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짓인가 세기의 거래인가'...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산 날

오는 15일(현지시간) 미국과 러시아 정상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논의하고자 알래스카에서 만날 예정이다. 이 자리는 최근 몇 년간 가장 중요한 외교적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회담이 열리는 장소 또한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령인 알래스카 내 최대 도시인 앵커리지에서 마주 앉을 예정이다.
하지만 약 150년 전이었다면, 이 회담 장소는 러시아 영토였을 것이다.
현재는 미국 영토 면적의 약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넓은 주인 알래스카가 과거에는 러시아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꽤 타당한' 장소 선정
북아메리카의 최서북단에 자리한 알래스카는 가장 좁은 부분이 약 50마일(약 80km)에 불과한 베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떨어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라고 발표하자,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보좌관은 자국 대표단이 "간단하게 베링해협을 넘어 날아가고, 큰 기대를 모으는 양국 간 중요한 회담이 알래스카에서 열리는 것은 꽤 타당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알래스카의 역사적 인연은 17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시베리아 원주민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동쪽에 광활한 땅이 있다는 말이 나왔다.

덴마크 출신 탐험가 비투스 베링이 이끈 탐험대는 새롭게 발견한 이 땅이 러시아 본토와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알아냈으나, 두꺼운 안개로 인해 탐험 자체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러던 1741년, 베링은 또다시 탐험대를 꾸렸고, 이번에는 상륙에 성공했다.
이후 여러 번 상업적 목적의 탐험대가 방문하였고, 알래스카의 해달 가죽이 러시아로 유입되면서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태평양 연안 간 수익성 높은 모피 무역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과 미국의 모피 상인들이 러시아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이 치열한 경쟁은 1824년 러시아가 미국, 영국과 각각 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단락됐으나, 해달이 거의 멸종했을 뿐만 아니라 크림전쟁(1853~56년)의 정치적 여파를 겪으며 러시아는 미국에 알래스카를 매각할 결심을 하게 된다.
'어리석은' 매입
윌리엄 시워드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나서 알래스카 매입 협상을 주도해 러시아와 조약을 체결했다.
반대 목소리도 높았으나, 미 의회는 시위드 장관이 공식 보고한 720만달러의 매입안을 승인했다. 그렇게 1867년 10월 18일, 알래스카의 당시 수도였던 싯카에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이에 대해 초기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땅을 구입했다며 "시위드의 어리석은 결정"이라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720만 달러는 1억달러(약 1380억원)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미국의 최대 주인 알래스카의 가격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다.
19세기 후반부터 알래스카에서는 금, 석유, 천연가스가 발견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막대한 수익으로 이어졌다.
결국 시위드 장관의 행보는 옳았음이 입증되었고, 1959년 알래스카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49번째 주로 지정되었다.

알래스카는 현재 1만2000개 이상의 강과 호수를 보유한 주요 환경 자원 원천이기도 하다.
주도인 주노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배나 비행기를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주도다.
앵커리지에 자리한 후드 호수는 하루에 항공기 약 200편이 이착륙하는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수상 비행 기지 중 하나다.
미-러 정상은 알래스카의 최대 군사 기지인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만날 예정이다. 6만4000에이커(약 259 ㎢)에 달하는 이 기지는 미국의 북극 지역 군사 대비의 중심축이다.
알래스카가 미국 외교 무대의 중심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3월,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의 신임 외교 및 국가 안보팀은 앵커리지에서 중국 측과 만난 바 있다.
한편 이번 미-러 정상회담의 세부 사항은 공식적으로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백악관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청취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종전 해법을 모색할 최고의 시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주 회담 소식을 발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만남이 평화를 향한 구체적인 단계를 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국의 참여 없이 체결된 합의는 "무의미한 결정"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