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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넬슨 만델라의 ANC, 30년 만에 과반의석 실패...결과 인정한 대통령

2024.06.03

지난 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총선에서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당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가 종식됐던 30년 만에 총선 과반에 실패한 가운데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인정했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배출했으며, 이전 총선에서 230석을 차지했던 ANC당은 이번 선거에서 의석 총 400석 중 159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여전히 이번 총선 결과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하면서, 야당들에 함께 공통점을 찾아나갈 것을 촉구했다.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을 준비하는 듯한 모양새다.

제1야당인 민주동맹(DA)은 라마포사 대통령과의 연정 협상엔 열려있다면서도, 현 정부가 내세운 일부 주요 국정과제엔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개표가 모두 완료된 이후인 지난 2일 남아공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선거에서 58%였던 ANC의 득표율이 40%로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ANC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예상했던 45%보다도 더 낮은 수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의 집권을 이어가기 위해선 ANC는 연정을 구성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우리가 좋든 싫든, 국민들은 목소리를 냈다”면서 “정당의 지도자로서, 사회에서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모두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고, 이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은 여러 정당이 공통점을 찾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라마포사 대통령은 “유권자들은 이번 투표를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는 강하며,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한편 남아공의 정당들은 앞으로 2주 안에 연정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 그 후 새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중도 우파 성향으로, 2번째로 많은 의석인 87석을 차지한 DA당은 연정 협상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

존 스틴후이센 DA 당대표는 “우리의 헌법과 헌법의 가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금은 사소한 정치적, 종파적 이익은 뒤로한 채 함께 손잡을 것을 촉구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DA당은 ANC의 핵심 정책 2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배제됐던 흑인들에게 경제적 지분을 마련해 주는 흑인 권한 부여 정책 및 보편적 건강 보장을 위한 ‘국립 건강 보험법’ 제정이다.

그러나 ANC 또한 이 두 정책은 연정 협상 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58석을 얻으며 3위로 올라선 ‘움콘토 위시즈웨(MK)’당은 ANC와 협력할 준비가 됐다면서도, 라마포사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MK당을 이끄는 제이컵 주마(82) 전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 발표 자리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에 불복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라마포사 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치열한 권력 투쟁 끝에 주마 대통령 밀어내고 ANC의 당대표 및 대통령이 됐다.

2013~2016년 남아공 주재 미국 대사였던 패트릭 가스파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주마 전 대통령과 라마포사 현 대통령은 “원수지간”이라고 묘사했다.

지난 1일, 주마 전 대통령은 재투표를 요구하며 선관위가 최종 총선 결과를 발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주마 전 대통령은 만약 선관위가 재투표를 원하는 자신의 요구를 무시하고, 이번 선거가 조작됐다는 MK당의 주장에 대해 따로 조사를 요구한다면 이는 “우리를 도발하는 행위”라며 경고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없는데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덧붙였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현재, 주마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와일드카드로 손꼽혔던 주마 전 대통령은 고향인 콰줄루-나탈주에서 킹메이커로서의 저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MK당은 이 지역에서 ANC의 표심을 흔들고자 했고,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불과 몇 달 전에 결성된 MK당은 44%를 득표하며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ANC는 19%에 그쳤다.

이러한 표심 변화엔 남아공의 지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심각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ANC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도 했다. 해당 주의 주요 도시인 더반에서 차로 불과 20분 거리인 트레난스 파크와 같은 일부 지역에선 무려 10개월간 수돗물 공급이 중단된 바 있다.

이에 주민들은 급수차에 의존하고 있으나, 이조차도 불규칙한 상황이다. 콰줄루-나탈주 주민들은 이번 선거가 끝나면 물 부족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한편 앞서 베키 셀레 남아공 경찰청장은 국가를 뒤흔드는 위협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셀레 경찰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선거 절차에 대한 이의 및 우려를 제시하겠다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할 위협을 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난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 선거 이후 ANC는 줄곧 총선에서 50% 이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부정부패, 실업률, 범죄율 등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며 지지도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에 대해 가스파드 전 대사는 “남아공의 소위 ‘본 프리 세대’ 즉,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1994년 이후에 태어난 청년 수천만 명은 국가가 정치적으로는 변했을지라도 경제적으로는 변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스파드 전 대사는 2015년 당시 지속됐던 정전 사태를 언급하며 “그때부터 이미 ANC당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국가에 필수적인 서비스 제공에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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