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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이 가까울 때, 무엇이 '보일까'?

2024.05.11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와 세 명의 보호자
Christopher Kerr
크리스토퍼 커(침대에 기댄 사진)에 의하면,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는 환영이 현실처럼 보인다

1999년 4월, 미국의 의사 크리스토퍼 커는 진로를 바꿔놓을 경험을 했다.

환자 메리는 성인 자녀 4명에게 둘러싸여 병상에 누워있었는데,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70세의 노인 메리는 침대에 앉아 마치 자신에게만 보이는 아기를 안고 있는 것처럼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리는 그 아이를 대니라고 불렀고, 아이를 안아주고 입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다.

메리의 자녀들은 대니라는 아이를 몰랐기 때문에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 병원에 도착한 메리의 여동생은 짚이는 바가 있었다. 메리가 다른 자녀를 낳기 전에 대니라는 아이를 사산했다는 것이다.

이 상실의 고통이 너무 컸던 탓에, 메리는 잃어버린 아기를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원래 일반의였던 커는 심장학을 전공하고 신경생물학 박사 학위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경험이 너무나도 특별했던 나머지, 진로를 바꾸고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경험을 연구하는 데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와 안겨 있는 딸
Plan Shoot / Imazins / Getty Images
커는 “환자에게 좋은 것은 환자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평안함’

메리와의 만남 후 25년이 지났다. 커는 임종이 가까운 사람들이 보는 환영과 꿈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커는 이러한 경험이 보통 임종 몇 주 전부터 시작되며,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빈도가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커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중요했던 순간을 다시 체험하는 것은 물론,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아버지, 자녀, 심지어 반려동물을 보고 대화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환영은 환자들에게 현실처럼 느껴지고, 강렬하게 다가오며, 대체로 평안함을 가져다준다.

커는 BBC 브라질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인연]은 뜻깊고 위로가 되는 방식으로 눈앞에 재현되곤 한다. 이를 통해 살아온 인생을 확인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게 된다”고 말했다.

커는 이런 환자들이 혼란이나 혼동 없이 일관성을 보이며, 신체적 건강이 저하된 상태더라도 정서적·정신적으로는 정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은 이 현상이 단순한 환각이나 착각의 결과라고 일축하며, 결론을 내리기 전에 더 많은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커는 2010년 미국에서 선구적 연구를 시작했다. 임종이 가까운 환자들이 무엇을 보는지 형식을 갖춰 설문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크리스토퍼 커
Christopher Kerr
크리스토퍼 커는 임종이 가까운 이들의 경험을 보고서로 작성했다

모든 환자는 조사 참여 전에 혼란 상태가 아닌지 확인하는 검사를 받았다.

이 연구 이전에 비슷한 경험을 조사한 대부분의 보고서는 환자가 보고 있다고 추정되는 내용을 제3자가 문서화한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스웨덴 국립의학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과학 저널에 게재됐다.

커는 아직 이러한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으며,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연구의 주된 초점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그 원인과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환자의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커는 현재 뉴욕주 버펄로에서 완화의료 제공 기관의 최고 경영자를 맡고 있다.

그의 저서 ‘죽음은 꿈일 뿐: 삶의 끝에서 희망과 의미를 찾는 꿈’은 2020년 출간된 이래 10개 언어로 번역됐다

환자의 손을 잡고 있는 간호사
Getty Images
커는 지나간 인연이 유의미하고 위로가 되는 방식으로 눈앞에 재현된다고 말한다

커는 BBC 브라질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구와 이러한 임종 전 경험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경험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지?

“죽음은 우리 눈에 보이는 단순한 신체적 쇠퇴 그 이상을 의미한다. 죽는다는 것은 관점과 인식의 변화를 포함하며, 실제로 삶을 확증하는 요소까지 포함한다.”

“죽음은 우리를 성찰의 지점에 도달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 가장 큰 성취, 즉 인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인연은 유의미하고 위로가 되는 방식으로 눈앞에 재현되곤 한다. 이를 통해 살아온 인생을 확인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게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때 심리적 또는 심인성 고통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사랑과 의미에 푹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임종 전 경험은 얼마나 빈번한가?

“우리 연구에서 응답자 중 약 88%가 이러한 경험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을 보고했다.”

“이는 일반적인 보고 비율보다 20% 정도 더 높은데, 아마 우리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매일 질문했기 때문인 것 같다.”

“죽음은 하나의 과정이다. 따라서 월요일에 질문하면 금요일에 질문할 때와 전혀 다른 답변을 들을 수도 있다.”

“환자의 임종이 가까울수록, 이러한 경험의 빈도가 증가한다.”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와 의사들
Getty Images
사람들이 떠나는 과정은 다시 연결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여행

주로 등장하는 주제는?

“환자 중 약 3분의 1이 여행 장면을 경험합니다. 사랑했지만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을 회상하는 경우도 많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의 [환영]을 보는 경우가 증가한다. 이 환영은 가장 위로가 되는 경험으로 확인됐다.”

“꿈꾸는 대상도 흥미롭다. 환자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해 준 사람, 가장 소중한 사람의 꿈을 꾸는 경향이 있다. 부모님 중 한 분, 형제자매 중 한 명씩만 나올 수도 있다.”

“환자 중 약 12%는 중립적이거나 불편한 꿈을 꿨다고 답했다. 불편한 꿈은 가장 변혁적이거나 유의미한 꿈에 속한다.”

“따라서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치유되는 경우가 많다.”

“전쟁 생존자로서 죄책감에 시달리던 사람이 죽은 전우를 보며 위로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가 착란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흔한 실수라고 했는데, 이 경험이 특별한 이유는?

“섬망이나 혼란 상태는 아주 흔하다. 특히 임종기에 자주 발생하는데 전혀 다른 경험이다.”

“사람들은 착란 상태에서 빠져나올 때 위로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 경험은 오히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약을 먹거나 침대에 묶인 환자를 불안하게 만들곤 한다...”

“반면 임종 전 환자의 경험은 실제 인물과 사건에 기반한다. 또렷하게 회상하고, 기억을 떠올리며, 큰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

환자들이 꿈을 꾸는 경우도 있지만 깨어 있는 경우도 있다. 두 경험에는 차이가 있을까?

“설문조사 참여자에게 잠든 상태였는지 깨어 있는 상태였는지 질문한 결과, 50대 50이었다.”

“죽음의 과정에는 점진적인 수면이 포함된다. 낮과 밤이 모두 분리되고, 시간 개념이 사라진다.”

“그리고 환자들이 현실감을 10점 만점 중 10점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수면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병상에 누워있는 노인
Getty Images
커는 임종 전 환자들 중 일부는 중립적이거나 불편한 꿈을 꾸기도 한다고 말한다

불치병 아동에 대해서도 연구했는데, 아동과 성인의 임종 경험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아이들은 편견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더 잘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죽음에 대한 개념도 없다. 따라서 아이들은 순간순간을 살아간다.”

“아이들은 매우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이런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에서 사람의 죽음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동물의 죽음을 경험했을 수 있고, 이 경우 똑같은 선명도로 “보이는” 경험을 한다.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와 손을 잡고 있는 사람
Getty Images
커는 환자의 임종이 가까울수록 고인의 환영을 보는 경우가 증가한다고 말한다

가족

이러한 경험은 환자와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에 관해 750명의 인터뷰와 함께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매우 흥미로운 결과였다. 결론은, 환자에게 좋은 것이 환자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좋다는 것이다...”

“우리는 애도의 과정을 관찰하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했다. 이런 경험을 목격한 사람들은 훨씬 더 건강한 방식으로 애도한다. 이것이 고인에 대한 인식과 기억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신경생물학 박사 학위가 있지만, 이런 경험의 근원을 규명할 수 없으며,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의사로서 이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는지?

“매우 겸손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내가 실제로 목격한 경우도 있었는데, 너무나 심오한 광경이었다.”

“환자에게 그 경험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명확하고 정확해서 내가 마치 방해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맥박과 혈압이 측정되고 있는 기계
Getty Images
커는 우리가 죽음의 신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감정적 요소를 소홀히 한다고 말한다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논의는 항상 의학이 아니라 인문학에서 나온다고 언급했다. 의학에서 이 주제를 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경향성은 연구를 시작한 이후 수십 년 동안 변화가 있었는지?

“없다. 오히려 더 경시하는 것 같다.”

“인문학은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개방성이 풍부하다.”

다른 의사들이 증거를 원해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의료계보다 언론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간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젊은 의사들에게 환자들의 경험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증거를 확보하고 의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했다.”

“하지만, 접근 방향이 잘못됐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주류 언론이 이 주제를 조명하자, 널리 수용됐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니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이 주제에 거의 관심이 없지만, 그 서비스를 받거나, 간병에 관여하거나, 그저 자신의 죽음이 궁금한 사람들은 이 연구를 기꺼이 수용한다. 그 대조가 흥미롭다.”

병상에 누워있는 여성
Ge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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