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만 간 긴장 관계의 배경은?
중국 당국이 대만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대만 공격을 가정한 이 같은 훈련은 올해 들어 2번째며,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취임 후 처음으로 지난 10일 중화민국 국경일 기념 연설을 한 지 며칠 만에 이뤄졌다.
중국의 이번 훈련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야말로 대만 문제의 핵심임을 잘 보여준다.
중국은 대만을 언젠가는 자국의 일부가 될 것이지만 지방으로 보고 있으며, 통일을 위한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물론 대다수 대만인들이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지도, 중국과 통합하지도 않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 찬성하긴 하지만, 다수의 대만인들은 대만을 별도의 국가로 생각한다.
중국과 대만의 역사는?
대만 섬에 최초로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현대 중국 남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다.
중국 측 기록에 대만 섬이 처음 언급된 것은 서기 239년으로, 당시 황제가 원정대를 파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은 이를 근거로 대만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다.
이후 상대적으로 짧았던 네덜란드 식민지 기간을 지나, 대만은 중국 청나라에 의해 통치됐으며, 이후 제1차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손에 넘겨졌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결국 일본은 항복 선언을 하고 중국으로부터 빼앗은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했다. 그 후 중화민국이 동맹국인 미국과 영국의 동의를 얻어 대만을 공식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년 후 중국에서 내전이 발발했고, 당시 중화민국의 지도자였던 장제스 총통의 군대는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군에게 패배했다.
장 총통과 그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 잔당 및 지지자 약 150만 명은 1949년 대만 섬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장 총통은 이곳에서 1980년대까지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가 사망한 후 대만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며 1996년 첫 선거가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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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인정하는 국가는?
대만의 지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만은 자체적인 헌법,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현역병 약 30만 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장제스의 망명 중화민국 정부는 처음에는 자신들이 중국 전체를 대표한다면서, 중국 본토를 다시 차지하고자 애썼다. 이들은 UN 안전보장위원회에 중국의 이름으로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다수의 서방 국가들로부터 유일한 중국 정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만 정부를 더 이상 중국 본토인들을 대표하는 정부로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71년, UN은 대만이 아닌 베이징의 정부를 외교적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1978년 중국이 경제적으로 개방하자 미국은 이를 무역의 기회로 보고 관계 발전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1979년, 미국은 베이징 정부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 이후로 대만 중화민국 정부를 인정하는 국가의 수는 급격히 감소해 현재 12개국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중국은 외국이 대만을 인정하지 않도록 외교적으로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만과 중국의 관계는?
1980년대 들어 대만이 중국 방문 및 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양안 관계는 개선되기 시작했다. 1991년, 중화민국은 중국과의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중국은 대만 측에 자신들의 통치를 받으면 상당한 자치권을 허용하는 이른바 ‘일국양제’를 제안했다.
이 제도는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최근까지 통치된 방식의 기반이 됐다. 중국은 최근 들어 홍콩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대만은 이 같은 제안을 거부했고, 중국은 대만의 중화민국 정부가 불법이라고 주장하게 됐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의 비공식 대표들은 여전히 제한적이나마 회담을 이어왔다.
그러던 2000년, 대만에서는 민진당(DPP)의 천수이볜이 총통으로 당선됐고, 이는 중국의 불안을 자극했다.
천 총통과 민진당은 공개적으로 대만의 ‘독립’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2004년 천 총통이 재선되고 1년 후, 중국은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시도할 경우 자신들은 “비평화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이른바 분리 독립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천 총통의 재선 임기가 끝난 뒤 다시 대만에는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선호하는 국민당 출신의 총통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던 2016년,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총통으로 당선됐다. 차이 총통 집권 이후 대만과 중국의 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중국은 차이 총통 집권 이후 대만과의 공식적인 소통도 단절했다. 차이 총통이 하나의 중국 개념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차이 총통은 대만은 이미 독립했다고 주장하며, 대만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겠다고 말한 바 없다.
그러나 차이 총통의 임기 기간 중국의 지도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었고, 시 주석 체제에서 중국의 주장은 점점 더 공세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은 대만과 “반드시 통일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되풀이하는 한편, 2049년을 “중국몽 달성”의 목표 시점으로 내세웠다.
올해 1월, 대만에서는 차이 총통의 부총통이었던 라이칭더가 차기 총통으로 선출됐다. 그는 중국이 ‘분리주의자’로 규정한 인물이다.
그리고 중국은 그의 취임 첫 주에 ‘리젠(‘합동 검’이라는 뜻) 2024A’라고 이름 붙인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면서 이는 “분리주의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라이 총통을 역대 “최악의” 민진당 출신 총통이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최근 ‘리젠 2024B’라는 이름의 2번째 훈련이 진행됐다. 이번 달 10일 대만 쌍십절을 맞아 라이 총통이 대만의 자치 지위를 수호하겠다고 연설한 지 며칠 만의 일이었다.
미국은 양안 관계와 어떤 관련이 있나?
미국은 중국과 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베이징 정부를 유일한 중국 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제 사회에서 대만의 가장 중요한 지지 세력이기도 하다.
미국은 자국법에 따라 대만에 방어 무기를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방어할 것이라고 말하며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만은 오랫동안 미-중 관계에서 가장 논쟁거리 중 하나로, 중국은 미국이 대만을 지원하는 듯한 모든 것을 비난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은 대만 주변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전례 없는 보복성 무력시위로 대응했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대만 섬 인근에 기록적인 수의 전투기를 배치하고, 미국과 대만의 정치적 교류에 대응하는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이른바 ‘회색지대 분쟁’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2022년 중국 전투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 침입 횟수는 거의 2배 늘었다.
이번 미국 대선 결과는 미-중 관계의 향후 방향을 결정할 것이며, 누가 승자가 되든 미국, 중국, 대만 간 미묘한 관계에 지워지지 않을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