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늘어나는 '카스프레딩', 일각에서 이를 반기지 않는 이유

4시간 전
영국과 유럽 전역에서 자동차는 점점 더 길어지거나 넓어지고 있다
BBC
영국과 유럽 전역에서 자동차는 점점 더 길어지거나 넓어지고 있다

"카스프레딩(carspreading)"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자동차가 점점 길어지고, 넓어지고, 무거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소비자들이 이를 반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형차는 실용적이고 안전하며 스타일리시하다는 인식 속에서 판매량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몇몇 도시 당국이 이에 제동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한 조치는 정당한 것일까?

파리는 여러모로 유명하다. 에펠탑과 개선문, 넓고 푸른 가로수길과 대로, 박물관과 미술관, 훌륭한 음식이 있다. 그리고 정말 끔찍한 교통 체증도 있다.

파리 시 당국은 지난 20년간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저교통·저배출 구역을 도입하고, 대중교통 및 자전거 이용을 장려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형 차량 단속도 시작했다.

파리는 2024년 10월 시민 투표를 거쳐 "대형" 차량의 시내 중심부 1시간 노상 주차 요금을 기존 6유로에서 18유로(6시간은 75유로에서 225유로)로 인상했다.

투표 전 안느 이달고 파리 시장은 "(차량의)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이 오염시킨다"며 새로운 규제가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 측면에서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몇 달 후, 파리시는 시내 도로에 주차된 대형 차량 숫자가 3분의 2로 줄었다고 발표했다.

영국 내 대도시를 포함한 몇몇 도시도 파리의 규제를 주목하고 있다. 카디프 시의회는 이미 2400kg(약 포드 '피에스타' 2대의 무게) 이상 차량에 대해 주차 비용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노동당이 이끄는 시 당국은 "무거운 대형 차량은 일반적으로 배기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고, 도로에 더 큰 손상을 입히며, 교통사고 발생 시 훨씬 더 큰 위험이 따른다"고 밝혔다.

현재 높은 주차 요금은 일부 차량 모델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카디프시는 점차 중량 기준을 낮출 계획이다. 또한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차량 소유자 중에는 대형 차량을 생활에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많다.

길퍼드에 거주하는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맷 맨셀은 고객과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려면 랜드로버 '디펜더 110'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장비를 넣을 수 있을 만큼 내부 공간이 충분해야 하고, 문짝이나 3m 길이의 파이프도 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가 사용하는 차량은) 실용성이 매우 뛰어난 데다 외관도 훌륭합니다."

'첼시 트랙터': SUV의 부상

영국과 유럽에서 판매되는 자동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보험업계 의뢰로 신차를 평가하는 기업 태챔 리서치(Thatcham Research)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영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평균 차폭은 182cm에서 187.5cm로 증가했다.

평균 중량도 같은 기간 1365kg에서 1592kg으로 늘었다.

사실 이는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국제청정교통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유럽 시장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평균 너비는 2001~2020년 사이 약 10cm, 길이는 19cm 이상 늘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영국 도로가 혼잡하고 비좁은 데다 도심 지역에서는 공간 부족 문제가 자주 제기되는 만큼 우려를 나타낸다.

자동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도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일까?
Getty Images
자동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도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일까?

영국의 많은 지역에서 도로변 주차 공간의 표준 최소 폭은 1.8m이다. 그러나 친환경 교통 운동 단체 T&E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위 100대 차량 중 절반 이상이 이 기준보다 약간 더 넓었다.

게다가 요즘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SUV는 보통 오프로드 차량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지만, 실제로는 외관만 비슷할 뿐 4륜 구동 같은 오프로드 기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SUV 대다수는 포장도로를 벗어날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차량들에 대한 비아냥 섞인 별명 '첼시 트랙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SUV는 오프로드용 유틸리티 모델부터 고급 지위 상징형 모델, 교외 거주 가족용 왜건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된다.

그러나 이 모델들의 공통점은 '크다는 것'이다. 크기가 작은 크로스오버 모델조차도 전통적인 세단·해치백보다 더 넓고 차고가 높다.

자동차 연구 기업 데이터포스에 따르면, 2011년 유럽 27개국 시장에서 SUV 비중은 13.2%였다. 그런데 2025년 SUV 시장 점유율은 59%에 달한다.

자동차 전문지 오토카 편집장 레이첼 버지스는 SUV 인기 비결로 '크기'를 꼽았다. 그는 "수년간 SUV 구매자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모두가 높은 좌석 위치, 넓은 전방 시야, 고속도로 또는 넓은 도로에서 더 안전하다는 느낌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좌석이 높은 SUV는 어린아이들을 태우고 내리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낮은 세단보다 SUV에 오르내리기가 훨씬 쉽죠."

루시아 바르바토가 자신의 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BBC
루시아 바르바토는 "월요일 아침이면 세 명의 아들 가방에 운동용품과 악기(트럼펫)까지 실으면, 차에 개를 태울 공간조차 없다"고 말한다

웨스트서식스 출신 루시아 바르바토는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가족 이동을 위해 중고 렉서스 'RX450 SUV(하이브리드)'가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마케팅 대행사를 운영하며 매일 세 아들을 버스 정류장까지 차로 데려다준다.

"월요일 아침마다 세 아들을 태워요. 책가방 3개, 운동용품, 트럼펫까지 싣고 나면 개를 태울 공간이 전혀 없어요!"

더 큰 차, 더 큰 이익률?

SUV 인기는 대중적 브랜드 제조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포르쉐는 스포츠카로 유명한 브랜드지만, '카이엔 SUV'와 '마칸 크로스오버' 판매량도 매우 높다.

벤틀리의 '벤테이가 SUV'는 지난해 판매량의 44%를 차지했고, 람보르기니도 4륜구동 '우루스'의 판매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소비자들은 분명 SUV를 선호한다. 자동차 산업 정보 웹사이트 저스트오토 편집장 데이비드 레겟은 "차량이 커질수록 제조사는 더 높은 이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대형 차량의 이익률이 훨씬 더 큽니다. 제조 비용 구조가 그 주된 원인입니다."

자동차 생산에는 공장 운영, 설계, 주요 부품 비용 등 기본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소형차의 경우 이러한 비용이 판매가 대비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

JATO 다이내믹의 수석 컨설턴트 다니엘레 미니스테리는 "많은 SUV는 기존 승용차와 플랫폼 구조가 동일하며, 차이점은 차체 스타일·서스펜션·좌석 위치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부 모델의 경우 주된 차이는 차체 스타일, 서스펜션, 좌석 위치 등입니다. 그래서 생산 비용이 크게 늘지 않으면서도 'SUV 프리미엄'을 판매 가격에 더할 수 있습니다."

안전 논쟁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승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폭스바겐 '골프 해치백'은 초기 모델(1970년대)에 비해 지금 모델이 폭은 18cm, 길이는 26cm 더 크며, 무게도 훨씬 무거워졌다.

1970년대 폭스바겐 골프와 2025년형 골프
BBC
1970년대 폭스바겐 골프와 2025년형 골프

태챔 리서치 수석 안전 엔지니어 알렉스 톰슨은 "2000년대 초반 유로 NCAP 같은 안전 프로그램이 소비자에게 안전 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며 "당시 소형차는 충돌 충격을 잘 흡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전 대책이 개선되면서 차량의 무게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안전을 위한 차량 내 구획이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데이비드 레겟 역시 "제조사들이 충돌 보호 구조를 강화하고 에어백을 더 많이 장착하면서 차량이 커졌고, 실내 공간 확장과 기능 추가까지 더해지며 차량은 계속 커졌다"고 말했다.

대형 차량은 탑승자에게 더 안전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차량이 커질수록 도로의 다른 이용자는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T&E의 차량 정책 관리자 팀 덱스터는 "보행자든 운전자든, 큰 차량과 충돌하면 중상 가능성이 더 크다"며 특히 자전거 이용자 위험 증가를 우려했다.

벨기에 비아스 연구소(도로 안전 연구기관)는 2023년 연구에서 "자동차 보닛 높이가 10cm 올라가면 취약한 도로 이용자 사망 위험이 27% 증가한다"고 밝혔다. T&E는 보닛이 높을수록 사각지대가 더 커진다고 지적한다.

반면 알렉스 톰슨은 "높은 차량이 보행자·자전거 이용자 위험을 키우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차량 디자인은 취약 이용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자동차 제조사에서 차량에 외부 에어백을 장착한 것도 한 예다.

환경적 영향에 관련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연비 효율과 전기화 분야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인 중형차보다 약 20% 더 많은 배출량을 내는 SUV와 같이 무겁고 효율이 낮은 차량을 선호하는 추세는 최근 수십 년간 세계 승용차 부문이 달성한 에너지 소비 및 배출량 개선 효과 대부분을 무효화하고 있다."

전기차로 전환이 되고 나면, 일상적인 차량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에 사용되는 전기가 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로 생산된다면, 대형 차량은 여전히 소형 차량보다 오염물질을 더 많이 발생시킬 수 있다.

크기 및 무게와 관련된 또 다른 우려도 전기차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게다가 전기차는 일반적으로 가솔린이나 디젤 차량보다 무거운 경우가 많다.

'자동차 제조 및 무역 협회'는 현재 SUV의 40%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차량이라고 밝혔다.

이 협회의 최고운영자인 마이크 호즈는 과거 신형 SUV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00년 이후 절반 이상 감소해 "영국 내 도로 이동 수단의 탈탄소화를 주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벌금, 세금, 프랑스 모델

만약 대형 차량에 대한 단속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어떤 방식이 있을까? 그 중 한 가지를 프랑스가 시행 중이다.

프랑스는 현재 무게 1600kg을 초과하는 차량에 대해 추가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초과 1kg당 10유로이며, 2100kg 초과분은 1kg당 30유로다.

다만 전기차는 제외되며 적용 대상 모델도 많지 않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신차 가격이 최대 7만 유로 증가할 수 있다.

T&E는 영국도 유사한 과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팀 덱스터는 "영국은 사실상 대형 차량에 대한 세금 부담이 없다"며 "이들이 도로·지역사회·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더 부담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레겟은 이러한 조치가 "사람들이 특히 도시에서 작은 차량을 구매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세금 제도를 조정해 소형차 매력을 높일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형 도시형 차량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레겟은 "도시형 소형차 수요는 항상 있지만, 이를 수익성 있게 생산하는 것은 큰 과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BYD '돌핀 서프', 리프모터 인터내셔널 'T03', 현대 '인스터', '신형 르노5' 등 저렴한 소형 전기차가 잇따라 출시됐다. 기아 'EV2'와 폭스바겐 'ID 폴로'도 출시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당분간 시장은 SUV 중심이 될 전망이다.

레이첼 버지스는 "확실히 많은 사람이 SUV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형차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업계가 전기차 시대에 소형차로 수익을 내는 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돌고 돈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유행이 돌고 도는 것이죠. SUV의 인기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