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할아버지 김일성처럼 국제 무대로 나올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는 9월 3일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45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국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사례로 기록될 예정이다.
북한 지도자가 여러 세계 지도자들 사이에서 포착된 것은 지난 1980년 김일성 주석이 유고슬라비아 요시프 브로즈 티토 전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 마지막이다.
김정은과 아버지 김정일은 그동안 주로 중국, 러시아와만 교류해온 탓에 북한은 외교에 있어 매우 폐쇄적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하지만, 의외로 김일성 주석은 외교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공산권 블록이 무너지기 이전까지는 다자외교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번에 김 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행사 방문을 결정하면서,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 김일성처럼 다시 적극적인 외교를 펼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다자외교 즐긴 김일성, 아프리카도 방문

김일성 주석은 분단 이후 총 45차례, 15개국을 공식 방문했다. 대부분 상대국 정상과 양자회담을 위한 것이었지만, 여러 나라 정상이 모이는 행사에 적극 참석한 것도 눈에 띈다.
김일성은 1954년 중국 국경절 기념식, 1957년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1959년 중국 인민공화국 창건 10주년 경축대회에도 참석했다.
1954년 당시 내각수상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은 천안문 성루에 올라 마오쩌둥 국가주석 등과 함께 열병식을 참관했으며, 1957년 11월엔 소련 혁명 40주년 경축연엔 흐루쇼프 소련 제1서기,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 호치민 베트남 국가주석 등과 함께 참석했다.
대부분 유대가 강했던 공산권 블록 중심으로 외교가 이뤄지긴 했지만, 공산권에 속하지 않는 국가와도 적극적으로 외교를 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했다.
또 1965년엔 인도네시아의 반둥회의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여기엔 라오스, 이란, 파키스탄 등 공산권에 속하지 않는 나라의 대표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1975년엔 4월부터 6월까지 루마니아, 알제리, 모리타니,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등을 방문했는데, 특히 알제리와 모리타니의 경우 김일성의 첫 아프리카 대륙 방문이기도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모리타니 방문은 김일성이 공식적으로 공산권 국가가 아닌 국가를 방문한 첫 사례다.
비행기를 좀처럼 타지 않았던 김정일과 달리 김일성은 항공편도 종종 이용했다. 1965년과 1975년 인도네시아와 모리타니를 방문할 때 항공기에서 내리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도 남아있다.
'은둔의 지도자' 김정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버지 김일성과 달리 국제 무대를 피했다.
김정일은 1965년 김일성의 수행원 자격으로 함께 비행기에 올라 인도네시아 비동맹회의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국방위원장에 오른 뒤로는 국제행사에 참석한 경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일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재임동안 총 10차례 해외를 공식 방문을 했다. 이중 7번은 중국, 3번은 러시아 방문이었으며, 모두 양자회담 목적의 방문이었다.
북한의 참석이 필요한 국제행사에는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나섰다.
김일성 시기와 달리 공산권 블록이 해체되고 북한이 경제난과 핵개발 등으로 더욱 고립되기도 했지만, 김정일 개인적 성향도 이런 폐쇄적 외교 성향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그는 항상 안전을 우려해 비행기를 타지 않고 기차를 이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대부분 '1호 열차'로 불리는 전용열차를 이용했는데, 2001년 러시아 방문 때는 평양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일정에 무려 23박 24일이 소요되기도 했다.
김정은, 다시 국제 무대로 나올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제껏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였다.
2011년 집권한 후 한동안 은둔하던 김 위원장은 2018년 이른바 '광폭'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3월과 5월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10월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북한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9년에도 한 차례 중국을 방문한 직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2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해 6월엔 북한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판문점 이남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특별 열차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방문해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최초로 판문점 이남까지 내려오면서 그가 '정상 국가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이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난 후 대북제재가 강화되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다시 국제 무대에서 모습을 감췄다.
통일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현재까지 총 9차례 해외를 공식 방문했는데, 이중 7번이 2018년과 2019년에 집중돼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그가 다자외교에 나서고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신호로 읽어야 할까?
아직 의견은 분분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이 "북중러 사회주의 연대 과시 속에서 북한이 삼각 관계의 '키맨'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외교 구도의 중심축으로 부상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남성욱 고려대학교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김 위원장이 "푸틴과 시진핑 같은 슈퍼파워 지도자들과 자신이 '동급'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등한 관계에서 군축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이번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행사를 '다자외교'의 장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의 의도와 별개로 시진핑 주석이 이번 행사가 다자외교 무대로 비춰지길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세종연구소 워드 피터 연구위원은 "중국은 북중러 구도를 꺼리며 웬만하면 양자관계에만 비중을 둔다"고 BBC에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한미일에 맞서는 북중러 대결의 모습은 미국의 대중 견제 논리를 받쳐주는 부분이 크고", "이른바 '불량국가'와의 다자 협력 모습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게도 안 좋은 이미지를 준다"고 설명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역시 "중국은 북러 밀착에 휘말리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며, 이번 방중을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 복원"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가진 단독 외교 행보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탄열차, 전용기...어떤 교통수단 이용할까?

한편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 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은 첫 방중인 지난 2018년 4월과 가장 최근이었던 2019년 1월 방중 땐 기차를, 2018년 2차와 3차 방중 땐 항공편을 이용했다.
아직 알려진 소식은 없는 가운데, 방중이 발표된 이후 북한 신의주와 연결된 북중우의교를 마주 보는 중국의 단둥 중롄호텔의 외국인 예약이 불가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는 점 등을 이유로 일각에선 '1호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김 위원장의 공식 일정은 없는 상태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관련 상황에 대해선 중국 측이 적시에 소식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