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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 케이팝 본고장,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비결

1일 전
'케이팝 데몬 헌터스' 캡처 화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케이팝 걸그룹 '헌트릭스'의 멤버 루미와 조이, 미라
Netflix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공개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전 세계적인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케이팝'의 나라 한국에서도 일종의 문화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자국 문화가 외국 창작물에 묘사되는 것을 보는 건 가슴 졸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잘못 묘사된 창작물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때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케데헌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서울에서 아들 둘을 키우는 이유민 씨는 BBC에 "한국 문화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거나 표현한 영화나 미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하나같이 오류가 많고 잘못 표현된 것이 많았다"라고 했다. "중국이나 일본 문화와 비슷하게 묘사하고" 배우들이 "어설픈 한국말"을 할 때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이 씨는 "하지만 케데헌은 오프닝 때 나오는 조선시대 초가집 풍경부터 백성들의 한복 의상과 머리 스타일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고증이 잘 되어서 깜짝 놀랐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 영화가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발표에 따르면 케데헌은 넷플릭스 '최다 시청 영화'에 등극했다. 지난 6월 공개 이후 현재까지 시청 횟수 2억3600만 회를 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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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방영 이후 한국 전통 기념품을 사기 위한 사람들이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긴 줄을 서 있다

케데헌의 적극적인 문화 고증에 힘입어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인파가 몰리고 있다. 이미 아시아 내 가장 많은 관람객 수를 기록해 왔지만, 매일 아침 문이 열리기 전부터 관람객들이 줄을 서는, 이른바 '오픈런'에 나서는 건 흔치 않은 광경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국립중앙박물관 '오픈런'을 하는 이유는 전시를 관람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박물관 내부 기념품 매장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특히 케데헌에 등장한 호랑이 캐릭터 '더피'와 까치 캐릭터 '서씨'에 영감을 준 전통 민화 '작호도' 그림으로 만든 배지는 연일 매진 행렬이다.

30대 에너지 분야 엔지니어인 이다건 씨는 주말 인파를 피해 지난 18일 월요일 오전 10시,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박물관을 방문했는데도 작호도 배지를 비롯해 원하던 기념품을 하나도 사지 못했다고 했다.

"오전 10시에 맞춰서 갔는데 대기번호 발급이 다 끝난 상태더라고요…기념품 가게가 작지 않은데, 안에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서 구경해야 하는 정도였어요. 한 100명 가까이 됐던 것 같아요."

이 씨가 박물관을 방문한 이유도 케데헌을 본 후 한국 전통문화 관련 기념품이 갖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쌓여 있는 '까치 호랑이 배지'
News1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하는 '까치 호랑이 배지'는 온라인 예약판매도 일시품절된 상태다

하지만 그는 케데헌에서 '겉으로 보이는' 문화적 요소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인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에도 크게 공감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루미가 자기의 정체성을 숨기고 싶어하고, 수치심과 부끄러움 같은 감정을 느끼잖아요. 그 부분이 한국에서 사람들이 타인을 많이 의식하는 그런 감정들과 좀 연관이 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물론 이런 감정은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라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살면 그냥 너무 당연하게 여겼을 감정들이지만, 외부에서 이런 감정들을 그려내면서 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라고 했다.

노리개와 매듭팔찌 매대 앞에 서 있는 최년희 씨
최년희
최년희 씨는 케데헌을 알게 된 계기가 "호랑이 자개 노리개 제품 판매가 갑자기 폭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전통 공예가들도 '케데헌 열풍'을 실감하고 있다.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브랜드 '희뮤즈'를 운영하는 최년희 씨는 케데헌 공개 이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최 씨는 "호랑이 자개 노리개 제품 판매량이 갑자기 폭증"하면서 케데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고객들은 "케데헌을 보고 제품을 구매하게 됐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케데헌 방영 전후로 매출이 약 5배 이상 늘었어요. 특히 자개 호랑이 노리개 키링(열쇠고리)이 큰 인기를 끌었고, 호작도 관련 신제품 문의도 폭주할 정도였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문이 몰려들면서, 2019년 사업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미국과 호주로도 제품 수출을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박물관에서 한국 전통 유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전통적인 소재를 이렇게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풀어낸 점이 놀라웠다"라고 평했다.

불법스님의 사자보이즈 천도재에 사용된 영단 그림
@illegalmonk_v
온라인 천도재용 영단에 사자보이즈 멤버들의 모습과 음식 등이 그려져 있다

'케데헌 열풍'의 또 다른 독특한 수혜자는 '불법스님'이다. 실제 법명이 아니라 '버튜버' 명이다.

'버튜버'란 '버추얼 유튜버(Virtual YouTuber)'의 줄임말로,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캐릭터 등을 앞세워 방송을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불법스님은 지난 7월, 케데헌에 등장하는 남성 케이팝그룹 '사자 보이즈'를 위한 '온라인 천도재'를 열었다.

천도재는 불교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지내는 종교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승려들이 유가족의 요청을 받아 진행한다.

그림으로 그린 영단에는 사자 보이즈 멤버 다섯 명의 영정 사진과 영혼을 달래기 위한 음식들이 놓였다.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천도재를 시청했다.

불법스님은 이 정도 인원은 대형 사찰에서 진행하는 법회를 가도 보기 힘든 규모라고 말했다.

"유명한 사찰은 수백 명, 또는 1000명 가까이 사람들이 올 때도 있는데…지방 사찰의 경우 20명만 와도 사람이 많이 온 법회거든요. 그래서 저도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가 20명만 넘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인원이) 꽤 많이 초과해 버렸죠."

그렇다면 케데헌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사자보이즈 멤버 진우의 영혼은 환생에 이를 수 있을까?

불법스님은 "그건 그분의 복"이라며 "저희는 저희대로 최선을 다했지만…확답은 드릴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불법스님의 진짜 법명이나 자세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방송 중 승려증을 일부 공개한 적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BBC에 그의 소속 사실을 확인했다.

영화 개봉 후 두 달이 넘었지만, 케데헌의 인기가 계속되면서 극장 상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는 지난 23, 24일 이틀간 '싱어롱'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극장 특별 상영이 진행됐는데, 이를 통해 케데헌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영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특별 상영이 진행되면서, 한국에서도 팬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다음 달 17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국내 처음으로 '싱어롱' 특별 상영을 결정했지만, 좌석 수는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유민 씨도 극장에서 케데헌을 보고 싶어 하는 팬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미 케데헌을 다섯 번 이상 봤지만, 국내 극장 상영이 이뤄진다면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남편을 끌고 꼭 보러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진수 씨
박진수
박진수 씨는 케데헌이 극장과 OTT 간 협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영화 유튜버이자 극장 매니저로 일하는 박진수 씨는 작품을 뒤늦게 접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처음에 (케데헌을) 넷플릭스 신작 카테고리에서 봤을 때는 '케이팝을 소재로 하는 괴상한 애니메이션이 나오나보네'하고 무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다며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극장) 상영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케데헌을 "큰 스크린과 극장 스피커를 통해 관람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할뿐더러, "국내 극장가에 소위 말하는 '히트작' 영화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씨는 넷플릭스 같은 대형 OTT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가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협상이) 쉽지 않을 수 있다"라면서도 양쪽의 용도와 목적이 다른 만큼, 케데헌 흥행을 기점으로 극장업계와 OTT 간의 공생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OTT와 극장이 함께 트렌드를 형성하고, 바이럴이 된다면 결국 서로 나눠 먹으려고 싸우던 파이가 커지지 않을까요? 그 역할을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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