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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여왕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불가리아 암흑가와의 어두운 연결고리

2024.06.08
가상화폐의 여왕이라 불리던 루자 이그나토바
Shutterstock
루자 이그나토바는 2017년 10월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그리스 아테네행 비행기를 탄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

2019년 9월, BBC 팟캐스트는 불가리아 여성 루자 이그나토바의 놀라운 이야기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루자 이그나토바는 유령 가상화폐를 미끼로 투자금 45억 달러(약 6조1600억 원)를 빼돌린 뒤 자취를 감췄고 미 연방수사국(FBI)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BBC는 이그나토바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그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갔다. 이그나토바가 불가리아 범죄조직 두목과 긴밀한 관계였으며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의혹을 조사했다. 이그나토바는 빼돌린 일확천금을 사용했을까? 아니면, 경호비를 받아간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살해됐을까?

루자 이그나토바는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성장했고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2014년 가상화폐 ‘원코인’을 출시하기 전까지 금융 분야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이그나토바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원코인에 투자하도록 설득했다. 비트코인 초기 투자자가 손에 넣은 것 이상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드러난 것은 ‘루자 박사’라고 불리던 이그나토바의 사기극이었다. 이그나토바는 비트코인처럼 널리 인정받는 가상화폐의 필수 요소인 디지털 기록을 갖추지 않고 교묘한 투자 사기를 꾸민 것이다.

2017년 10월 독일과 미국의 수사관들이 추적에 나서자, 이그나토바는 이른 아침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그리스 아테네로 향하는 라이언에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종적을 감췄다.

BBC는 지난 1년 동안 이그나토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그나토바가 살아 있는지 자세히 알아내기 위한 시도를 지속했다.

관건은 이그나토바의 측근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미국 국세청(IRS)에서 FBI와 함께 원코인을 조사한 리처드 라인하르트는 수사관들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는 핵심 인물 정보를 BBC에 전했다.

BBC는 이그나토바의 안전을 책임지기로 한 사람이 히스토포로스 니코스 아마나티디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타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라인하르트는 2023년 말 은퇴 후 첫 인터뷰에서 “거물급 마약상이 이그나토바를 경호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타키라는 이름은 여러 번 등장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이는 BBC가 이미 확보했던 정보와 일치했다. 미국 연방정부 변호사들은 2019년 이그나토바의 경호 책임자가 불가리아에서 유명한 범죄조직 소속이라고 전했지만, 그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한 변호사는 “불가리아 역사상 최대 규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중요한 마약상이 루자 이그나토바의 개인 경호를 맡았으며 원코인과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그 인물은 다른 변호사가 하루 전 법정에서 이그나토바의 “실종에 관여됐다”고 말한 “경호 책임자”와 동일인이다.

원코인 사건을 조사한 전 미국 국세청(IRS) 조사관 리처드 라인하르트
BBC
원코인 사건을 조사한 전 국세청(IRS) 조사관 리처드 라인하르트

라인하르트에 따르면, 이그나토바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교묘한 범죄자였다.

“이 사건은 화이트칼라 범죄자가 마약상이나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마피아와 손을 잡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BBC가 입수한 유로폴 유출 문서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서에 의하면, 불가리아 경찰은 2017년 이그나토바가 실종되기 전 이미 이그나토바와 타키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경찰은 타키가 마약 수익금을 세탁하기 위해 원코인의 금융 네트워크를 이용했다고 의심했다.

타키는 모국인 불가리아에서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나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같은 신화적 지위를 손에 넣었다. 그는 불가리아 범죄조직과 마약밀매 카르텔의 우두머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타키와 그 동료들은 무장강도, 마약밀매, 살인 혐의로 불가리아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기소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인터폴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타키의 수배전단
Interpol
한때 인터폴은 타키에게 “적색 수배”를 내렸다

전 불가리아 차관 이반 히스타노프는 2022년 타키가 부패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범죄 네트워크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조사했다. 그는 “타키는 불가리아 마피아의 우두머리로, 엄청난 힘을 가졌다”고 말했다.

“타키는 유령입니다. 절대로 눈에 띄지 않아요. 우리는 그저 들을 수만 있죠. 그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 메시지를 제대로 듣지 않으면 지구상에서 지워지는 거예요.”

“외국 기관을 포함한 모든 조사에서 이그나토바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타키였습니다.”

BBC는 불가리아 정부에 부패 공무원 관련 의혹을 질의했다. 불가리아 정부는 답변하지 않았다.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의 검찰청은 “우리는 범죄나 용의자를 은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타키는 현재 두바이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그나토바는 두바이에서 고급 펜트하우스를 매입했고 원코인 사기로 벌어들인 수천만 달러를 은행 계좌로 입금받았다.

타키와 이그나토바가 어떻게 만났는지, 타키가 처음부터 원코인에 관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였으며, 타키가 이그나토바의 딸의 대부였다고 한다.

이그나토바와 가까운 한 불가리아 소식통은 타키가 이그나토바의 경호비로 매월 최대 10만 유로(약 1억4,900만원)를 받았을 수 있다고 BBC에 전했다.

이그나토바와 타키 사이에는 다른 금전 관계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로폴 문서에는 불가리아 흑해 연안의 토지를 매각하는 복잡한 거래가 언급되어 있다. 이 거래에서 이그나토바의 회사 중 하나와 타키의 아내가 연결된다.

경찰 측의 해당 비밀문서는 프랭크 슈나이더가 BBC에 전달했다. 그는 스파이로 활동했고, 지금은 종적을 감춘 이그나토바의 고문으로 일했다.

슈나이더는 옛 상사가 “사기꾼”, “갱스터”와 함께 일했다고 말했다.

프랭크 슈나이더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BBC
BBC와 이야기를 나눈 지 몇 달 후, 프랭크 슈나이더도 사라졌다

프랑스 자택에서 슈나이더와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 그는 원코인 사기에 연루된 혐의로 가택 연금 상태였고 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엔 이름을 밝힐 마음의 준비가 돼있진 않았다.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가족이 있거든요. 이건 정말 심각한 조직범죄입니다.”

하지만 종국에는, 이그나토바의 보호자가 공격자로 돌변했을 수도 있다.

2022년, 불가리아의 탐사보도 전문매체 bird.bg의 기자 디미타르 스토야노프와 그 동료들은 경찰 보고서를 하나 건네받았다. 살해된 불가리아 경찰관의 집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이 문서에는 경찰 측 정보원이 타키의 처남이 술김에 한 말을 엿들은 내용이 자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타키의 처남은, 이그나토바가 2018년 말 타키의 명령으로 살해됐고, 그 시신은 이오니아 바다의 요트 위에서 토막 나 버려졌다고 말했다. 스토야노프는 이 내용이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고 말한다.

스토야노프는 불가리아 당국이 경찰 문서의 진위를 확인했으며, 타키의 범죄자 동료들은 이그나토바 살해설을 사실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BBC는 이 주장을 다른 경로로 확인할 수 없었다.

타키의 범죄자 동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원코인 사기와의 연결고리를 지우고 싶던 타키에게 수배가 내려진 이그나토바가 골칫거리가 됐다는 것이다.

그 동료들 중에는 인터폴이 살인 혐의로 수배 중인 크라시미르 카메노프도 포함되어 있다. ‘쿠로’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스토야노프가 들은 쿠로의 말에 따르면, 타키가 이그나토바 앞에서 자신의 범죄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쿠로가 타키에게 그런 말을 해도 괜찮은지 물었더니, 타키가 “걱정할 필요 없다. 이그나토바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또한 쿠로는 CIA와 함께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주장했는데, 그 내용에는 타키가 이그나토바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의혹도 포함됐다고 한다. 쿠로와 가까운 소식통은 이 대화가 2022년 말에 진행됐다고 BBC에 알렸다.

2023년 5월, 쿠로는 케이프타운 자택에서 아내 및 동료 두 명과 함께 암살당했다. 남아프리카 경찰은 범인을 찾고 있지만, 불가리아 전 차관 히스타노프는 타키가 쿠로의 살인에 관여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타키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았기 때문에 제거돼야 했죠.”

“그 살인은 일종의 공개 처형이었고 성명서의 성격이 강했어요. 여러분도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항상 생각하세요.”

탐사보도 기자 디미타르 스토야노프는 이그나토바 살해 의혹을 폭로한 뒤 동료들과 함께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기자 일을 하면서 네 번째로 불가리아를 잠시 떠나야 했다는 것이다.

스토야노프는 살해 동기를 안다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부동산 기록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그나토바가 실종된 이후 불가리아에 있는 그의 여러 부동산을 타키의 관계자가 사용 중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루자 이그나토바의 대저택
BBC
루자 이그나토바의 저택은 현재 타키와 관계된 이들이 사용 중이다

타키는 이그나토바 살해 혐의로 체포된 적이 없다. 이그나토바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수사관들은 타키를 기소할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직 IRS 조사관 리처드 라인하르트는 이그나토바의 사망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그는 이그나토바의 죽음과 타키를 연결 짓는 증거를 보지 못했지만, 이 상황이 마약 카르텔의 운영 방식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도둑들 사이에는 명예가 없습니다... 카르텔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생각하면, [타키가] 이그나토바를 위협으로 생각했다면... 잡히게 두는 대신 제거했을 것입니다.”

BBC는 타키의 변호인단에게 이번 수사의 의혹에 대해 문의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2022년, 이그나토바는 FBI의 10대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랐고 아직까지 명단에 남아 있다.

‘실종된 가상화폐여왕(The Missing Cryptoqueen)’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BBC 팀은 살해 의혹이 제기된 후 이그나토바의 행방에 대한 다양한 목격담과 제보를 접수했다. 2022년 그리스에서 이그나토바를 체포하려던 경찰 작전이 실패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이그나토바의 죽음에 대한 소문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또 다른 계책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도피 생활을 지속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히스타노프는 “가끔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직 살아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라인하르트는 FBI가 “재미삼아 10대 지명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그냥 두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명단에서 이름을 지우려면, 누군가가 죽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정황을 고려할 때, 아마도 그런 증거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즉, 사라진 가상화폐의 여왕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도망자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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