았다면 재판은 진행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다른 잠재적 국제적 분쟁에도 매우 심각한 파장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UN의 국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공개적으로 도전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엔은 이와 관련해 국제법이 존중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3일 대변인을 통해 베네수엘라에서 이뤄진 "미국의 군사 행동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라며 "이는 지역 전체에 잠재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또 베네수엘라의 상황과 별개로 미국의 이러한 행동은 "위험한 선례가 된다"라며 "유엔 헌장을 포함한 국제법이 모든 당사자에 의해 완전히 존중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현지시간 5일 긴급회의를 열고,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과 마두로 대통령 부부 체포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향후 북미 대화 영향은?
한편 북한은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국제사회가 오래동안 수없이 목격해온 미국의 불량배적이며 야수적인 본성을 다시한번 뚜렷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미국을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4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문답을 인용해 "베네수엘라에서 감행된 미국의 패권행위를 가장 엄중한 형태의 주권침해로, 주권존중과 내정불간섭, 영토완정을 기본목적으로 하는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대한 난폭한 위반으로 낙인하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베네수엘라 공습과 대통령 체포 사태가 향후 북미 대화에 미칠 영향을 두고는 엇갈린 분석이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트럼프가 마두로를 체포한 것과 같은 작전은 북한에 대해 수행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이 사태를 계기로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대해 더욱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상당히 낮은 수준의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김여정 부부장이나 외무성 대변인 담화도 아닌 기자 문답 형식으로 입장을 밝혔고, 표현 역시 통상적인 북한의 수사에 비해 매우 절제돼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분명히 문제 제기는 하고 있지만, 여전히 트럼프를 많이 신경 쓰고 있다"라며 "원래 훨씬 거칠게 나가야 하는데 톤이 조정되고, 트럼프 개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로 인해 북한이 "오히려 대화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를 통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힘을 보여준 점이 북한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