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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라기와 가죽채찍을 들고 나선 남아공의 시민 순찰대

2024.05.13
아벨 라펠레고
BBC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외곽에 사는 아벨 라펠레고는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진 순찰대가 지역 사회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번 달 말 총선을 앞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민들에겐 폭력 범죄도 빠질 수 없는 고려 대상이다. 정치인들도 폭력 범죄 해결에 관한 온갖 공약을 내놓고 있다.

현재 남아공의 살인율이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BBC 아프리카 아이팀은 최전선에서 범죄 예방을 위해 싸우고 있는 지역 사회를 독점 취재했다.

형광 주황 및 노란색이 섞인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하자 호루라기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한 경찰관이 총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지자 누군가의 ‘세상에’라는 비명이 들려왔다.

남아공의 상업 중심지인 요하네스버그 외곽에 자리한 디엡슬루트 지역의 금요일 밤 모습이다.

이곳 주민인 아벨 라펠레고(41)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라펠레고는 매일 해가 진 어두운 밤거리를 순찰하는 자원봉사자 팀을 이끌고 있다.

이윽고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모여든 사람들이 흩어진다.

라펠레고가 팀원들을 향해 “순찰대 여러분, 길을 터줍시다!”라고 외쳤다.

“경찰들이 자신들의 일을 할 수 있게 비켜줍시다.”

이날 비번 중 총상을 입은 경찰관 톰 마셸레(38)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몇 주 후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이는 아무도 없다.

자발적으로 팀을 꾸려 순찰 중인 시민들의 모습
BBC
자원 순찰대원들은 행인들을 대상으로 불시 검문을 벌이거나, 수상한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유엔 마약 범죄 사무소’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남아공은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지난해 발생한 살인 사건은 2만7000건을 웃도는데, 이는 인구 10만 명당 45명 수준이다. 비교해 보자면, 미국의 살인율은 10만 명당 6명 수준이다.

라펠레고는 이렇게 치안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킬 방법은 비록 목숨이 위협받을지라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조직해 순찰에 나서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디엡슬루트는 지금 범죄자들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순찰대는 경찰들과 긴밀히 협조한다.

경찰과는 비공식적인 합의를 맺은 셈이다. 경찰은 이들이 벌이는 활동을 어느 정도 법적으로 제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보수를 받아 나서지 않았으며, 총기를 소지한 이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샘복’, 즉 이 지역 전통 가죽 채찍을 가지고 다닌다.

라펠레고는 “우린 행인들을 대상으로 불시검문을 하고 있다. 범죄자인데 협조하지 않을 경우 샘복을 휘두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순찰대엔 불심검문을 할 법적 권한이 없지만, 늦게까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행인들을 붙들고 질문을 던진다.

어느 상점 주인이 다가와 지나가는 순찰대원들을 붙잡고 방금 강도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이에 순찰대는 현장에서 도망가는 한 남성을 붙들고 사라진 휴대전화와 현금 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이들은 샘복을 휘둘러 이 남성을 폭행했다. 이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이후 남성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기에 이 남성을 다시 놔줬다.

무슨 권리로 이렇게 하냐는 질문에 라펠레고는 “기억해달라. 디엡슬루트는 우리의 보금자리이며, 우리가 우리의 보금자리를 고치지 않으면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무력 사용을 옹호했다.

남아공의 범죄 통계에 따르면 살인 피해자 중 압도적인 다수가 젊은 흑인 남성이다. 순찰대원들에게도 위험이 따르는 건 마찬가지다.

실제로 2년 전, 당시 21세 청년이었던 알파 리코초가 자발적으로 나서 순찰을 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다.

알파의 아버지인 데이비드 리코초는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아들은 자기 삶, 저의 삶, 모든 이들의 삶을 보호하고자 애썼습니다. 범죄에 맞서 싸웠습니다.”

휴대전화 속 사진
BBC
데이비드 리코초는 2년 전 총에 맞아 숨진 아들 알파의 사진을 보여줬다

알파는 순찰대가 호루라기를 불며 범죄 행위 발생에 대해 알렸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인물이었다. 범인을 잡는 데도 성공했으나, 그만 팔에 총상을 입고 말았다.

그리고 끝내 이 부상으로 인해 숨지고 말았다. 경찰관 마셸레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리코초는 BBC 아프리카 아이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강도를 당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매일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나는 밤낮으로 저들[자원 순찰대원들]의 안전을 기도한다. 이곳은 무법지대”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폭력 범죄가 경제에 미치는 피해 또한 엄청나다.

세계은행은 남아공의 폭력 범죄로 인한 비용이 400억달러(약 5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매년 GDP의 10% 이상이 들어가는 셈이다.

그리고 남아공에서 30년 전 이른바 ‘아파르트헤이트’라고 알려진 법률로 공식화된 인종 차별 및 분리 정책이 폐지됐음에도 이러한 폭력 범죄엔 분명히 인종 간 차이가 존재한다.

디엡슬루트에서 북서쪽으로 60km 떨어진 브리츠 지역에서도 자원 순찰대가 꾸려졌다.

‘아프리카포럼’이라는 단체의 농민들이 조직한 단체다. 이들은 자신들이 주로 백인 아프리카인의 이익을 대변하며, 전국적으로 회원 수만 30만 명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픽업트럭, 사륜오토바이, 드론 등을 동원해 밤새 버려진 건물이나 농장을 수색한다. 이들은 도난당한 물건, 이후 가져가려고 숨겨둔 장물, 밤늦게 돌아다니는 수상한 이들을 찾고 있다고 했다.

데발드 반 윈가르트처럼 이들 중 상당수가 무장한 상태다.

반 윈가르트는 “칼을 들고 총격전을 벌일 순 없다. 난 우리 가족을 지키고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이다. 만약 몸싸움이 벌어져 그 사람이 날 헤치려 한다면 나는 가만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캠코더를 확인하는 자원봉사단의 모습
BBC
‘아프리카포럼’의 팀원들은 범죄인 듯한 행동을 미리 적발하고자 한다

이 자원봉사자들은 일주일에 4~5번씩 서로 돌아가며 야간 순찰에 나선다.

‘아프리카포럼’ 소속으로 농장 순찰대를 이끌고 있는 요한 드 클러크는 지난 5년간 계속 이러한 야간 순찰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내일도 일하기 위해선 우린 매일 밤 기르는 양들을 잘 가둬두어야 합니다. 온종일 일하고 밤에 순찰하는 삶을 계속해나가기란 힘듭니다.”

그리고 백인 농부들이 당한 공격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남아공 정부가 백인 농민들의 토지를 압류하고 있다는 거짓 트윗을 올렸다. 또한 “대규모 농민 살해”를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엔 남아공 프레토리아 출신으로 현재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가 야당인 ‘경제자유투사당’이 “공공연하게 남아공의 백인 대량 학살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음모론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나 백인 농민들이 남아공에서 그 어떤 집단보다 더 큰 위험을 겪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통계에 따르면 남아공에서 백인은 전체 인구의 7%를 조금 넘지만, 살인 피해자 중엔 2%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농민들은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드 클러크는 “우리는 새장에 갇혀 살고 있다. 이는 정상이 아니”라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 만약 이 나라에서 단 한 가지 변해야 하는 걸 꼽는다면 바로 범죄 소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남아공 현지 경찰은 “일부 지역에서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범죄율을 기록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경찰청은 BBC에 보낸 성명을 통해 “범죄 상황을 개선하고자 다양하고 매우 적극적인 치안 개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3년간 경찰관 3만 명을 대량으로 채용한 것도 포함됩니다.”

실제로 남아공의 경찰 예산 또한 지난 20년 동안 거의 2배 늘었다.

그러나 BBC 아프리카 아이팀이 취재한 일부 자원 순찰대의 행동에 대해 묻자 경찰청 대변인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행위는 결코 용납되거나 용서될 수 없다”면서 “사적 제재를 가하고자 하는 시민은 법의 힘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순찰대는 물러서지 않을 수도 있다. 여전히 범죄율이 꺾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은 지역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선 모든 걸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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