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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은 중국이 과잉 생산한다 말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중국 노동자들의 이야기

2024.04.18
런 웬빙
Wang Xiqing/BBC
제조업 노동자인 런 웬빙은 공장주가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한 뒤 1000만원 이상에 달하는 해고 수당을 받지 못했다

한때 중국 내 제조업 중심지였던 광둥성 둥관시에서 만난 런 웬빙(54)은 속이 텅 빈 벽돌 골조만 남은 이곳을 떠나기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런은 한 때 가구 조립 공장이자, 근로자들이 함께 모여 점심을 먹던 자리를 가리키며 “근로자 모두가 믿기 힘들어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해당 공장의 소유주는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 시설을 동남아시아로 이전했다. 런은 해고 수당으로 약 8만위안(약 1500만원)을 받지 못했다면서, 이를 다 받아내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호소했다.

굴착기가 해머로 창문을 내리치는 가운데 런은 “우리 모두 실망했고, 슬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런은 단순히 가구 회사 하나의 소멸에 슬퍼하는 게 아니다. 한때 멈출 줄 모르고 성장하던 중국 경제의 스러짐에 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 수백만 명은 더욱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런과 같은 노동자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현재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방 세계는 중국의 과잉 생산을 비난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최근 중국을 방문해 이러한 메시지를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중국에 대해 전 세계가 감당하거나 흡수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불공정한 경제 관행”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려진 건물의 잔해
Wang Xiqing/BBC
한때 호황을 누렸던 둥관시의 가구 제조 공장 바닥엔 잔해만이 가득하다

전 세계 수많은 가정의 티셔츠, 식탁, TV 등에 붙어있던 ‘메이드 인 차이나’ 브랜드가 변화하고 있다.

이제 독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전기차, 유럽의 재생에너지 정책의 원동력인 태양광 패널 등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서방 세계는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 긴장 고조, 엄격한 코로나19 관련 봉쇄 조치, 글로벌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한때 중국의 해안가를 가득 메웠던 제조 공장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외국인의 대중국 직접 투자액은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가구, 의류, 전자 제품 등 전통적인 산업 기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국은 “새로운 생산 원동력”을 모색 중이다. 태양광 패널, 리튬 배터리, 전기 자동차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저장 배터리를 만드는 기업의 영업사원인 얀 무는 “우리는 영국, 벨기에, 독일 등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하지만, 아프리카, 호주,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동남아시아에도 수출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얀이 다니는 회사는 베이징 외곽 소재 철강 공장을 개조한 곳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가했다. 친환경 에너지 저장 기술 관련 기업 수백 곳이 이곳에 부스를 설치했다.

전시회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 얀 무
Wang Xiqing/BBC
중국은 태양광 패널, 리튬 배터리,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에너지 제품으로 점점 더 집중하고 있다

“저는 중국 기업들이 전체 에너지 저장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혁신, 새로운 기술, 배터리 판매 실적, PCS(전력변환장치) … 등 모든 분야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현재 에너지 저장 장비의 80~90%가 중국에서 설계 및 제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둥관시에서 차로 몇 시간만 이동해도 해당 산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눈길이 닿는 곳마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지난해 중국이 설치한 태양광 패널의 수는 미국이 지난 10년간 설치한 개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많다. 이곳 중국에서 태양광 패널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비용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의 태양광 패널 제조 업체들은 경쟁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기준 유럽 전역에 설치된 패널의 97%가 중국산이었다.

태양광 패널
Wang Xiqing/BBC
중국에선 태양광 패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 전역에 설치된 패널의 97%가 중국산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신산업은 한때 중국의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전통적인 산업군에 비해 노동 집약도가 훨씬 더 낮다. 대신 고숙련 전문 노동자를 필요로 하며, 로봇의 역할도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이 가장 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전체 도시 실업률 또한 여전히 5%를 웃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생산 단가를 낮추고 국가가 보조금을 지원해 친환경 기술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중국이 경제를 살리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태양광 패널 및 여러 신기술 제품의 가격을 떨어뜨리고, 서방 기업들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국가 보조금이 아닌 혁신을 이뤘기에 성공한 것이라 주장한다. 아울러 여러 국가에서 화석연료에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자국 생산품에 대한 수출 수요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옛것은 버리고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새로운 성공 스토리에서 런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

런은 10대 시절 농사를 짓는 가족들과 살던 허난성을 떠나 남부 광둥성 둥관시로 건너왔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제조업체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한번은 11년 동안이나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런은 일자리를 찾아 중국 전역의 시골에서 대도시로 이주한, 3억 명에 가까운 이주 노동자 중 하나다. 이들 대부분이 가족들을 고향에 두고 떠나온다. 런도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맡긴 채 아내만 데리고 둥관시로 왔다.

둥관시의 1000만 주민 중 약 4분의 3이 이주 노동자로 추정된다.

침대에서 고민 중인 런
Wang Xiqing/BBC
런은 둥관시로 건너와 돈을 벌기 위해선 자녀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오는 “선택지밖에 없었다”고 했다

런은 “당연히 자녀들은 나를 그리워한다”면서 그러나 자신과 아내에겐 “선택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많이 벌지도 못했습니다. 생활비와 부모님께 보내드리는 돈, 자녀 교육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모든 이주 노동자들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런은 “만약 부모님과 자녀들을 부양하고 싶으면 사랑하는 가족들과는 떨어져 다른 지방으로 와 일해야 한다. 이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중국의 미래가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이들 노동자의 삶 또한 그렇다.

런과 아내는 침대 하나, 작은 탁자 하나 간신히 놓을 수 있는 작은 단칸방에 살고 있다. 런은 침대에 앉아 휴대전화로 구인 광고를 뒤져본다.

시간당 최저임금인 16위안(약 3000원)도 안되는 금액을 제시하는 공장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겨우 시간당 13위안을제시하는 곳도 있었다.

런은 해고 수당이 절실했기에, 이를 받아내고자 법정까지 갔다. 그러나 이미 공장주는 해외로 출국한 듯하며, 이에 런을 포함한 전직 공장 노동자 300여 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둥관시의 변화를 직접 목격했으며, 이 곳에 강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곳은 제2의 고향과도 같습니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면 정말 슬프고 상실감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 했던 지방정부의 노력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 정책 덕분에 우린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생계를 꾸릴 수 있었으니까요.”

중국이 국제 시장에 문을 열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부터 둥관시는 중국의 주요 수출 및 제조 중심지였다. 이곳에선 저렴한 의류, 장난감, 신발이 쏟아져나왔다.

당시엔 미국으로 수출할 신발을 만드는 공장의 교대 근무 시간이 되면 근로자 수만 명이 문 앞에 줄지어 기다렸다.

버려진 건물이 늘어선 곳
Wang Xiqing/BBC
과거 의류 및 신발 공장이었던 건물들이 버려진 채 서 있는 둥관시의 어느 구역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계약을 따내고자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서 중국산 제품에 관세가 붙기 시작했다. 신발류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더 저렴하게 공장을 운영하고, 미-중 무역 전쟁으로부터 보호받을 방법을 모색하던 중국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현재 둥관시에서도 가장 버려진 지역 중 하나인 곳에 들어서면 마치 유령 공장처럼 텅 빈 낮은 건물들이 수 킬로미터에 걸쳐 줄지어 서 있다. 이곳에 사는 유일한 주민은 호기심을 품고 찾아온 구경꾼들을 쫓아내는 외로운 경비원 하나뿐이다.

쉼없이 돌아가던 재봉틀의 윙윙거리는 소리 대신 이제 새들의 울음소리만 울려퍼지고, 나무의 단단한 뿌리가 콘크리트 건물 골조 아래로 파고들고 있다. 따뜻하고 습한 이곳 남부 지방의 기후 또한 인간의 남긴 흔적을 자연이 덮는데 일조하고 있다.

새 것을 취하다

그러나 둥관시는 포기하지 않고 옛 영광을 되찾고자 첨단 기술 중심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둥관시 송산 호수 근처엔 직원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중국의 IT 대기업 ‘화웨이’ 캠퍼스가 건설되고 있다. 새로운 과학 공원과 호텔도 줄줄이 들어섰다.

경기 침체기를 살아남아 창업에 도전한 앨런 리(32)는 새로 페인트칠한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둥관시가 제시한 새로운 방향을 이용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리는 첨단 기계를 유럽에 수출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건설 중인 ‘화웨이’의 캠퍼스 단지
Wang Xiqing/BBC
직원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화웨이’의 캠퍼스 단지 건설 등 둥관시는 첨단 기술 중심지로 변신하고자 애쓰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빚을 지거나 강제로 부동산을 팔아야만 했죠. 수출 수요 감소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관리자들 또한 엄청난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며 심지어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산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무역에 집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첨단 산업 분야는 신기술에 대한 지식을 지닌 노동자들을 필요로 한다. 런과 같은 이들은 아직 갖추지 못한 부분이다.

런은 자신이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며 점차 희망이 사라짐을 느낀다.

런은 자녀들에게 왜 따로 살아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이다.

“무엇이 좋은 답인지 모르겠습니다. ‘너희 엄마와 난 너희들이 더 나은 삶과 교육을 누릴 수 있도록 집을 나와 멀리 산 거야. 우리는 너희들만큼은 우리처럼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도록 너희들이 많이 배우길 바란다’고 말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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