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비트코인 '발명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까
이번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가운데,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최고가를 기록했다.
가상자산(암호화폐) 국제거래소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한국시각 9일 오전 4시 45분께 비트코인 가격은 7 만 7156.92달러(약 1억 800만원)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8일 7만 6850.51달러를 기록한 이래 가장 높은 가격이다.
비트코인은 규모 2조달러(약 2700조원)에 달하는 암호화폐 산업을 뒷받침하는 존재로, 현재 전 세계 주요 투자 업체에서도 거래되고 있다. 심지어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채택한 국가도 있을 정도다.
이렇듯 엄청나게 유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중심에는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비트코인의 발명가로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이 질문에 답하고자 노력했으나, 현재까지 모두 실패로 끝이 났다.
그렇기에 지난 31일, 비밀에 싸인 이 비트코인 발명가가 마침내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사는 물론 암호화폐 업계 전반의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 10월, 미국의 언론사 HBO는 유명 다큐멘터리를 통해 캐나다의 비트코인 전문가 피터 토드가 사토시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토드가 직접 나서 아니라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암호화폐 업계도 전반적으로 이 같은 주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실 토드는 잠재적인 사토시 후보 목록 중 가장 최근에 거론된 인물일 뿐이다. 그리고 지난 31일 기자회견으로 인해 그 목록은 더 길어지게 됐다.
사토시는 암호화폐 산업 자체를 탄생시킨 혁명적인 프로그래머로 여겨지기에 그의 정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의 목소리와 의견, 세계관은 이토록 헌신적이고 열성적인 팬들이 가득한 업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흥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특히 비트코인 가격이 현재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상황에서 만약 사토시가 10억달러 이상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는 수십억달러를 손에 쥔 거부일 것이다.
그 엄청난 부를 감안하면 지난 31일 기자 회견 주최 측이 그의 정체를 공개하는 이토록 성대한 행사에 모인 기자들에게 참가비를 요구하는 건 다소 뜻밖의 일이었다.
맨 앞줄 좌석값이 100파운드(약 17만원)이었다. 그리고 무제한으로 질문하길 원한다면 추가로 50파운드를 더 내야 했다. 심지어 주최자인 찰스 앤더슨은 무대에서 ‘사토시’와 인터뷰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싶지 않냐며 내게 500파운드를 내라고 권유하기까지 했다.
나는 거절했다.
그래도 앤더슨은 내게 참석해도 좋다고 했지만, 기대가 큰 만큼 앉을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결과적으로 좌석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명망 있는 ‘프론트라인 클럽’에 모인 기자들이 열댓 명에 불과했던 것이다.(프론트라인 클럽은 행사 중간 잠시 끼어들어 자신들은 장소만 제공했을 뿐, 공식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내 모든 참석자들이 매우 회의적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조사 결과 주최자는 물론 사토시라고 주장하는 사람 모두 현재 이러한 주장과 관련된 사기 혐의로 복잡한 법적 싸움에 휘말려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렇듯 삐걱거리며 시작됐지만, 거기서부터 상황은 더욱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우선 앤더슨은 ‘사토시’를 무대로 초대했다.
그러자 내내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스티븐 몰라’라는 남성이 무대로 올라와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저는 제가 사토시 나카모토이며, 제가 블록체인 기술로 비트코인을 창시했음을 선언하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후 1시간 동안 참석한 기자들의 표정은 기대감에서 짜증으로 바뀌어갔다. 몰라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제시하겠다고 약속한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우선 오직 사토시만이 할 수 있을 행동인, 가장 막강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초기 비트코인 지갑의 암호키를 제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나는 어리벙벙한 표정의 다른 기자들과 함께 그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기자들의 마음 한편에는 이번 해프닝이 사토시의 진짜 정체를 밝히는 여정의 또 다른 막다른 골목이 되리라는 의심이 자리 잡았다.
‘사토시 나카모토’들
사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사람들은 꽤 많다.
2014년, ‘뉴스위크’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 남성인 도링언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의 창시자라는 주장을 담은 기사를 공개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니라고 해명했고, 해당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1년 뒤인 2015년에는 몇몇 언론인들이 호주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크레이그 라이트가 사토시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크레이그는 이를 부인하다가 이후에는 사실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그 후 수년간 그럴듯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봄, 영국 고등법원은 라이트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판결했다.
한편 미국의 기술 억만장자이자 암호화폐 애호가이기도 한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설립한 기업 중 하나인 ‘스페이스X’의 전직 직원 하나가 제기한 비트코인 배후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던져볼 질문이 있다. 과연 사토시의 정체가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
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구글보다도 더 그 가치가 크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엄청난 기술을 누가 창시했고, 그리고 그중 엄청난 지분을 쥐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우리 삶에서 그토록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힘들어하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진짜 사토시가 정체를 숨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가 보유한 비트코인의 가치는 약 69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그의 삶과 정체에 대해 분명 매우 집중적인 조사가 이뤄질 것이다.
최근 토드 또한 반갑지 않은 관심을 받은 탓에 자신의 안전에 대해 우려하게 됐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한편 암호화폐 업계에는 이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음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이자 (또 다른 잠재적 사토시 후보이기도 한) 아담 백은 최근 X에 “그 누구도 사토시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는 좋은 일”이라고 적었다.
비트코인 관련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나탈리 브루넬 또한 사토시의 익명성은 고의적일 뿐만 아니라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사토시는 자신의 정체를 숨김으로써 비트코인에 개인적인 사상으로 이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심 인물이나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특정한 개인이나 기업을 신뢰하는 대신 시스템으로서의 비트코인을 신뢰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영국 서식스 대학에서 비트코인의 역사에 대해 강의하는 캐롤 알렉산더 금융학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사토시가 누구인지에 대해 서커스처럼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는 탓에 사람들이 암호화폐가 어떻게 기존 경제 작동 방식을 뒤집을 수 있는지 등 더 심각한 질문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나는 프론트라인 클럽 건물을 나서면서 이 희한한 언론 행사와 관련해 단 한가지 사실만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로서는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사토시가 누구인지 찾는 여정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