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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말을 배우는 과학자들

2024.04.13
어미 혹등고래와 새끼 혹등고래
Jodi Frediani
어미 혹등고래와 새끼 혹등고래

과학자들이 고래와 '대화'를 최초로 주고받는 데 성공했다. 현재 학계에선 고래가 실제로 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연구선에 장착된 수중 스피커에서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혹등고래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선박 주위를 맴돌았다. 고래는 물 속에서 꼬리를 저으며, 잠수와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뭔가 신호를 보낸 것이다.

과학자들이 혹등고래와 “대화를 나눴다.” 연구자들은 이 우연한 만남을 인간은 아니지만 지능을 가진 생물과 소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평가한다. 이 만남은 2021년 알래스카 남동부 해안에서 일어났다. 당시 과학자 6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앞서 녹음된 혹등고래의 신호를 수중 스피커를 통해 물 속으로 퍼뜨렸다. 그랬더니 혹등고래 한 마리가 마치 대화를 하듯 신호에 응답했다. 연구팀을 놀라게 만든 이 고래에는 이후 ‘트웨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동물 행동학자 조시 허바드는 “(고래를 보면) 마치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래를 관찰하다 보면,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리고 나선 커다란 숨소리가 들리고, 고래의 모습을 볼 수 있죠. 고래가 떼를 지어 다니는 광경은 정말 놀랍습니다.”

당시 연구팀이 혹등고래를 만났을 때, 허바드도 알래스카 프레드릭 사운드 일대에서 엔진을 끈 채로 떠 있던 연구선에 있었다. 그는 “규정에 따르면 고래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배의 엔진을 꺼야 한다”고 말했다. 고래가 인간이 탄 배를 향해 다가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이번 사례에선 생후 38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래 트웨인이 배를 향해 다가왔고, 20분 동안 배 주위를 맴돌았다고 한다.

허바드는 외계 지성 탐사팀, 즉 ‘세티’의 일원이다. 세티는 혹등고래의 의사소통 복잡성과 지능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도 하고 있다. 혹등고래를 만났을 당시, 허바드는 갑판 위에 있었다. 갑판 아래에선 브렌다 맥코완이 수중 스피커를 통해 혹등고래에서 녹음된 신호를 물 속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허바드가 갑판 아래로 내려와 잔뜩 흥분한 연구원들을 봤을 땐, 이미 트웨인이 다른 곳으로 간 뒤였다. 당시 연구원들은 트웨인이 “말”을 되받는 듯한 신호를 보내며, 20분 동안 '대화'를 나눈 것에 몹시 흥분해 있었다.

인간과 혹등고래가 나누는 대화가 최초로 녹음됐다
BBC
인간과 혹등고래가 나누는 대화가 최초로 녹음됐다

고래의 매혹적인 노래는 나름의 리듬을 갖고 있다. 이 노래는 끊임없이 진화해왔고, 바다를 가로질러 아주 멀리까지 전달되기도 한다. 고래는 휘슬음(날카로운 소리) 및 펄스음과 함께, 이를 부딪쳐 소리를 낸다. 또는 반향 탐지를 통해 물속 지형도 상세하게 파악해 낸다.

이런 특징을 가진 고래에 인간은 오랫동안 매료돼 왔다. 실제로 고래의 행동 중에는 인간과 유사한 것들이 있다. 고래는 같은 종뿐만 아니라, 다른 종과도 협력한다. 서로에게 유용한 기술을 가르치고, 새끼를 함께 돌보거나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고래의 주 감각은 시각이 아니라 청각이다. 빛은 고래가 내려가는 해수면 200m 아래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반면 소리는 공중에서보다 물속에서 더 멀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혹등고래, 참고래, 대왕고래 등의 수염고래는 독특하게 진화된 후두를 통해 먼 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는 초저주파를 낸다. 예를 들어 대왕고래는 12.5Hz 정도의 저주파를 내는데, 이는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 밖에 있다. 한편 향유고래와 돌고래, 알락돌고래, 범고래 등이 속한 이빨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동물군에 속한다. 이들은 초고속 흡착음으로 반향 위치를 파악하고, 부드러운 버스트펄스(돌고래 등이 먹이나 목표물을 찾을 때 내는 소리)와 휘슬음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고래목에 송하는 동물들은 5천만 년에 걸쳐 다양하고 복잡한 소리를 내고 들을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고 한다. 고래류는 소리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탐색하고, 짝과 먹이를 찾고, 영역과 자원을 지키고, 포식자를 피한다. 새끼 고래는 인간의 아기처럼 옹알이를 하며, 일부는 개체를 부르는 이름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래가 넓은 지역에 걸쳐 서식하는 경우에는 사는 지역에 따라 방언을 사용한다. 게다가 다른 집단의 방언을 흉내내거나 인간의 언어를 흉내내는 듯한 고래의 사례도 있다고 한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동물계에서 가장 복잡하다고 알려져 있다. 혹등고래 노래 중 최초로 녹음 된 자료는 1952년 미 해군 엔지니어 프랭크 왓틀링턴이 녹음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년 후, 해양 생물학자 로저 페인이 이 신호가 반복되는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규명해냈다. 이로 인해 고래의 발성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고, 이후 수십 년간 고래의 신호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

세티는 언젠가 외계인과 마주쳤을 때 외계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고래의 의사소통을 연구중이다. 고래의 소리가 인간이나 외계인이 사용하는 언어와 유사하게, 복잡하고 지능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가설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맥코완에 따르면, 고래의 의사소통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 초기 단계다.

맥코완은 그날도 알래스카 연안에서 여러 가지 소리를 수중 스피커로 내보냈다. 하지만 앞선 소리들에 대해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전날 고래 무리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 신호가 하나 녹음된 게 있었다”고 말했다. “그 신호를 세 번 재생하자 놀라운 반응이 일어난거죠. 고래가 계속 반응하게끔 고래가 신호를 내는 간격에 맞춰 우리가 내는 신호의 간격도 조절했습니다. 고래가 신호를 내기까지 10초를 기다리면, 우리도 10초를 기다린 거죠. 결국 두 신호가 일치하게 됐어요. 20분 동안 우리는 이 작업을 36차례 되풀이했습니다.”

신호를 교환하는 동안, 트웨인도 간격이 일정한 신호를 냈다. 그래서 이것이 혹등고래의 “언어”로 인간과 고래가 상호 작용을 한 최초의 사례로 추정된다. 허바드는 당시 사용된 신호가 트웨인이 속한 고래 집단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그 신호는 일종의 집단 식별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래를 연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맥코완은 트웨인이 자발적으로 배로 다가왔고 원할 때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게 바로 문제다. 허바드에 따르면 고래는 보통 물고기가 있는 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우리는 물고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죠. 따라서 고래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고래를 찾아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 연구자들은 각각 개별적인 특징을 가진 고래 집단에 음향 자료를 복제해 넣어야 한다.

맥코완 연구팀은 향후 수중으로 보내는 신호의 종류를 다양화할 계획이다. 그는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저희의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신호를 분류하고 그 맥락을 파악해 의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AI가 이 작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과학자들은 바다에 수중청음기를 설치해 향유고래가 내는 소리를 수집했다
Dan Tchernov
과학자들은 바다에 수중청음기를 설치해 향유고래가 내는 소리를 수집했다

이들이 연구하는 곳에서 8000km 이상 떨어진 곳에는 AI를 활용해 향유고래의 대화를 해독하려 하는 연구팀이 있다. 이 연구팀은 AI 및 자연어 처리 전문가, 암호학자, 언어학자, 해양 생물학자, 로봇 전문가, 수중 음향학자로 구성되어 있다.

2020년에 출범해 ‘고래목 번역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단체는 해양생물학자 데이비드 그루버가 이끌고 있다. 이들은 부표에 부착된 마이크와 로봇 물고기, 고래 등에 부착된 태그 등을 이용해 카리브해의 섬 도미니카 해안에서 고래의 소리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루버의 이력은 다소 이례적이다. 그는 원래 미생물을 연구하는 미생물학자였는데, 지금은 지구에서 가장 큰 생물을 연구하고 있다. 처음에 그는 탄소 순환 및 기후 변화와 관련해 바다에서 박테리아와 원생동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했었다. 그러다 산호와 해파리, 상어를 거쳐 고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은) 동물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라며, 고래의 경우에는 “세상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연구하는 향유고래는 동물 중 가장 큰 두뇌를 가지고 있다. 가족 단위로 바다 표면에 모여 ‘코다’라고 불리는 모스 부호 같은 클릭음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루버 연구팀이 연구중인 향유고래 무리는 약 400마리의 어미, 할머니, 새끼로 구성되어 있다.

그루버는 “우리가 고래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은 정말 어려워서 수면 근처에서 일어나는 아주 짧은 상호작용 정도만 볼 수 있다”면서도 “(고래는) 정말 독특하고 온화한 동물이며, 그들에게선 정말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들여다 볼 때마다 그들의 의사소통에서 심오한 복잡성과 구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우리가 고래의 의사소통을 “어쩌면” 풀어낼 수 있는 기술적 발전에 다가서고 있다고 믿고 있다.

연구팀이 수집한 데이터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클릭음을 감지하고 분류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결과는 2024년에 발표될 예정이다. 그루버의 목표는 “다자간 대화”를 재구성하는 것, 즉 향유고래의 발성을 이용해 “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먹이를 사냥하는 동안 고래들이 나누는 대화 장면
BBC
먹이를 사냥하는 동안 고래들이 나누는 대화 장면

하지만 인간이 고래와 대화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꼭 그래야 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고래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고래 사냥에 쓰이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도 새로운 기술이 나와 사냥꾼들을 도운 사례가 있다. 고래의 위치를 파악하고 겁을 줘 더 쉽게 포획할 수 있는 수면으로 유인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수중음파탐지기가 그 예다. 국립해양학센터의 해양 데이터 관리자인 사만다 블레이크먼은 “우리는 말보다는 경청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며, 인간의 관점이 개입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과학자로서 편견 없이 사물을 연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방정식에서 항상 자신을 배제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정말 어려운 일이죠.”

블레이크먼은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수염고래가 있다는 게 이 고래가 생태계에서 갖는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먹이사슬 아래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위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바다 생태계의 건강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고래는 지표가 됩니다.” 하지만 고래목에 속하는 동물의 4분의 1 이상이 위태로운 상태다. 그리고 그 위협 중 주된 것이 인간의 활동이다.

블레이크먼에 따르면, 고래는 바닷속 천연 비료이기도 하다. 바다 속 생명을 제한하는 요소는 철분 부족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성장하려면 빛과 영양분이 필요하다. 플랑크톤은 일반적으로 질산염과 인산염을 획득할 수 있지만, 철분은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를 해결해주는 게 고래의 배설물이다. 고래의 배설물은 철분 농도가 높다. 그는 “고래는 한 지역에서 먹이를 먹고 다른 지역에서 배설한다”며 “고래가 철분을 다시 물속으로 배출하면, 새로운 지역에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유고래는 ‘코다’라고 하는 모스 부호 같은 클릭음으로 서로 소통한다
Amanda Cotton
향유고래는 ‘코다’라고 하는 모스 부호 같은 클릭음으로 서로 소통한다

고래는 지구의 탄소 순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양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포집한다. 그런 다음 이 플랑크톤을 고래가 먹는다. 블레이크먼은 “고래가 죽으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고 했다. “그래서 고래 안에 있는 탄소가 아주 오랫동안 대기로부터 격리됩니다.”

그루버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보다 강하게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AI는 다른 생명체의 소통 체계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요. 우리가 고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세상을 위해서도 좋은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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