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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로 위기에 처한 일본 집권 자민당, 신임 총재에 이시바 시게루 선출

2024.09.27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대신
EPA
일본 여당은 격랑의 시기에 새 지도자를 선출하게 됐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정치 베테랑인 이시바 시게루(63) 전 방위대신이 선출됐다.

지난달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재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면서, 자민당은 새로운 총재를 뽑아야 했고, 총 9명이 출마해 경합을 벌였다. 보수 성향의 자민당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몇 년을 제외하면 줄곧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정당이다.

현재도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이번에 자민당의 차기 총재로 당선된 인물은 일본의 차기 총리가 된다.

이번 총재 교체는 자민당이 여러 부정부패 스캔들과 내부 갈등으로 여러 파벌이 해체되는 격랑의 시기에 치러졌다.

이시바 신임 총재는 대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린 인물로, 과거 총재 선거에 4차례 도전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이 5번째이자 마지막 도전이라며 또 한 번 출마해 승리했다.

당선자는 국민 투표가 아닌 27일(현지시간) 치러진 당 내부 투표로 결정됐다. 총 9명의 후보가 출마해 1차 투표를 거쳐 이시바 후보와 일본 최초의 여성 지도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나에 다카이치 후보 간 결선 투표로 이어졌다.

이시바 신임 총재는 일본 내에서 여러 자민당 의원 및 역대 내각이 반대해 온 여성 군주제에 찬성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 정치계에서 보기 드물게 기시다 총리를 향한 솔직하고 직선적인 발언과 공개적인 비판으로 동료 당원들에게는 반발을 샀으나,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반면 다카이치 후보는 이번에 출마한 단 2명의 여성 후보 중 하나이지만, 후보 중 가장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측근으로,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한 다카이치 후보의 입장은 여성이 좋은 어머니이자 아내로 전통적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자민당의 기존 정책과 일치한다.

일례로 다카이치 후보는 여성의 결혼 전 성 유지 허용 법안 및 여성의 군주 등극을 허용해야 한다는 법안에 반대한다.

연설 중인 사나에 다카이치 후보의 모습
Getty Images
도쿄 소재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연설 중인 사나에 다카이치 후보의 모습. 다카이치 후보 바로 오른쪽에 고이즈미 신지로 후보가 앉아 있다

이렇듯 차이는 있으나, 두 후보 모두 자민당을 향한 대중의 분노와 이에 따른 지지율 하락으로 위기에 빠진 자민당을 재정비하겠다는 공약을 공통적으로 제시했다.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다가오는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자민당이 변할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그저 차기 총재를 뽑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달간 경기 침체, 어려운 가계 경제 상황, 여러 정치 스캔들로 무너진 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당이 내놓은 해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스캔들 중에서도 일본에서 논란이 많은 종교인 통일교가 당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폭로, 수십 년간 당내 파벌들이 정치 자금을 빼돌렸다는 의혹 등이 가장 여파가 컸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자금 스캔들의 여파로 자민당 내 파벌 6개 중 5곳이 해체됐다. 이들 파벌은 오랫동안 자민당의 근간을 이루던 세력으로,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보통 이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9인
Reuters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9인(왼쪽부터): 사나에 다카이치, 고바야시 다카유키, 하야시 요시마사, 고이즈미 신지로, 가미카와 요코, 가토 가쓰노부, 고노 다로, 이시바 시게루, 모테기 토시미츠

그러나 일본 대중들의 마음속에 더 중요한 의제는 아마도 경제에 대해 깊어지는 우려일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본 서민들은 엔화 약세, 경기 침체, 거의 반세기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치솟는 식품 가격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데이터에 따르면 이들의 임금은 30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다.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물가 상승률과 더불어 오랫동안 이어진 경기 침체로 인해 일본인들이 직면한 부담감은 더욱 커져만 갔고, 이로 인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역사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받았던 자민당의 지지도 또한 타격을 입고 있다.

전 야당 의원이자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메이코 나카바야시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현재 자민당에 지친 상태”라면서 “일본인들은 현재의 물가 상승률과 소위 ‘잃어버린 30년’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일본 통화의 가치는 낮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수많은 수입품의 가격은 치솟았으며, 많은 이들이 이를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요 의제는 일본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이다. 이로 인해 사회·의료 서비스 및 일본의 중장기적 노동력에 가해지는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자민당의 신임 총재, 즉 차기 총리는 일본 사회의 노동 시장 운영 방식 및 기존 이민 정책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일본의 번화가
Getty Images
현재 일본 국민들은 경기 침체 및 식품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이번 선거는 내년 10월로 예정된(일부 후보가 암시한 것처럼 더 빨리 치러질 수도 있다) 총선을 앞두고 절실히 필요했던 재조정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이즈미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바로 총선을 소집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번 선거까지의 지난 2주는 총선을 위한 오디션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렇기에 후보자들은 총재 선거에 투표하는 당내 인사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눈도장을 찍고자 노력했다.

교토 소재 리쓰메이칸 대학의 객원교수이자 아베 및 기시다 총리와 긴밀히 협력해온 쿠니히코 미야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은 변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보수 정치도 새로운 정치 환경과 정치적 경쟁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1차 후보에 이름을 올린 나머지 7명의 후보는 최연소 후보인 고이즈미 신지로(43), 또 다른 여성 후보이자 일본의 현 외무상인 가미카와 요코(71), 고노 다로(61) 디지털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63) 관방장관, 모테기 토시미츠(68) 자민당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49)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 가토 가쓰노부(68) 전 관방장관이었다.

총 9명 중 4명은 외무상을, 3명은 방위상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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