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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허위 공장에서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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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스리랑카 출신의 라비(가명)는 IT 관련 일자리를 얻어 태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방콕 소재 고층 건물에서 일하는 대신 미얀마의 어느 깜깜한 건물에 갇히게 됐다.

주의: 이 기사에는 폭력 행위, 성폭력 등 보기 다소 불편한 장면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들은 제 옷을 벗기고 절 의자에 앉혔습니다. 그러더니 제 다리에 전기 충격을 가하더군요. 저는 이제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리랑카 출신의 24세 청년 라비(가명)는 IT 관련 일자리를 얻어 태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방콕 소재 고층 건물에서 일하는 대신 미얀마의 어느 깜깜한 건물에 갇히게 됐다.

라비는 태국 서부 매 솟 지역에서 강 건너 미얀마로 인신매매 당한 피해자다.

라비는 그곳에서 중국어를 사용하는 갱단이 운영하는 수많은 사기 공장(센터)으로 팔려갔다. 이들은 이곳에서 라비와 같은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모아두고 장시간 온라인 사기를 벌이도록 종용했다.

거짓 온라인 신분을 만들어 여성인 척 위장해 미국이나 유럽 등의 외로운 남성들을 속이는 일이었다. 그런 다음 마음이 약해진 상대에게 빠른 수익을 약속하며 거액의 돈을 투자하도록 설득한다. 물론 그 거래 플랫폼 또한 가짜다.

라비가 붙잡혀 있던 이른바 “사이버 노예” 센터는 태국과의 국경 지역인 미얀마 미야와디 근처 정글에 숨겨져 있었다. 미얀마 군사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따르면 아시아, 동아프리카, 남미, 서유럽 출신의 청년 수천 명이 IT 관련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이러한 사이버 범죄 센터로 유인되고 있다고 한다.

사기 행각에 동참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겐 폭행, 고문, 강간 등이 이어진다.

라비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6일간 갇혀 있었다”면서 “내게 담배꽁초, 재를 섞은 물만 줬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라비가 “갇힌 지 5~6일째 되던 날, 소녀 2명이 끌려들어 왔는데, 그 소녀들은 눈앞에서 남성 17명에게 강간당했다”고 한다.

“(피해) 소녀 중 1명은 필리핀 국적이었습니다. 다른 소녀의 국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멍이 든 남성의 등을 찍은 사진
BBC
인신매매 피해자인 라비는 16일 동안 고문 당했다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주요 인신매매 중심 국가가 표시된 지도
BBC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누구?

지난해 8월, UN은 미얀마에서만 12만 명 이상이, 캄보디아에서만 10만 명 이상이 불법 도박부터 암호화폐 사기에 이르는 다양한 온라인 사기 동참에 강요당했다고 추정했다.

아울러 인터폴은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미얀마뿐만 아니라 라오스,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에 더해 소규모로나마 베트남에서도 이러한 온라인 사기 센터가 성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폴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취업 사기가 역내 문제에서 글로벌 문제로 확대됐다면서, 여러 국가가 사기 센터 거점지, 인신매매 경유지, 피해자 출신국 등의 형태로 여기에 연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인도 정부는 이번 달 초 캄보디아로 인신매매 당했던 자국민 총 250명을 구출했다고 밝혔으며, 지난달 중국 정부 또한 미얀마 소재 사기 센터에서 자국민 수백 명을 데려왔다.

또한 중국 당국은 미얀마 군정과 무장 단체에 이러한 사기 센터를 폐쇄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스리랑카 당국이 미얀마 내 4개 지역에 자국민 최소 56명이 붙잡혀 있다고 추정하는 가운데 미얀마 주재 자나카 반다라 스리랑카 대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미얀마 정부의 도움으로 8명을 구출했다고 밝혔다.

사기 공장이 자리하고 있거나, 인신매매 경유지이거나, 피해자 출신국인 국가
BBC

한편 이러한 센터를 운영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목표로 삼을 만한 이주 노동자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아시아에서만 매년 공학자, 의사, 간호사 IT 전문가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찾고자 해외로 건너간다.

라비 또한 컴퓨터 전문가다. 경제 위기를 겪는 스리랑카를 떠나 해외에서 취업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중 방콕에서 데이터 입력 관련 일자리를 준다는 현지 채용 담당자를 알게 됐다.

이 채용 담당자와 두바이 출신이라는 동료는 라비에게 기본급 37만스리랑카루피(약 170만 원)를 받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

갓 결혼한 상태였던 라비와 아내는 이 돈을 벌어 자신들만의 집을 지을 수 있길 꿈꿨기에, 현지 중개업체 수수료를 마련하고자 여러 곳에서 대출까지 받았다.

태국에서 미얀마로

그렇게 지난해 초, 라비를 포함한 여러 스리랑카인들은 우선 방콕으로, 그다음엔 미얀마와의 국경 근처인 매 솟으로 보내졌다.

라비는 “우리는 호텔로 향했지만, 이내 총을 든 남성 2명에게 넘겨졌다”면서 “그 남성들이 강을 건너 우리를 미얀마로 끌고 갔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중국어를 사용하는 갱단원들이 운영하는 센터로 넘겨졌는데, 이곳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했다.

라비는 “우리는 겁에 질렸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젊은 남녀 약 40명이 그곳 센터에 강제로 발이 묶였다”고 설명했다.

2009년 9월 8일 미얀마-중국 국경 지역인 라우카잉
Getty Images
미얀마-중국 국경 지역인 라우카잉은 도박, 마약, 사기 조직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라비에 따르면 그곳은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총을 든 괴한들이 24시간 입구를 지키고 있어 탈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라비와 다른 청년들은 하루에 최대 22시간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쉬는 날은 한 달에 딱 한 번뿐이었다. 이들은 매일 최소 남성 3명을 목표로 삼아야만 했다.

따르지 않는 이들은 구타 혹은 고문에 시달렸다. 몸값을 내지 않는 이상 탈출할 수 없었다.

한편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출신의 닐 비제이(21)는 바로 이 방법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비제이는 지난 2002년 8월, 다른 인도 출신 남성 5명, 필리핀 여성 2명과 함께 미얀마로 인신매매 당했다.

비제이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날 어머니의 옛 고향 친구 하나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방콕 소재 콜센터에 일자리가 있다면서 중개 수수료로 15만인도루피(약 240만원)를 요구했다고 회상했다.

비제이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자들이 운영하는 업체 몇 개가 있었다”면서 “다들 사기꾼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업체에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전 희망을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들에게 몸값을 건네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고문당했을 테죠.”

비제이는 사기 행각에 동참하길 거부했고, 비제이의 가족들은 그를 구해오고자 60만인도루피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거나, 조직이 정한 사기 금액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에겐 잔인한 처벌이 뒤따랐다고 한다.

간신히 풀려난 비제이는 태국 당국의 도움을 받아 인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제이의 가족들은 인도 현지 알선업자들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에 나선 상태다.

닐 비제이
NOPPORN WICHACHAT
인신매매의 피해자였던 닐 비제이는 태국 당국의 도움으로 2주 만에 간신히 인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 태국 정부는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 피해자들의 귀환을 돕고 있다. 그러나 태국 법무부 소속 ‘특수 수사부(DSI)’의 피야 락사쿨 부국장은 BBC에 근처 동남아시아 국가의 사기 센터에 강제 억류된 피해자 수에 비해 구출된 이들의 수는 너무나도 적다고 말했다.

락사쿨 부국장은 “사람들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이러한 범죄 조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등 국제 사회가 이러한 사기 범죄에 대해 더 소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락사쿨 부국장에 따르면 인신매매 범죄자들은 방콕을 동남아 내 사기 범죄의 중심지로 이용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도, 스리랑카 등의 국민은 그저 도착 비자만으로도 태국에 입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이 점을 이용해 사기에 끌어들일 피해자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라비에 따르면 부유한 남성들, 특히 서양권 남성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선 훔친 전화번호, SNS 계정, 메시지 플랫폼을 이용해 이들과 로맨틱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직접 접촉했다. 때로는 ‘안녕’ 같은 간단한 메시지가 우연히 잘못 보내진 듯한 상황을 연출했다.

라비에 따르면 일부 남성들은 이러한 메시지를 무시했지만, 외로운 이들, 혹은 성관계를 원하는 이들은 이러한 미끼에 종종 넘어갔다고 한다.

이렇게 피해자가 미끼를 물면, 센터에 억류된 젊은 여성들은 더욱더 이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성적인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태국 당국에 의해 구조된 피해자들의 모습
NOPPORN WICHACHAT
인도 출신 피해자인 닐 비제이는 태국 당국에 의해 구조돼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며칠 만에 메시지 수백 통을 주고받으며 신뢰를 얻고 나면, 이들 남성들을 유혹해 가짜 온라인 거래 플랫폼에 거액을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가짜 앱을 동원해 거짓 투자 현황 및 수익 정보도 보여줬다.

라비는 “만약 어떤 사람이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를 이체하면, 우선 5만달러는 수익이라며 돌려줬다. 그렇게 하면 피해자는 자신에게 15만달러가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론 처음에 송금한 10만달러의 반만 남게 된 셈이고, 나머지는 우리가 가져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피해자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현금을 확보한 뒤엔 메시지 플랫폼 계정 및 SNS 프로필을 삭제하고 사라진다.

이러한 로맨스 스캠의 정확한 규모를 추정하긴 어렵지만,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지난해 발간한 ‘인터넷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로맨스 혹은 신뢰를 이용한 사기 범죄 관련 불만은 미국에서만 1만7000건 이상 접수됐으며, 그 피해 금액은 총 6억5200만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심리적, 육체적 상처

한편 1달간 붙잡혀 있던 라비는 처음에 자신을 붙들고 있던 “업체”가 “파산”하면서 다른 갱단으로 팔려 갔다. 그렇게 미얀마에 붙잡혀 있던 총 6개월간 3개의 갱단으로 넘겨졌다고 한다.

라비는 새로운 갱단원들에게 더 이상 사람들을 속일 수 없다며, 제발 스리랑카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느 날 팀장과 충돌하게 된 라비는 감방으로 끌려가 16일간 고문당했다.

마침내 “중국인 보스”가 찾아와 라비에게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한 그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시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고 제시했다.

라비는 “나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었다. 이미 내 몸의 절반은 마비된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4개월간 라비는 VPN, 인공지능(AI) 앱, 3D 비디오카메라 등을 총동원해 페이스북 계정을 관리했다. 그러면서 스리랑카에 있는 아픈 어머니를 뵐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에 갱단의 고위 간부는 만약 몸값 60만스리랑카루피와 강 건너 태국으로 가는 비용 20만스리랑카루피를 지불하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라비의 부모님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내 겨우 이 돈을 마련했고, 그렇게 라비는 다시 매 솟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태국 공항에서 2만태국바트(약 75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받았고, 이에 라비의 부모님은 또 한 번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라비는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 쌓인 빚이 185만루피에 달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라비는 겨우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갓 결혼한 아내를 자주 보지도 못한다.

라비는 씁쓸한 목소리로 “나는 이 빚을 갚고자 밤낮으로 차고에서 쉴 틈 없이 일한다. 우리 부부는 이자를 갚기 위해 결혼반지도 모두 전당포에 맡겼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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