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BBC가 찾아낸 'IDF의 가자 지구 내 대피 지침 속 오류'

2024.04.10
IDF의 대피 경고가 담긴 전단지를 보고 있는 가자 지구 주민들
Getty Images / Anadolu
가자 지구의 어느 거리에서 시민들이 IDF의 대피 경고가 담긴 전단지를 보고 있다

BBC 분석 결과 이스라엘이 공세에 앞서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배포한 대피 경고문에 심각한 오류가 다수 포함돼 있음을 발견했다.

이스라엘 측의 경고 지침엔 모순된 정보는 물론 때로는 오기된 지명 등 혼란스러운 부분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실수가 국제법상 이스라엘이 지는 의무에 대한 위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안내문이 혼란스럽거나 모순적이라는 의혹을 부인했다. IDF는 성명을 통해 BBC가 분석한 해당 경고문들은 “민간인들을 위험한 곳에서 대피시키기 위한 IDF의 광범위한 노력”의 일부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국제 인도법상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민간인도 영향받을 수 있는 공격일 시 공세를 가하는 측에선 효과적인 방식의 사전 경고를 제공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쟁을 이어가는 기간 민간인들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자 자체적인 경고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말한다. 가자 지구 전 지역을 수백 개의 블록(구역)으로 나눈 시스템으로, 가자 지구 주민들은 이전엔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다.

이스라엘 측은 대피 경보가 발령되면 가자 지구 주민들이 자신이 속한 블록을 확인하고,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상호작용형 온라인 지도를 제작했다고 말한다.

올해 1월 말 IDF는 공식 X(구 ‘트위터’) 계정을 통해 QR 코드를 통해 블록 지도로 접근할 수 있는 링크가 포함된 게시물을 공개했다.

IDF가 1월 23일 올린 안내문
BBC

그런데 BBC 취재 결과 가자 지구 주민들은 온라인 접속 자체가 어렵기에 해당 링크를 찾아 들어가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다수의 오류 속에서 시스템을 탐색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BBC는 페이스북, X, 텔레그램 등 IDF의 여러 아랍어 SNS 채널을 분석해 경고가 담긴 게시물 수백 건을 발견했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의 경고가 때로는 약간 내용만 바꿔서 연이어 혹은 서로 다른 날, 서로 다른 채널에 올라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한 주민들이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공유한 이스라엘 측의 전단지도 살폈다. IDF는 가자 지구에 대피 정보를 담은 전단지 1600만 장을 뿌렸다고 주장한다.

BBC는 IDF가 국제 사회의 압력에 결국 이전보다 더 정확한 대피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 이러한 블록 시스템을 시작한 지난해 12월 이후 발행된 경고문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그렇게 지난해 12월 이후 올라온 IDF의 모든 SNS 게시물과 전단지를 모아 이를 26개로 식별했다. 대부분의 안내문이 블록 시스템 관련 내용을 담고 있었다.

IDF는 BBC에 온라인 경고문 게시, 전단지 배포뿐만 아니라 미리 녹음된 전화 메시지 및 개별 전화 안내를 통해 공격이 임박했음을 경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자 지구에선 종합적인 현장 보도가 불가능한 상황일 뿐만 아니라, 전화망도 심각하게 파괴돼 이러한 메시지 및 전화 안내에 대한 증거는 수집할 수 없었다.

BBC가 발견한 경고문 26개엔 가자 지구 주민들이 위험 지역에서 대피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IDF가 공개한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중 경고문 17개에선 아래와 같은 오류 및 불일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12개에선 게시물 본문에는 해당 블록 혹은 인근 지역이 대피가 필요한 지역으로 표시됐으나, 지도에선 음영 표시가 돼 있지 않았다
  • 9개에선 지도상 해당 지역이 음영 표시가 돼 있으나, 본문엔 나열돼 있지 않았다
  • 10개에선 지도상 음영 처리가 된 블록이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지도는 그 경계를 정확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상세하지 않았다
  • 7개에선 지도상 ‘안전한’ 지역을 가리켜야 하는 화살표가 실제로는 대피가 필요한 지역을 가리키고 있었다

게다가 한 경고문에선 여러 지역이 하나의 구역인 것처럼 표시돼 있으나, 실제 이 지역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지역이었다. 또 다른 경고문에선 두 인접한 지역의 블록 숫자를 바꿔 표시해두기도 했다. 다른 경고문에선 본문에 기재된 블록들이 사실은 첨부된 지도에선 음영 표시된 지역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BBC는 찾아낸 이러한 오류를 IDF에 전달했다. IDF는 이러한 오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고, SNS 게시물의 본문은 충분히 명확했다고만 답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안전한 지역을 표시하는 화살표의 경우 “화살표는 일반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존재”라면서 핵심 정보는 본문을 통해 다 제공됐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재니나 딜 ‘윤리, 법률 및 무력 분쟁 연구소’ 공동 책임자는 이러한 정보의 불일치와 오류에 대해 국제법상 “효과적인 사전 경고”를 제공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의무 위반으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딜 책임자는 경고문 대부분이 잘못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거나, 민간인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불분명하다면, “이러한 경고문은 국제 인도법이 요구하는 정도의 효과를 발휘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국 엑서터 대학에 국제법을 가르리츤 쿠보 마칵 교수 또한 이는 “민간인에게 자신을 스스로를 보호할 기회를 준다”는 경고의 기능을 저해한다고 덧붙였다.

'큰 논쟁'

한편 가자시티에서 기술 사업을 하던 살레는 지난해 12월, 중부 누세이라트에 살던 처가 식구와 자녀들을 데리고 대피하고자 했다. 당시 누세이라트엔 오랜 기간 전기, 인터넷이 끊기며 전화 통화도 불가능했다고 한다.

살레는 주변 학교 건물이 폭격당하며 사람들이 죽거나 대피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IDF로부터 대피 관련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살레는 이집트 및 이스라엘 인터넷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심카드를 지닌 사람을 찾았고, 간신히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들어가 대피 경고문을 읽게 됐다.

살라는 “여러 주택가 블록에 대피령이 내려졌지만, 우리가 어느 블록에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이로 인해 큰 논쟁이 벌어졌다”고 회상했다.

살레는 자주 끊기는 인터넷 연결 상태로 인해 간신히 아내 아마니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전쟁 직전부터 영국에 머물고 있던 아마니는 온라인에 접속해 IDF의 블록 지도에 접속해 남편이 있는 곳의 블록 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게재된 자세한 대피 안내문을 확인하던 살레와 아마니는 살레가 있는 블록이 두 곳으로 나눠진 듯 표시된 탓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살레는 자녀들과 함께 우선 피난길에 오르기로 했다. 그러나 가족 중 일부는 상황이 더 격화하기 전까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BBC는 살레가 이해하고자 애썼던 페이스북 대피 안내문을 분석한 결과, 혼란한 부분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해당 게시물엔 2220, 2221, 2222, 2223, 2224, 2225번 블록에 사는 주민들에게 대피를 권고하고 있다. 모두 IDF의 온라인 지도에 표시된 블록이다.

그런데 게시물에 첨부된 지도엔 이 여섯 블록이 2220번 블록 아래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IDF가 12월 22일에 올린 게시물
BBC

이렇듯 일관성이 떨어지는 정보가 담겨 있음에도,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집단학살을 벌이고 있다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사건에 올해 1월 해당 시스템을 방어 증거로 제출했다.

이스라엘 측 변호인단은 이스라엘 당국이 민간인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모든 지역을 피난시키는 대신 우선 특정 지역이 대피할 수 있도록 상세한 내용의 지도를 개발했다”고 변론했다.

그러면서 법원에 SNS에 게재된 경고 안내문을 증거로 제시했으나, BBC는 해당 안내문에서도 오류 2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IDF가 지난해 12월 13일 올린 게시물 본문엔 55, 99번 블록이 대피 지역으로 나와 있었으나, 정작 지도엔 음영 처리돼 있지 않은 것이다.

IDF가 12월 13일에 올린 게시물
BBC

이에 대해 IDF는 BBC에 블록 번호가 텍스트에 분명히 명시돼 있기에 충분한 경고가 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스라엘 측 변호인단은 IDF가 아랍어로 된 트위터 계정을 통해 대피가 필요한 지역에서 가까운 대피소의 위치를 안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BBC가 살펴본 모든 게시물 및 전단지에선 대피소의 이름은 물론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내용이 없었다.

한편 BBC는 분석 결과, IDF의 블록 시스템 자체도 일관성이 없음을 발견했다.

경고문 26개 중 9개가 블록별 번호와 주변 지명을 혼동하고 있었다.

또 다른 9개의 경고문은 아예 블록 번호를 기재하지 않고 있었다. 온라인 지도로 연결되는 링크가 있긴 했지만, 블록 번호 대신 지명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명별로 표시하다 보니 블록 시스템상 여러 블록에 걸쳐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BBC는 이러한 지역이 속한 정확한 블록 번호를 확인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한편 32명에 달하는 압두 일가도 이번 전쟁 초기, 가자시티를 떠나 중부로 대피했다. 그러던 지난해 12월, 가족들은 공중에서 배포한 전단지를 받게 됐다.

BBC가 압두 일가의 왓츠앱 단체 대화방을 확인할 결과, 이들 가족은 전단지 속 정보의 의미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등 혼란스러워했다.

전단지엔 대피해야 할 지역들이 적혀 있었으나, 압두 가족은 지역 대부분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 없었다.

안내문엔 시민들에게 “알-부레이 캠프와 와디 가자 남부의 바드르, 북부 해안, 알-누자, 알-자흐라, 알-부라크, 알-라우다, 알-사파 지역”을 떠나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BBC는 알-자흐라와 인근의 바드르위 위치를 찾았으나, 해당 지역은 사실 와디 가자 강변 북부에 자리한 곳이다. 아울러 ‘와디 가자 남부”에선 알-라우다, 알-누자 지역은 찾을 수 없었다.

압두 가족 또한 계속 남아 치열한 지상전에 휘말릴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혹은 유일한 피난처인 곳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를 것인지 결정하기 힘들었다.

 가자 지구 지도상 알-자흐라와 바드르의 위치
BBC

이에 일부 가족 구성원은 “데이르 알-발라에 있는 대피소”로 가라는 경고를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죽더라도 가족들과 다 함께 죽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실제러 미 오리건주립대학교의 제이몬 반 덴 혹과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소속 코리 셰어가 분석한 위성 데이터에 따르면, 이 기간 증 데이르 알-발라 지역은 압두 가족이 떠나온 지역보다 더 심한 공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편 IDF는 “이러한 경고 안내 이후 민간인들의 위치와 이동에 대한 데이터”를 재차 확인했다면서, 자신들의 경고엔 혼란스럽거나 모순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경고가 “가자 지구 내 수많은 민간인의 생명을 구했다”고 평가했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