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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축출한 '선택받은 자'...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누구인가?

5시간 전
노란색 배경 위에 흑백으로 그려진 니콜라스 마두로의 일러스트레이션
Daniel Arce/BBC

니콜라스 마두로가 2013년 우고 차베스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베네수엘라인들은 이를 충분히 예상했다. 마두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전임자가 직접 선택해 권력을 넘겨준, 즉 '선택받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말, 차베스는 결국 그의 생명을 앗아간 암을 치료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와 쿠바 수도 아바나를 오가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그러나 그는 숨지기 전, 국영 TV에 출연해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했다.

차베스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될 경우 당시 부통령이던 마두로가 헌법상 임기를 마칠 뿐 아니라, 새로운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돼야 한다고 밝혔다.

차베스는 마두로를 자신의 정치 과제인 '볼리바르 혁명'을 이어가야 할 인물로 봤다. 마두로는 급진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인 성향으로, 편안한 차림으로 거리 집회에 나서는 모습도, 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공식 회의에 참석하는 모습도 모두 자연스러운 인물이었다.

이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거친 인물, 과소평가된 존재로 여겨지며 정치 경력을 쌓아온 마두로에게는 놀라운 성취였다. 사실 그는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그런 인식을 오히려 즐기는 듯 보였다.

그리고 2013년 3월, 마두로가 차베스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이는 석유 수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던 경제가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던 시점과 맞물려 있었다.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치·사회적 격변이 이어졌다. 위기가 반복되고 마두로의 독재적인 통치에 대한 국내외 비판이 일었으며, 그의 권력 기반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니콜라스 마두로와 우고 차베스가 파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ntoine Gyori/AGP/Corbis via Getty Images
마두로(왼쪽)은 차베스(오른쪽) 사망 직전 후임으로 지목됐다

위기의 대통령

마두로는 처음부터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카리스마 넘쳤던 차베스의 뒤를 잇고, 그가 이끌어냈던 깊은 충성심을 재현해야 했을 뿐 아니라 악화하는 경제 상황에도 대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차베스의 말년에는 유가가 둔화하기 시작하면서 거시경제 개혁이 논의됐다. 차베스 사후, 환율 제도 개편과 같은 개혁을 실행하는 책임은 마두로에 넘어갔다.

그러나 전임자보다 결단력이 부족했고 경쟁하는 세력들 사이에 끼어 있던 마두로의 개혁은 결국 좌초됐다. 2014년 세계 유가가 폭락하면서, 오늘날까지 베네수엘라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심각한 경제 위기가 촉발됐다.

이주민들이 파나마와 코스타리카 국경을 넘으려 시도하는 가운데 파나마 국경관리청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PAUL MONTENEGRO/AFP via Getty Images
2014년 이후 베네수엘라를 떠난 인구는 약 8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분석가들은 빠르게 전개되는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했다. 특히 마두로가 주요 행정 책임을 고위 군 장성들에게 위임하고, 식량과 생필품 수입뿐만 아니라 국가 주요 수입원인 국영석유기업(PDVSA) 운영까지 맡긴 점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군의 영향력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병영 내부에서는 음모, 내부 갈등, 체포 등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됐다. 출범 초기부터 마두로 정부는 끊임없이 위태로워 보였다.

중대한 도전

2015년,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베네수엘라 야권은 1999년 이후 처음으로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이는 여당의 지지 없이도 법안을 통과시키고 관료를 임명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를 예상한 마두로는 새 국회가 출범하기 전 충성파 대법관들을 임명했다. 이들은 국회의 권한을 차단하고, 야당 의원 3명의 자격을 정지시켜 가중 다수결을 이루지 못하게 했고, 이후 국회 결정들을 무효화했다.

여러 중남미 국가가 이러한 조치를 규탄했지만, 2016년 말까지 법원은 국민소환투표와 마두로를 정치적 재판대에 올리기 위한 시도를 모두 막았다. 2017년 3월, 야권은 이를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2017년 정치적·사회적 위기 속에서 니콜라스 마두로가 트럼프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빨간 셔츠를 입고 양손으로 카메라를 가리키고 있다.
Carlos Becerra/Anadolu Agency/Getty Images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때도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대법원은 72시간 만에 판결을 번복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 퍼진 분노가 약 4개월간의 시위를 촉발했고, 이 과정에서 약 120명이 숨졌다. 정부는 탄압으로 대응하는 한편, 대규모 친정부 시위도 조직했다.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지방선거를 실시해 야권을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분열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정부에 협조하며 국회보다 상위에 있는 입법기구인 제헌국회를 출범시켰다. 두 선거 모두 부정 의혹으로 얼룩졌다.

결국 탄압과 시위에 대한 피로감, 그리고 정부의 완강함이 결합해 마두로는 이 격동의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

마두로 대 과이도

2019년 1월, 마두로는 2018년 5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이 선거는 야권 다수가 불참한 가운데 치러졌으며 미국과 유럽연합(EU), 중남미 국가 10여 개국은 이를 부정 선거로 간주했다.

야권은 대통령직이 공석 상태라며, 헌법에 따라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후안 과이도가 임시 대통령이 돼 30일 이내에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이도는 트럼프 행정부와 여러 유럽·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인정받은 인물이다.

2023년 플로리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후안 과이도
Eva Marie Uzcategui/Bloomberg via Getty Images
과이도는 마두로가 베네수엘라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장애물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베네수엘라의 주요 수입원인 석유 산업에 제재를 가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은 급격히 감소했고, 마두로 정부는 해외에 보유하고 있던 수백만 달러 규모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

4월 30일 새벽, 과이도는 베네수엘라 군인 일부와 야권 지도자 레오폴도 로페스와 함께 방송 메시지를 내보내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군 내부에서 마두로 정부에 대한 지지 세력에 결정적인 균열이 발생하지 않았고, 체포 위협에 시달리던 과이도의 도전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커지는 압박

마두로의 권력 기반은 지난 18개월 동안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크게 약화했다. 2024년 7월 베네수엘라 대선과 지난해 1월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다.

마두로는 대선 승자로 발표됐지만, 감사를 거친 공식 개표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반면 야권은 80%가 넘는 검수표를 공개함으로써 야당 후보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가 명백한 승자임을 보여줬다.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노벨 평화상 행사에서 밝은 색상의 정장을 입고 미소 짓고 있다.
Getty Images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2025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두로 지지 기반에 큰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친정부 지역을 포함해 수천 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공식 집계에 따르면 2000명 이상을 투옥했다.

곤살레스 우루티아는 스페인으로 망명했고, 대선 출마가 금지됐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은신에 들어갔다. 그녀는 2025년 12월이 되어서야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중남미 마약 밀매를 근절하기 위한 압박과 강경 전략이 더욱 강화됐다. 트럼프는 마두로가 베네수엘라 군 내 주요 카르텔을 이끌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마두로는 이를 부인했다.

수개월 동안 미국은 트럼프가 "남미 역사상 최대 규모로 집결된 함대"라고 부른 전력을 약 1만5000명의 병력과 함께 베네수엘라 인근에 배치했다.

2026년 1월 3일 카라카스에서 일련의 폭발이 발생한 후, 베네수엘라 최대 군사 단지인 푸에르테 티우나에서 발생한 화재가 멀리서도 목격됐다
AFP via Getty Images
미국은 2026년 1월 3일 베네수엘라 군사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실시했다

이들 병력은 마약을 싣고 있다는 혐의를 제기하며 선박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9월 이후 최소 110명이 숨졌다. 인권 단체들은 이를 "초법적 처형"이라고 표현했다.

마두로 체포 며칠 전, 미국외교협회(CFR)의 국가안보 연구원 록사나 비힐은 미군이 카리브해에 주둔함으로써 마두로의 협상 선택지를 크게 줄였다고 말했다.

결국 이는, 차베스가 직접 선택해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어가도록 했던 인물이 이제 뉴욕 법정에서 자신의 심판을 기다리게 되는 극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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