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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한국에 온 '국내 1호' 고교 외국인 유학생들의 바람

2024.04.17
태국인 고교 유학생 2명
BBC
'재미'와 '수호'는 올해 3월 의성유니텍고등학교에 입학한 태국인 유학생이다

“언니는 이름이 뭐예요?”

서툰 한국어로 취재진에게 먼저 말을 건 마야위 프리프렘(17)은 한국의 1호 고등학교 유학생이다.

경상북도 의성군에 위치한 의성유니텍고등학교에 입학한지 이제 한 달 남짓 되어가는 마야위의 한국 이름은 ‘태재미’다.

태국 이름은 상대적으로 긴 편이라 한국 학생들과 이름을 부르며 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학생 각자가 마음에 드는 한국 이름을 골랐다.

올해 의성유니텍고등학교에는 마야위를 포함해 외국인 신입생 8명이 입학했다. 모두 태국 촌부리주 과학기술 전문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이다.

포항에 위치한 한국해양마이스터고등학교에도 인도네시아 유학생 4명이 올해 새롭게 입학했다.

누노 고메스(17)는 인도네시아의 한 수산해양계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 한국해양마이스터고로 전학했다.

직은 한국어가 서툴지만 쉬는 날마다 조깅이나 축구, 배구 등 몸으로 하는 스포츠를 즐기며 친구들과 친해지고 있다는 누노는 “두번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는 생각에 한국으로 갈 유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에 지원했다고 했다.

그리고 100명이 넘는 지원자 가운데 면접 절차를 거쳐 선발됐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은 새로운 경험하는 것을 아주 좋아해요. 인도네시아 내에서 취업하기보다는 해외 취업을 많이들 희망하기도 하고요.”

더 많은 기회를 찾아 온 고교 유학생들

선발된 8명의 태국 고교 외국인 유학생들
의성유니텍고등학교
48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은 현지 및 한국 학교 관계자들과의 대면 및 비대면 면접 절차를 거쳐 선발됐다

의성유니텍고의 태국인 신입생들은 유학생으로 선발되기 위해 성적과 학습 태도 등을 평가받았다.

“태국 학교 친구들 모두 한국에서 교육을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원하게 됐죠.”

한국에서 ‘수호’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는 태국인 신입생 푸보로인 상진다(17)는 교내외 관계자들과 몇 번의 면접을 거쳐 선발됐다고 설명했다.

“선발됐단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기뻤어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붙은 거거든요. 제가 가장 뛰어난 지원자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제가 보여준 의지와 노력이 면접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아요.”

태국에서 비즈니스 컴퓨터를 공부했다던 '재미'는 태국보다 교사 1인당 학생수가 적은 한국에서 선생님이 자신에게 집중해 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태국에 비해서 한국은 조금 더 집중적이고 엄격한 교육 체계를 갖고 있어서 한국에서 공부하면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전기기사인 아버지를 따라 자신 또한 전기기사가 되고 싶다는 수호는 “실습에 기반한 수업이 많아서 좋다”며 실습실에 자신이 직접 활용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실습 도구들이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재미와 수호는 여느 10대들처럼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한국어 수업도 듣고 숙제도 하려면 힘들 때도 있어요. 태국에 비하면 공부량이 많긴 해요"라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 고교 유학생 누노
BBC
올해 한국해양마이스터고에 입학한 인도네시아 출신 누노는 유학생으로 최종 선발됐을 때 "매우 기뻤다"며 미소를 보였다

배를 타고 곳곳을 누비는 일을 꿈꾼다는 누노는 유학생 선발에 합격했을 때의 소감을 묻자 미소를 지으며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야한단 사실이 조금 슬프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오게 됐어요.”

누노는 “인도네시아에서 다니던 학교보다 한국의 교육 커리큘럼이 더 전문적이고 우수한 것 같다”고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좋은 직업학교로 진학하는 게 더 중요했다면 한국에서는 학업 성적이 꽤 중요하단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학생이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꼼꼼히 봐주는 것 같아요. 과목 수도 차이가 나요. 인도네시아 직업학교에 다닐 땐 7-8개의 과목을 공부했다면 지금 저는 12개 과목을 공부해요."

해양마이스터고 마이스터운영부장 조준섭 교사는 “인도네시아의 수업 영상 등을 봤을 때 실습실 등 한국 학교와 교육 환경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런 점이 유학생들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양마이스터고 1학년 김무성 학생은 “우리 반에 인도네시아 학생이 있어서 좋다. 누노가 한국어를 아직 잘 못해서 귀여운 면도 있고, 덕분에 인도네시아어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의성유니텍고, 태국촌부리기술학교 MOU 서명
의성유니텍고등학교
경상북도교육청과 경북 내 학교들은 몽골,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4개국의 정부기관 및 현지 학교와 협약을 맺어 고교 유학생 48명을 선발했다

경상북도교육청은 올해 국내 최초로 해외 고교 유학생을 선발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 산업기술인력 수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고등학교 이하 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4년 1월 기준 경북 지역 인구는 약 225만명으로 전국에서 인구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실제로 지난해 경북 지역에서 신입생이 없는 초등학교는 32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으며, 올해도 27곳에서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 선발된 몽골,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4개국 출신 48명의 학생들은 한국해양마이스터고, 의성유니텍고, 신라공고, 경주정보고 등 경북도에 위치한 8개의 직업계 고등학교와 특성화고등학교로 배치됐다.

김미정 경북교육청 창의인재과 장학사는 “구체적인 지원 자격과 선발 방법은 학교에서 정한 후 교육청에서 검토 및 승인하게 된다”며 “학교마다 출결, 자기소개서 등 세부 기준은 다르지만 작년 공통된 자격 요건으로는 중위권 이상의 성적과 한국어능력시험(TOPIK) 1급 수준의 한국어 능력을 갖추었으며, 부모가 재정적으로 유학비 일부 부담이 가능한 학생”이었다고 전했다.

선발된 학생은 국내 학교에서 전문 기술교육을 포함해 한국어 및 한국문화 관련 교육을 이수하게 되며, 각종 장학금 혜택이 주어진다.

'한국에서의 미래를 그려요'

해양마이스터고 신입생으로 입학한 4명의 인도네시아 학생들의 교복 및 기숙사비 등 학비와 기타 경비는 동원산업이 지원한다. 졸업 후 동원산업의 항해사로 입사하는 조건이다.

다만 조준섭 교사는 “동원산업과의 협의 과정에서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인 취업 조항을 명시하는 것은 무리라는 점에 합의했다”며 “동원산업 측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졸업 후 자사 입사를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달받았다”고 설명했다.

누노는 “한국에서 해기사 면허를 취득해 동원산업에 취업을 하고 싶다”며 한국에서 계속 일하면서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한국 원양 산업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의성유니텍고 ‘스마트팩토리과’에서 공부 중인 수호도 “태국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생소한 분야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해 전문성을 갖춰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성유니텍고 박기환 교장은 “현재 모든 산업에서 노동력 자체가 부족하다”며 “수요는 있는데 국내 학생들은 원하는 일자리만 가려고 하다 보니 그 인력을 외국인 노동자로 채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결국 노동의 질을 좀 높이기 위해 (한국에서의) 정규 교육을 받고 한국화가 되어있는, 증명된 해외 인력을 생산 시장에 배치하고자 하는 취지의 사업인 겁니다. 3년 동안 충분히 유학생들에게 직업 교육을 이수시키고, 비전을 제시하고, 취업 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이 곳에 정착하게끔 하는 것이죠.”

존폐 위기에 선 학교들을 살리는 것 또한 사업의 목표 중 하나라는 박 교장은 “현재 의성유니텍고 3학년을 기준으로 보면 세 개의 과 중 한 개가 없다”며 학생 수 미달로 한 반 자체가 없어질만큼 학령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태국 학생 8명이 입학한 게 올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신입생 모집이 안 되는 학교가 많을 거고, 우리 학교도 거기 속할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프로그램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해결 과제는 남아있어

외국인 유학생들의 서툰 한국어는 학교들이 가진 숙제다. 기본적인 한국어 정도만 구사 가능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규 수업을 진행하고 학습 평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경상북도교육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어 학급 예산을 지원한다.

박 교장은 “정규 교과시간과 방과 후에 꾸준히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다”며 언어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이해를 돕기 위한 체험활동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하대학교 다문화융합연구소장 김영순 교수는 "일반 대학에 국제처가 있듯이 프로그램이 확대되면 고교 유학생을 지원할 수 있는 나름의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유학생들의 출신 국가 문화를 잘 알고 있는 전담 상담원이나 현지에서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사 등과의 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고등학교 유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정착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처럼 경쟁 위주의 학교 문화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적응해갈지 등의 문제가 여전히 실험 중에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현재 이 프로그램을 성공시키기 위한 교육 당국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생들의 비자 문제도 해결해야 될 과제로 남아있다. 현재 유학생들은 연수 비자(D-4-3)로 체류 중인데 이들이 국내 기업에서 일하려면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고용허가제(E-9) 비자나 전문대학에 진학해 일을 병행하는 일, 학습 연계 유학(D-2-7) 비자를 받아야 한다.

김 장학사는 “법무부가 ‘지역특화형 비자’에서 제시하고 있는 국내 전문학사 이상 졸업 요건을 지역 고교 졸업으로 확대해주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박 교장 또한 “졸업과 동시에 취업 비자가 발급되는 제도가 행정적으로 처리가 되어야 학생들의 안정적인 진로 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경상북도는 지난 1일 외국인 취업 원스톱 시스템 'K-드림 워크넷 시스템'을 출범해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 지역특화형 비자인 '지역 R(Region) 비자'를 취득해 경북 소재 기업에 더욱 쉽게 취업할 수 있게 돕고 있다.

박 교장은 현재 고교 유학생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도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은 분명히 확대될 겁니다. 교육청에서는 일단 당분간 올해 연계한 4개국에 한해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지속해보자는 방침인 것 같아요. 현재 우리 학교에 관심을 갖고 연락을 준 나라만 해도 체코나 네팔, 중국 등이 있습니다.”

경상북도는 내년에도 외국인 유학생을 선발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올해의 사례를 분석하고 검토해 사업 운영 방향을 개선해나갈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누노는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친구들과 영덕에 놀러갔을 때 내린 흰 눈을 꼽았다.

“언젠가는 드라마에서 봤던 서울 남산타워에도 꼭 가보고 싶어요.”

입학식 때 선보인 장기자랑으로 이미 학교 내에서 인기스타가 됐다는 재미는 학교 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아직 언어가 서툴러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땐 번역기를 사용하거나 몸짓으로 소통해야 해요. 그렇지만 저에게 친절히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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