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지배력에 어떻게 맞서고 있나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기술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그 질서를 뒤흔들려 하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은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첨단 기술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차세대 고성능 반도체(칩) 생산에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반을 둔 AI 반도체 대기업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중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에 단지 "나노초 단위로 뒤처져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과연 중국은 수입에 의존해온 최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력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딥시크, 그 이후
지난해 중국의 '딥시크(DeepSeek)'는 '오픈AI'사의 '챗GPT'에 맞서 경쟁작을 출시하며 기술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비교적 이름이 덜 알려진 스타트업인 딥시크의 이 같은 발표는 여러 면에서 인상적이었는데, 무엇보다도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AI 모델을 훈련시켰다는 주장에 관심이 집중됐다.
딥시크 측은 챗GPT에 비해 훨씬 적은 규모의 고성능 반도체만으로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이 발표 이후 한때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일시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중국 기술 산업의 성장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일부 중국 기술 대기업들은 엔비디아에 맞서 자국 기업들의 주요 첨단 반도체 공급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지난 9월 중국 국영 매체는 '알리바바'의 신형 반도체가 엔비디아의 H20 반도체와 비견될 만한 성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전력 소모는 적다고 보도했다. H20은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제한을 고려해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용으로 만든 제품이다.
또 다른 중국 기업 '화웨이' 역시 자사 역사상 최고 성능의 칩을 공개하며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시장 지배력에 도전하기 위한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중국 내 기업들의 미국산 제품 의존도를 낮추고자 자사의 설계 및 컴퓨터 프로그램을 대중에게 공개하겠다고도 덧붙였다.
다른 중국 반도체 개발업체들도 잇따라 자국 대기업들과 주요 계약을 체결했다. 예를 들어 상하이 기반 기술 업체인 '메타X'는 국영 통신사인 '차이나유니콤' 등에 첨단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손꼽히는 기업은 베이징 기반의 '캠브리콘 테크놀로지스'이다.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해당 기업의 주가는 지난 3개월 간 2배 이상 뛰어올랐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국산 첨단 반도체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시장 기대감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슈퍼 앱인 '위챗'을 보유한 '텐센트' 역시 정부의 자국산 반도체 사용 촉구에 호응한 주요 기술 대기업 중 하나다.
또한 투자자 유치를 위해 정부의 지원 아래에 중국 기술 기업들을 홍보하는 각종 박람회도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최근 중국 반도체 기업의 이 같은 발전에 대한 BBC의 질문에 엔비디아 대변인은 "확실히 경쟁이 시작됐다"고 답했다.
"고객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상용 애플리케이션과 오픈 소스 모델을 위해 최고의 기술을 선택할 것입니다. 엔비디아 또한 전 세계 주류 개발자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한편 공개된 데이터와 표준화된 테스트 기준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주장은 다소 걸러서 들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를 모두 테스트해 본 컴퓨터과학자인 자와드 하지-야히야는 중국의 반도체는 예측형 AI 분야에서는 미국의 것과 성능이 비슷하지만 복잡한 분석 처리에서는 여전히 뒤처진다고 지적했다.
"격차는 존재하며 줄어들고 있는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다만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이 앞서가는 혹은 뒤처지는 분야
지난달 BG2 기술 및 비즈니스 팟캐스트에서 황 CEO는 중국 기술 산업의 강점으로 성실하고 방대한 인재 풀, 치열한 국내 경쟁, 반도체 제조 기술의 진보 등을 강조했다.
이어 "이는 활기차고 기업가 정신이 넘치며 첨단 기술을 다루는 현대 산업"이라면서 미국은 "생존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의 이러한 평가에 중국 당국자들은 환호할 것이다.
오랫동안 중국은 글로벌 기술 패권의 주역이 되기를 꿈꿔왔다. 부분적으로는 서방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이다.
지난 수년간 중국은 재생에너지부터 AI에 이르기까지, 시진핑 국가주석이 "고품질 발전"이라 부르는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하기 이전부터 중국은 자국의 거대한 경제 구조가 단순한 제품을 생산하는 "세계의 공장"에서 첨단 산업의 심장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수백억달러를 투자해왔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과 벌이고 있는 관세 전쟁은 중국의 이러한 열망에 더욱 기름을 부었다.
시 주석은 중국의 기술 자립성을 키우고 "누군가의 선물"에 의존하지 않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황 CEO는 미국이 중국과 자유롭게 교역하지 않으면 AI 경쟁에서 중국에 우위를 내줄 수도 있다며 경고했다. 이는 지난달 중국 정부가 엔비디아를 상대로 반독점 조사를 시작하며 압박 수위를 높인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그러나 대만국립대학의 양치아링 컴퓨터공학 교수는 중국의 국가 주도식 접근법은 모두가 (동일한 "공동의 목표"에만 집중한다면 결국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존의 틀을 깨는 파괴적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는 엔비디아 같은 서방의 경쟁사 제품보다 사용자 친화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상태다. 양 교수는 중국에는 엄청난 수의 숙련된 기술 인력이 있기에 이러한 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되리라 전망했다.
"중국 기술의 추격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의 '협상 칩'
자국 반도체를 쓰라는 중국 당국의 최근 발표에 대해 양 교수는 몇 달간 이어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활용할 "협상 칩"으로 해석했다.
하지-야히야 박사 또한 중국은 첨단 장비를 판매하지 않으면 이처럼 거대한 시장에서 입지를 잃을 수도 있다며 미국을 압박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여전히 미국산 반도체를 구매하고 싶을 테지만, 이 같은 발표를 통해 이 분야에서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대부분이 중국이 적어도 당분간은 최첨단 반도체 분야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반도체 엔지니어인 라가벤드라 안자나파는 "중국은 자신들의 첨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이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여전히 일부 미국산 고급 기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비교적 성능이 떨어지는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의존도를 낮출 수 있지만 더 복잡한 AI 시스템을 훈련시키는데 필요한 미국산 반도체 "본연의 성능"은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러 돌파구를 마련하긴 했지만 중국에는 미국과 한국, 대만에서 오래 전부터 구축해 온 고도로 발전된 공급망이 부재하다.
또한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반도체 대중국 수출 금지 등 중국의 첨단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추기 위해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안자나파는 미국이 "중국이 가장 의존하는 부분을 정확히 겨냥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중국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향후 5년 만에 미국으로부터 독립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