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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통제된' 비행 구역에서 어떻게 이런 사고가 발생했나?

2025.02.01

지난 29일(현지시간) 밤 미국 워싱턴 DC 근처 공중에서 여객기와 군용 헬기가 충돌한 가운데 항공 업계는 한 전문가가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통제된 비행 구역"이라고 묘사한 이곳에서 어떻게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고자 애쓰고 있다.

군인 3명이 타고 있던 미 육군 소속 '블랙호크' 헬기와 승객 64명을 태우고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착륙하려던 '아메리칸 항공' 소속 여객기가 서로 충돌하며 두 사고기 모두 얼어붙은 포토맥강으로 추락했다.

정확한 충돌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 조사를 맡은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에 따르면 앞으로 30일 이내에 당국의 예비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BBC의 현지 파트너인 CBS 뉴스에 따르면 30일 잔해에서 블랙박스(비행 데이터 기록 장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해당 장치는 정확한 추락 원인 파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통제된 비행 구역

여러 핵심 정부 기관이 자리한 워싱턴 DC이기에 이곳 상공은 국가 안보 보호를 위해 철저히 통제된다.

우선 상업용 항공기는 펜타곤(미국 국방부 청사), 백악관 및 여러 역사적인 건물 위를 지날 수 없다.

그럼에도 이곳은 항공 교통량이 많은 상공이라는 게 항공 전문 변호사 짐 브래클의 설명이다.

상업용 항공기뿐만 아니라 종종 도시 주변의 주요 장소를 오가며 고위 관료나 정치인을 실어 나르는 전용기, 헬기도 이곳 상공을 오간다.

항공 소송 및 워싱턴 내셔널 공항과 관련한 여러 소송을 맡은 바 있는 브래클 변호사는 "이곳은 (항공기가 드나드는) 경로가 매우 좁아 혼잡하고, 다니는 항공기도 많다. 즉 무척 좁게 제한된 구역에 수많은 항공기가 함께 다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과거 '미 연방항공청(FAA)'과 (NTS)에서 항공기 사고 조사관으로 근무했던 제프 구제티는 BBC 뉴스아워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전 헬기가 관제탑과 교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항공 관제사가 근처 여객기에 대해 헬기 측에 주의를 줬다는 것이다.

"해당 헬기 조종사는 해당 여객기가 시야에 들어왔다며, 거리를 유지하며 벗어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직후 사고가 발생했다"는 구제티 전 조사관은 "그렇기에 헬기 조종사가 당시 정확히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헬기 비행 구역

총 5명으로 구성된 NTSB 위원회의 토드 인먼은 워싱턴 DC는 헬기 및 헬기 비행이 허용된 특정 구역으로 인해 "독특한 환경"이라고 언급했다.

인먼 위원은 "수많은 헬기가 DC에 착륙하고, 이러한 헬기 비행과 관련해 시스템이 아주 잘 마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에 충돌한 헬기의 사고 전 고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브래클 변호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두 항공기가 어떻게 같은 비행 구역에 있게 되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내셔널 공항은 강 바로 위에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는 브래클 변호사는 "그리고 이 공항에 접근하는 마지막 경로를 가로질러 헬기 경로가 나 있다. (이 헬기 경로는) 200피트 이하 혹은 그 정도 높이"라고 덧붙였다.

즉 항공기와 헬기의 접근 경로가 서로 교차한다는 것이다.

브래클 변호사는 "즉 아주 좁은 공간에서 항공기와 헬기가 거의 거리를 두지 못한 채 지나다니는 것"이라면서 "그렇기에 만약 한 대는 너무 높게 날고, 한 대는 너무 낮게 날면 결국 같은 비행 구역에 2대가 함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여러 항공 시스템이 교차하는 '연결점'

항공 컨설턴트 필립 버터워스-헤이스는 민간, 군용 시스템 및 이곳 공항만의 특수한 절차 등 "다양한 항공 시스템이 교차하는 연결점"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3~4가지 항공 시스템이 만나는 지점으로, 사고는 대부분 이러한 경계 지점에서 발생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항공 전문가인 존 스트릭랜드는 이 구역의 상업용 항공 교통량만으로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도심과 가까운 워싱턴 내셔널 공항뿐만 아니라 국제적 관문인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조금 더 떨어진 볼티모어 공항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교통량 흐름을 분리해서 관리해야 합니다. 영국 런던에서 히드로, 스탠스테드, 개트윅, 런던시티 공항 사이 교통 흐름을 관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DC는 런던이나 뉴욕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이라고 무척 특이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편 버터워스-헤이스는 "워싱턴 DC는 세계에서 가장 철저히 통제되는 영공"이라면서 "미국 정부와 민간의 시스템이 모두 존재하는 곳이다. 내셔널 공항은 심지어 미국 내에서 보기 드문 정부 소유 공항"이라고 덧붙였다.

"이 지역에 얼마나 많은 보안 및 민간 안전 기관이 있는지 생각하면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비행 구역이자, 가장 안전해야 할 비행 구역입니다."

레이더에 포착된 항공기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발생한 여객기 관련 사망 사고는 2009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은 모든 종류의 비행과 관련해 엄격한 안전 규제가 마련되어 있기에 이런 종류의 사고는 극히 드물다고 강조했다.

한편 CBS 뉴스가 항공 교통 관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영상에 따르면 관제사가 접근할 수 있는 레이더 시스템에는 사고기로 보이는 두 물체가 선명하게 확인된다.

아울러 BBC 뉴스가 입수한 음성 파일은 사고 전 헬기가 지상의 관제탑과 교신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관제사는 헬기 조종사에 근처 여객기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 "그 뒤로 지나갈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음성 파일에서는 충돌 사고가 발생했음을 인지한 관제사들이 비행 중이던 다른 항공기들을 주변의 다른 공항으로 유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버터워스-헤이스는 이와 같은 공중 충돌 사고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맞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군용 헬기가 민간 영공을 비행하기 위해서는 주변 항공기들에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트랜스폰더를 장착한 상태여야 한다고 한다.

즉 민간 영공을 지나는 항공기와 헬기는 서로의 위치를 알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관제탑이 이와 관련해 지시도 내리고, 각기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안전장치도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서로 다른 두 시스템이 존재했는데,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항공기들은 서로 거리를 유지한 채 비행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한편 사고 헬기는 제12항공대대 B중대 소속으로, 버지니아 소재 '포트 벨부아' 군사기지를 출발해 훈련하던 중이었다.

'경험이 풍부한' 헬기 승무원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사고 헬기의 승무원들은 "경험이 풍부한" 이들로, 연례 야간 비행 훈련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퇴역한 미 공군 대령인 세드릭 레이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군용 헬기가 해당 구역에서 야간 훈련을 벌이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면서, 특히 조종사가 어둠 속에서 비행하는 데 필요한 계기 사용에 능숙한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레이튼 대령에 따르면 해당 헬기가 속한 부대의 주요 임무는 DC 주변에서의 고위급 관료 수송이지만, 사고 당시에는 훈련 비행 중이었기에 탑승한 관료는 없었다.

레이튼 대령은 해당 부대의 조종사들은 DC의 혼잡한 영공에서 비행하는 데 능숙해야 하며, "이와 같은 사고를 방지하고자 훈련"을 한다고 덧붙였다.

버터워스-헤이스 또한 오직 숙련된 조종사만이 이렇게 복잡한 영공에서 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스템이나 장비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이었는지, 조종사가 헬기에서 사용한 시스템은 어떤 것이었는지, 안전 시스템은 모두 구비되어 있었는지, 새로운 절차나 경로를 시도하고 있었는지 등 의문을 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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