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구매로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돈을 절약할 수 있을까?
식료품의 대량 구매는 번거로워 보일 수 있지만, 더 친환경적인 방식이고 비용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나는 로스앤젤레스 한 마트의 12번 통로에 서서 유기농 귀리 한 봉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리 가격은 11.99달러(약 1만6570원)였다.
우리 가족이 일주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건 좀 너무하다. 나는 귀리가 그렇게 비싼 식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은 돈보다 편의성을 우선시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친근한 동네 마트가 바가지를 씌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바로 그 12번 통로에서, 중간 유통 경로를 배제하고 생산자에게 직접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무엇을 살 수 있을지, 얼마나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을지, 그리고 포장은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주 구매하는 마른 식품을 목록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유제품을 산지에서 직접 구매하는 방법도 알아봤지만, 일이 금방 복잡해졌다. 그래서 오일·귀리·쌀·녹두·차의 대량 구매 방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신뢰할 수 있는 유기농 공급처를 찾고, 판매자의 소재지, 농산물의 산지, 운송 방법 등의 공급망을 조사한 다음, 비용과 각 품목의 포장 방법을 파악해야 했다.
나는 조사에 돌입했다. 정말 많은 조사를 했다. 특히 귀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티끌 모아 태산
48달러(약 6만6300원)에 구매하려던 유기농 귀리 25파운드(11.4kg) 한 봉지가 2.6파운드(1.18kg) 8.99달러(약 1만2400원)짜리보다 가성비가 좋은지 계산하기 위해 학교에서 배운 모든 수학 실력을 동원했다.
정답은 ‘그렇다’였다. 대용량 제품은 파운드당 1.92달러(약 2700원)였고, 마트의 소형 제품은 파운드당 3.46달러(약 4800원)였다.
만약 마트에서 25파운드(11.4kg) 무게의 귀리를 샀다면, 86.50달러(약 12만원)를 지출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유기농 코코넛 오일이었다. 3.8L에 30.75달러(약 4만2500원)였고, 400ml에 7.49달러(약 1만300원)이었으니, 같은 양을 작은 병으로 구입했다면 71.15달러(약 9만8200원)를 지출했을 것이다.
녹두 구매도 성공적이었다.
보통 2파운드(0.91kg) 한 봉지에 11.99달러(약 1만6600원)를 지불했는데, 25파운드(11.4kg) 봉지를 71.75달러(약 9만9100원)에 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78.13달러(약 10만7900원)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렇다. 같은 양의 녹두를 소량으로 구매한다면 가격이 두 배 이상 들어가는 셈이다.
금전적인 결론은 무척 간단했다. 대량 구매가 훨씬 저렴했다.
탄소 발자국
하지만, 대량 구매가 지구에도 더 좋을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다.
캐나다 폴리테크니크 몬트리올의 지속가능성 혁신 박사과정 학생 발레리 파트로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의 환경 영향 평가에 필요한 종합적인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친환경성을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쓰레기 감소 효과는 측정할 수 있겠지만, 탄소 발자국을 평가하려면 일반적으로 라이프사이클 평가를 통해 더 자세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합니다.”
결국, 나는 최대한 단순한 방법을 찾기로 했다. 먼저, 이 실험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판매하는 한 회사를 찾았고 녹두, 민들레 뿌리 가루(차·커피 대용), 쌀, 귀리를 주문했다.
모든 품목을 한 회사에서 한꺼번에 주문했기 때문에, 운송 시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배송용 포장을 줄일 수 있었다.
식품의 운송 거리는 식품 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중 19%를 차지하는 만큼, 최대한 현지에서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센셜 오가닉(Essential Organics)이라는 회사는 워싱턴에 본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취급 상품은 전 세계에서 생산된다.
민들레차는 중국산. 쌀은 태국산. 녹두는 인도산. 코코넛 오일은 필리핀산. 귀리만 미국산이었다.
여기서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개별 품목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소매업체 에센셜 오가닉의 알라나 라베르뉴 대변인은 회사에서 대량 구매를 장려하기 때문에 배송 가능한 최소 금액이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라베르뉴는 “이렇게 하면 제품 대비 플라스틱 포장의 비율을 최소화하고 무게당 더 많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량 구매와 현지 구매를 동시에 달성하기는 다소 어렵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쇼핑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결국,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대량 주문이 가능하다면, 식품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모든 합리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왕 도착한 마트에서 귀리를 그냥 샀다면 탄소 발자국이 더 적게 들진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끝이 없다.
쓰레기 줄이기
미국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4%만이 재활용된다. 전 세계 통계는 9%가량으로, 약간 더 높다.
하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플라스틱의 양과 플라스틱이 환경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고려하면 여전히 우려되는 수준이다.
대량 구매를 하면 돈과 함께 쓰레기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 주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
하지만, 2023년 파트로가 공동 저자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쓰레기, 특히 일회용 포장재로 인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파트로는 “라이프사이클 평가를 활용하는 과학적 연구 가운데 대량 구매 시나리오를 평가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일회용 용기에 담긴 제품을 여러 개 구매하는 것보다 같은 양을 대용량 제품으로 구매하는 편이 친환경적이라는 사실이 많은 연구에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제품마다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상품마다 섭취 후 설거지 강도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요거트와 견과류를 비교할 수 있겠죠. 설거지에 사용되는 에너지원과 같이 기타 요인에 의해서도 환경 발자국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파트로는 용기 재사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샴푸와 컨디셔너를 플라스틱 용기에 든 상품 대신 바 타입으로 사용 중이었기 때문에 욕실용품에서는 대체제를 찾지 않았다.
대신, 주방의 지속가능성은 좀더 높이고 싶었다.
새로 산 귀리는 큰 갈색 종이 봉투에 들어 있었다. 원래 구입하던 귀리는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종이 통이나 플라스틱 파우치에 담겨 있었기 때문에 이 변화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따라서 대용량 귀리는 환경 보호와 비용 절감 모두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오일은 대용량 제품이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반면, 소용량 제품은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이 부분을 고민하다가 로스앤젤레스의 유리 재활용 기사를 보면서 삼천포로 빠졌다. 일반적으로 유리는 플라스틱보다 더 많이 재활용된다. 약 3분의 1은 새로 태어난다.
2023년 해당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대용량 제품이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사용했다고 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생각은 없었다.
대량 구매의 주요 장벽은 위생 문제, 추가적인 노력, 제한적인 접근성이었다.
그리고 주요 동기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금전적 이득이었다.
새로 채워진 찬장을 보면서, 다른 구매 장벽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예를 들어, 특정 식습관은 대량 구매에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직접 요리하는 경우가 많고, 가공식품을 적게 먹으며, 식물성 식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내 식습관에는 대량 구매가 잘 맞았다.
하지만, 다들 녹두를 즐겨 먹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더 저렴할 수 있더라도, 예산이 한정적인 가운데 큰돈을 식료품에 한꺼번에 지불하는 것이 모두에게 항상 가능한 방식은 아니다.
파트로는 대량 구매의 이점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흔히 대량 구매가 환경에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생산부터 소비 이후까지 제품의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파악하지 못하면, 전체 영향을 이해하기 어렵다.
파트로는 더 적극적인 대량 구매를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