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지진: 무너진 유치원 앞에서 망연자실한 부모들의 이야기

약 15명 정도 되는 아이들의 분홍색, 파란색, 주황색 등 알록달록한 가방이 안에 들어 있던 책과 함께 무너진 유치원 건물 잔해 속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미얀마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무너진 이 유치원 건물 잔해 사이사이 스파이더맨 장난감, 알파벳 퍼즐, 부서진 의자와 탁자, 야외 미끄럼틀이 흩어져 있다.
해당 유치원이 자리한 곳은 북부 만달레이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카욱세 지역이다. 만달레이는 최소 2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규모 7.7의 이번 강진으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곳 중 하나다.

키웨 나인(71)은 가족들과 함께 5살 손녀 텟 흐테르 산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키웨에 따르면 땅이 뒤흔들렸을 당시 텟의 어머니는 점심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즉시 유치원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건물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그리고 어린 텟의 시신은 약 3시간 후 발견되었다.
키웨는 "그래도 사랑하는 손녀의 시신을 온전하게 수습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28일 당시 해당 유치원에는 2~7세 아동 약 70명이 즐겁게 공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남은 건 벽돌, 콘크리트, 철근뿐이다.
유치원 측은 교사 1명과 어린이 12명이 숨졌다고 밝혔으나, 지역 주민들은 콘크리트로 된 위층 바닥이 무너지며 깔린 아래층의 원생 수를 합치면 최소 40명은 된다고 본다.
주민들과 학부모들은 실의에 빠져있었다. 주변 증언에 따르면 마을 사람 전체가 나서 구조 작업을 도왔고, 28일 당일 시신 여러 구를 수습할 수 있었다. 어머니들은 현장에서 밤새 울부짖으며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사흘이 지난 지금, 현장은 조용하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구호 단체들은 병원들이 무너지거나 포화 상태에 이르는 등 미얀마 내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나, 본격적인 피해 상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BBC 취재진은 카욱세 지역을 방문하기 전 수도 네피도에 있었다.
네피도에서 본 최악의 피해 현장은 바로 공무원 사택이었다. 해당 건물의 경우 1층 전체가 주저앉았으며, 위의 3개 층이 간신히 버티고 있던 상태였다.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 핏자국이 보였다. 심한 악취가 나는 것으로 보아 다수가 사망한 것으로 짐작되나, 구조 작업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관 몇 명이 널브러진 가구와 가재도구를 트럭에 싣고 있었다. 아직 쓸만한 것들을 가져가려는 듯했다.
담당 경찰관은 잠시 촬영을 하게 해주면서도 인터뷰는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슬퍼하며 황량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군사 정권의 보복이 두려워 언론과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에 취재진은 여러 의문만을 남긴 채 돌아서야 했다. 과연 이곳 사택 잔해 아래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있을까. 아직 살아 있는 이들도 있을까. 시신 수습 작업은 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한편 우리는 차로 10분 정도 이동해 수도에서 가장 큰 병원을 찾았다. 현지에서는 '1000개의 병상 병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우선 응급실 지붕이 무너져 있었다. '응급실'이라는 영어 표지판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병원 밖에는 군용 의료 트럭 6대와 여러 텐트가 눈에 띄었다. 병원에서 대피한 환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텐트 겉면에 물을 뿌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텐트 내부에는 머리에 피를 흘리고 팔다리가 부러진 부상자가 약 200명이 있는 듯했다.
취재진은 비상 상황에 출근하지 않은 직원들에 대해 화를 내며 질책하는 한 공무원을 목격했다. 이 남성이 텟 카잉 윈 보건장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한편 도시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중앙 보호 구역에 심어진 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지금은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로, 바깥 기온이 40℃에 육박한다. 그러나 계속 여진이 이어지는 바람에 사람들은 실내에 있기 두려워했다.
30일 새벽 4시 미얀마 남부 양곤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약 600km 떨어진, 지진 피해가 가장 심각 지역 중 하나인 만달레이 지역으로 향했다. 가로등이 전혀 없어 도로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3시간 넘게 운전한 끝에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구조대원 20명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조끼에 새겨진 로고를 통해 이들이 홍콩에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점점 더 북쪽으로 향하면서 도로에 균열도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보통 이 도로에는 여러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185km를 달린 이후에야 첫 검문소가 나왔다. 그곳에 혼자 있던 경찰관은 다리가 망가져 길이 폐쇄되었다며 우회로를 안내해주었다.
취재진은 30일 밤 안에는 미얀마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인 만달레이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랐으나, 더위 속에 차에 문제가 생기고 우회로를 이용해야 했던 탓에 불가능했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지난 뒤 마침내 만달레이에 도착했다. 집에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으며, 가로등도 없는 이 도시는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아침이 오고 이곳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