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북한, 확성기 방송 중지에 담긴 의미는?

한국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약 1년 만에 중지한 데 이어, 북한도 소음 방송 송출을 일단 멈춘 것으로 보인다.
12일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오늘(12일)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이 청취된 지역은 없다"라고 밝혔다.
접경 지역에서 들리던 북한의 대남 방송이 이날 오전부터 멈췄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날 늦은 밤 소음 대신 잔잔한 노랫소리를 들었다는 주민 제보도 있었다.
이는 한국이 11일 오후 2시를 기점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한 데 따른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은 오늘(11일) 오후 2시를 기해 우리군 당국이 전방 지역에 설치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라며 "특히 이는 북한의 소음 방송으로 인해 피해를 겪어온 접경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덜기 위한 실질적 조치"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북한의 중대한 도발이 없었던 상황에서 긴장 완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로 이번 결정을 내렸다"라며 "이는 남북 간 군사적 대치 상황을 완화하고, 상호 신뢰 회복에 물꼬를 트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이번 조치와 관련해 별도로 밝힌 입장은 없다.
확성기가 갖는 의미
확성기 방송은 남북 간 긴장 수준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한국과 북한은 1960년대부터 접경 지역에 고출력 확성기를 설치해 선전 방송을 주고받아 왔다. 양측의 관계가 악화하면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고, 분위기가 완화되면 방송을 중단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북한은 1962년 먼저 휴전선에 확성기를 설치했으며, 이듬해 한국도 서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1972년, 남북이 7·4 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 양측 모두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1980년대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방송이 재개됐으나,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린 2004년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은 방송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을 계기로 재개된 방송이 남북 합의를 통해 보름 만에 중단되는 등 여러 계기를 통해 확성기 공방이 시작되거나 멈췄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6월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를 비롯한 다양한 도발을 이유로 군사적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9·19 군사합의를 사실상 폐기하고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따라 확성기를 철거한 지 6년 만이었다.
한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과거처럼 북한 체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국내외 뉴스와 건강 및 생활 정보, K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송출해왔다. 반면 최근 들어 북한은 확성기를 통해 늑대 울음이나 쇠 긁는 소리, 사이렌 소리 등의 소음을 틀어왔다.

'중단' 아닌 '중지'
하지만 현재 남북 관계가 근본적으로 단절된 상황에서 빠른 관계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3년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기존의 '통일'과 '동족' 개념 지우기에 나섰다. 한국을 더 이상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완전히 별개의 적대적인 국가로 보겠다는 선언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BBC에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 중단이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북한의 필요에 의한 조치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북한이 대북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을 상당히 위협적으로 인식해 왔다는 것이다.
오 위원은 "북한이 대북 방송이 그렇게 위협적이라고 보지 않았다면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하고 남북 관계를 단절한 상황에서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한국 정부도 대북 확성기 '중단' 대신 '중지'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재개 여지를 남겼다고 분석했다.
오 위원은 이와 관련해 "국내 정치적으로 확성기 방송 중단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의식한 수위조절 발언으로 보인다"라며 "또 북한에도 (한국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긴 했지만, (북한이) 군사 도발을 한다든지 어떤 위기 상황이 오면 방송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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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유화책, 어디까지?
취임 2주 차를 맞은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에 강경했던 이전 정권과는 완전히 다른 대북 유화책을 펼치고 있다.
통일부가 지난 9일 밝힌 대북 전단 관련 입장은 이재명 정부의 첫 대북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통일부는 대북 전단 살포가 "한반도 상황에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라며 "전단 살포 중지를 강력히 요청한다"라고 했는데, 이는 윤석열 정부 시절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전단 살포를 공식적으로 막지 않았던 입장에서 크게 바뀐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 조치는 상당 부분 예상됐던 것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 평화 분위기 조성'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9·19 군사합의 복원을 세부 과제로 제시했다. 관련 내용에는 대북전단 및 오물풍선 살포 중단과 대북·대남 방송 중단 추진도 포함됐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당장의 걸림돌은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이었기 때문에 쌍방이 (방송을) 중단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라며 "물론 남북이 서로 협의 하에 (중단 조치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남북 관계 또는 남북 대화 가능성들을 조금씩 열어간다는 차원에서는 의미 있는 조치"라고 봤다.
이에 이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 복원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남북 대화 재개가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 위원은 "(대화를 위해서는) 김정은이 대남 전략 자체를 상당히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쉽게 대화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반면 김 교수는 남북 대화 재개와는 무관하게 "이재명 정부가 남북 간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 사태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9·19 군사합의를 복원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라며 "(이를 통해)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북측에 보여주고, 국제사회를 향해서도 한반도에 대한 평화적 관리, 지금의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