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출신 탈북민들이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보내달라는 이유
“(파병된 북한군은) 북한에서 교육한 대로 거기에 속아서 ‘내 죽음이 영광스러운 죽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싸울 수 있어요.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줘야죠.” (탈북기독군인회 심주일 씨)
북한군 약 1만 명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선에 파병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태를 바라보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동요도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파병된 북한군의 귀순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탈북민만이 북한군 깨우쳐줄 수 있어'
북한군 출신 탈북민 중에는 목숨을 걸고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내달라'는 이들도 있다.
국내 민간단체인 탈북기독군인회와 탈북시니어아미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통치 자금 마련과 전쟁 장비 현대화를 위해 인민의 아들들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김정은 정권의 반인륜적 작태를 준렬히 규탄한다”라며 자신들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선으로 보내달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 장교 출신으로 탈북기독군인회를 이끌고 있는 심주일 씨는 BBC 코리아에 “(전선에 간다면) 같은 총포탄을 가지고 군인들과 맞닥뜨려서 죽고 살고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을 (전쟁의 실상과 관련해) 깨우쳐주는 데 방점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면 하는 사람들이에요...생의 마지막을 그런 데 가서 이바지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탈북 군인들은 북한 특수군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현지에 파견돼 이들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면 북한군의 전장 이탈과 귀순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탈북시니어아미를 이끄는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정찰총국 소속 민경대대에서 10년 복무했다. 그는 “북한이 선전용으로 내놓는 군부대와 실제 부대는 체격 등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라며 겉보기에는 일반 부대원들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제11군단(폭풍군단)과 같은 정예 특수부대가 참전했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안 소장은 “(러시아에) 북한군 2개, 3개 사단이 나오면 분명 우리가 할 일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며 “(현지에서) 드론으로 삐라(선전물)를 뿌리고 유튜브도 하고, 전선에 가까이 갈 수 있다면 메가폰을 이용한 함화공작 등 전쟁에서 할 수 있는 심리전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소장은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뜻을 전달한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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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러한 의견은 아직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북한을 자극해 한국의 안보 상황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는 “‘우리도 가서 싸우겠다’고 선언적으로 하는 건 좋은데, 파병이라는 게 국가 간의 관계에서 묘한 부분”이라며 탈북민을 우크라이나로 보낼 경우 있을 수 있는 정치·외교적 파장을 우려했다.
현재 한국 외교부는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여행경보 4단계(여행 금지)를 발령한 상태다.
국내 여권법에 따르면 영주, 취재·보도, 긴급한 인도적 사유, 공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목적의 여행으로서 외교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방문 및 체류를 허가할 수 있지만, 허가 없이 여행 금지 국가를 방문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폭풍군단, 설득 쉽지 않을 것'
폭풍군단 출신으로 알려진 이웅길 씨는 탈북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직접 가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 정보당국과 일부 군사 전문가 등은 북한군 최정예부대인 폭풍군단이 이번 러시아 파병 부대에 포함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씨는 북에서 군 복무를 한 지 오래된 탈북민들은 최근 북한군 내부 실정을 잘 모를뿐더러, 파병된 부대가 폭풍군단일 경우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폭풍군단 소속 군인들의) 충성심이라든가 훈련 정도에 따르면 그렇게 얘기하면 바로 헤드샷을 날려버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 씨도 북한 파병군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북한군 파병이) 하루 이틀 전에 계획됐겠나. 이미 전에 러시아와 계획하고 거기에 따르는 훈련을 많이 했을 것”이라며 “김정은은 (북한) 부대가 (전장에) 가서 싸움을 잘해서 ‘야, 북한은 보통 아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며 파병된 북한군 전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북한 파병군은) 수령과 당을 위해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겠다고 다 각오하고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저 돈이 없어서, 먹을 게 없어서 비리비리한 사람들 모아가지고 보낸 게 아니란 말이에요.”
이 씨는 친우크라이나 텔레그램 채널에서 공개한 부상당한 북한 병사 영상을 보고 “ 말투만 들어봐도 저건 우리 부대 군인들”이라고 생각했다며 “‘친구’라는 말을 썼다고 (그래서 진짜 영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북한에서 ‘동지’·’동무’는 상관들이나 행사 때 쓰는 거지, 일상시에는 다 친구라고 한다”고 했다. BBC는 해당 영상의 진위 여부를 별도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영상이라던가 녹음을 해서 보내는 게 (전선에) 직접 가서 확성기 부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라며 “군인 출신 탈북자들이 여기(한국에) 와서 행복하게 사는 이런 (모습을 담은) 영상을 조금씩 짤막하게 해서 보내는 게 오히려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북민 심리전 통할까?
일각에서는 북한군을 상대로 선전물과 확성기를 활용한 심리전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일부 탈북민들은 우크라이나 파병 북한군의 귀순을 목적으로 하는 ‘탈북민 선전단’을 구성하고 우크라이나 측에 북한군의 귀순을 유도하고 전선에서 탈출하는 방법 등을 안내하는 전단과 오디오 파일 등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장에서 심리전을 벌이는 것은 국내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 등을 살포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트는 순간 드론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현대전으로 치러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심리전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군이 귀순 유도 영상을 시청하거나 음성 파일을 재생할 방법도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 씨는 MP3나 중고 휴대폰에 영상을 담아서 보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면 그가 북한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당신들이 침략의 용병으로 또다시 그 길에 서면 우크라이나 인민들은 우리 북조선 인민들처럼 또 다른 독재의 발밑에 살게 될 텐데 그걸 정녕 원하는가? 아니라면 자유의 품으로 와서 우리 북한을 해방시키는 길에 함께 서자. 나 또한 한국에 처음 올 때, 자유의 품에 안길 때는 겁이 났다…그러나 나는 지금 십칠 년째 여기서 열심히 잘 살고 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의 투항을 유도하기 위해 운영하는 유튜브 및 텔레그램에 '조선인민군 병사들에게 전하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북한군 대상 선전 영상을 올렸다.
BBC 코리아는 해당 사안에 대한 한국 외교부와 통일부의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