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귀환을 바라보는 김정은의 진짜 속마음은?
미국 제 47대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트럼프 2기를 준비하는 각국 정상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진 모양새다.
현지 매체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을 탈환한 지금 각국 정상들이 신속하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 그와의 회동 일정을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각국 지도자마다 소셜미디어에 축하 메시지를 올리고 트럼프 당선인과의 통화 일정을 잡는 한편 취임식(내년 1월 20일) 이전에 직접 회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주미대사 등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
한국 정부 역시 윤석열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의 조기 회동을 추진하고 있다. 가능하면 취임식 전에 만남을 성사시킨다는 계획인데, 윤 대통령이 이달 중순 남미에서 펼쳐지는 다자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미국에 들러 트럼프 당선인과 회동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현 상황을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속내는 어떨까? ‘새로운 애인’(푸틴)과 '금지된 밀회'(북러 군사 밀착)를 즐기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옛 애인’(트럼프)의 등장에 김정은 위원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시금 ‘러브레터’를 주고 받을까? 3차 북미 정상회담은 과연 개최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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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내심 환영하고 있을 것'
트럼프는 그간 유세 현장에서 북한을 자주 언급했다. “북한은 거대한 핵 보유국이고, 난 김정은과 좋았다”며 북한과의 인연을 과시한 것. 지난 7월 미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김정은과 잘 지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3차 북미회담 개최가 특별히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 국가정보원 대북분석관을 지낸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BBC에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의 당선을 내심 크게 환영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트럼프와의 연결점을 찾으려 할텐데 언제, 어떤 형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축전을 보낼 가능성도 충분하다. 트럼프 역시 이를 기꺼이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경남대 석좌교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3차 회담을 위한 양국 간 물밑 조율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임성남 전 외교부 차관도 “트럼프 스스로 ‘북한을 안정적으로 컨트롤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미 두 차례 회담을 성사시킨 업적이 있으니 그것을 더욱 확대∙발전시키고 싶어할 것”이라며 3차 북미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그는 다만 “3차 회담이 개최되는 것과 그 회담이 언제 성사될지, 또 어떤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 전 장관 역시 “트럼프가 한미관계, 한미일 관계를 깨면서까지 3차 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문제는 지난 1, 2차 북미회담 당시와 지금은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에게 더 이상 북핵 문제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먼저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배경에는 자국 내 경제 문제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때문에 트럼프 2기 정부는 내수진작에 우선적으로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중국 견제, 멕시코 관세 부과 등이 포함되는데 실제 트럼프 당선 이후 멕시코의 페소화 가치는 달러 대비 급락했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문제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을 하면서 "취임 후 24시간 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재차 공언했다. 또한 “나는 젤렌스키 및 푸틴과 관계가 좋다”, “내가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서도 전쟁을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거 재임 중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온 그는 지난 7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자신의 취임 전까지 전쟁을 끝내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곽길섭 대표는 “지금의 트럼프는 2018년의 그가 아니다, 주 관심사도 북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또 “트럼프가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노벨평화상도 북핵보다 중동,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해결로 받는 게 더 쉬울 것”이라며 대선 공약에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이 처한 대내외 환경으로 볼 때 “대북정책은 빠르고 급격한 변화보다는 원론적인 탐색전이 먼저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북한 비핵화 목표는 계속 견지해 나가면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물밑으로 ‘비핵화+ 군축회담’ 성격의 대북협상 전술로 북한을 회담장으로 이끌어내는 묘수를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은의 셈법
북한이 처한 환경 역시 대화와는 꽤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북미관계의 가장 큰 화두는 뭐니뭐니 해도 북한 핵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택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의 핵 보유국 법제화,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러-우전쟁 파병, 화성-19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담론에 무게를 실어준다.
곽길섭 대표는 “과거 트럼프와 김정은이 ‘러브레터’를 27통이나 주고 받았지만 김정은이 갑자기 푸틴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로를 겪어봤고 그만큼 잘 알기 때문에 3차 회담이 쉽사리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 “미 대선 전에 우라늄농축기지를 공개하고 화성-19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당분간 푸틴과의 로맨스을 기반으로 한 ‘적대적 2개국가론’ 완전 정착화, 러-우전쟁 파병 성공, 전략무기 고도화에 매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김정은이 러-우 전쟁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지금 그의 관심사 역시 트럼프 보다는 푸틴”이라며 “당장 트럼프와의 브로맨스에 다시 불을 지피기 보다는 뭔가 연결은 해놓되 서서히 마음을 노릴 것이다. 그건 김정은이나 트럼프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고 싶더라도 현 바이든 대통령의 잔여 임기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짜여지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시간을 갖고 기싸움과 물밑대화로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데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북한이 미국 신정부 출범을 기다리며 일정 기간 미국의 태도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는 특별한 군사 행동을 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다만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제의해오지 않거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 도발할 수 있다”면서 “협상의 결과가 북한이 원하는 쪽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감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3차 회담하면 한반도에 평화 올까?
미국 내에서는 이미 북핵을 인정하고 상황을 동결하자는 현실론을 비롯해 북핵 인정론, 핵 군축론 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북한의 핵 개발 수준은 지난 2018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2023년 9월 헌법에 핵보유를 명기했다.
따라서 김정은이 트럼프와 테이블에 다시 마주앉는다 하더라도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 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한 ‘핵 군축 협상’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강인덕 전 장관은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이상 한국이나 일본은 안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원하는 군축 협상으로 북미 관계 개선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한국 입장에서는 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가 체결한 한미-한미일 안보협력 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있다”면서 “다자 군사협력 관계가 깨진다면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역시 “북핵 문제 자체는 안정된다 해도 한국의 경우 북핵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협상이 이뤄지면 ICBM에 대한 북한 공격력을 막을 수 있으니 국제사회와 미국은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겠지만, 한국은 오히려 핵 위협에 상시 노출되기 때문에 이 경우 한국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했다.
때문에 한국 내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는 상황.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역할이 현저하게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실제 트럼프 측근으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밀러 전 미 국방장관 대행은 지난 3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에서의 집단방위체제 구축 관련 질문에 대해 “미국은 이를 주도하기보다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요 동맹국인) 호주와 뉴질랜드, 일본, 한국을 지원하는 역할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또 “한국, 일본 등은 엄청난 군사적 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확장억제에서도 미국은 주도하는 게 아니라 지원하는 역할이어야 한다”면서 “한국은 ‘기적’(경제 발전)으로 인해 더 이상 무기 체계나 안보 지원을 미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한국이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주변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자국의 안보를 지금처럼 미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자국을 지켜야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1945년 이후 약 80년간 자유진영을 지키는 ‘경찰’ 역할을 해왔지만 가까운 미래에 더 이상 그러한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동맹의 유지 및 관리보다 경제회복에 더욱 더 많은 국가예산을 투입하고자 하는 트럼프의 경제 자강론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보다 자체 핵억지력 확보를 통해 안보 불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한국의 안보 자강론과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면서 결국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시간 문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