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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인가, 외국인 혐오인가?… 텍사스, 중국인의 부동산 소유 및 임대 제한

1일 전
주 정부 관계자들 가운데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하는 모습
Office of the Texas Governor
지난 8월 26일 법안에 서명하는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의 모습

중고차 매장을 운영하는 제이슨 위안은 배터리 단자의 마지막 나사를 조인 뒤 차량 후드를 닫았다. 그에게는 익숙한 일상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귀화한 그에게 미국 텍사스는 오랫동안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텍사스주 당국이 통과시킨 법안으로 인해 자신이 선택한 고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SB 17'라고 불리는 '2025년 텍사스 상원 법안 17호'는 오는 9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으로, 중국, 이란, 북한, 러시아 출신 개인 및 기업의 부동산 구매 및 임대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주 당국은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위안과 같은 사람들은 이 법이 자신같이 생긴 사람들은 텍사스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차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 법안에 맞서 싸우고 있는 민주당 소속 진 우 텍사스주 하원의원은 "이 법은 반아시아적이고, 반 이민적이다. 특히 중국계 미국인을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은 텍사스 기업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업들이 텍사스 외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진 우 텍사스 하원의원
BBC
진 우 텍사스 주 하원의원은 해당 법안 반대 운동을 주도해왔다

'악의적 영향'에 맞서는 법안

올해 초 발의된 SB 17 법안은 지난 6월 20일 그레그 애벗 주지사가 서명하며 정식으로 통과되었다.

애벗 주지사는 이 법안에 대해 외국 "적대 세력"을 차단하기 위한 "미국 내 가장 강력한 금지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 법은 국가 안보 위협국으로 지정된 국가의 개인 및 단체는 텍사스 내 주택, 상업용 공간, 농지 등의 부동산을 살 수 없다. 임대의 경우에도 1년 미만으로 제한된다.

이 법안에서 가장 먼저 거론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으로 미국을 억누르고자 "강압적이고, 전복적이고, 악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미국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법 위반 시, 25만 달러(약 3억4000만원) 이상의 벌금 또는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미국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며, 유효 비자 소지자의 경우 주거용 주택 1채 소유는 허용된다.

이러한 예외 조항에도 불구하고 반대 측에서는 법안 자체가 차별적이며, 중국인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누구라도 부당한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비영리 단체 '중국계 미국인 법률 방어 연맹(CALDA)'은 중국 국적의 비자 소지자 3명을 대신해 이 법이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후 법원은 학생비자 혹은 취업비자를 소지한 텍사스 거주자인 원고 3명은 해당 법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주 법무부장관의 주장을 받아들여 소송을 기각했다.

이로써 세 원고의 경우 당장은 화를 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가 안보 위협국으로 지정된 4개국 출신 비자 소지자들은 법 조항의 모호한 해석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호소한다.

CALDA 측은 항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2025년 판 중국인 배척법'

이 새 법의 영향을 받는 최대 집단은 중국 출신 커뮤니티다. 2023년 기준 텍사스에 거주하는 중국 본토 출생자는 최소 12만 명에 달한다.

텍사스 A&M 대학 졸업생이자 SB 17 법안에 맞서 제기한 소송의 원고 중 한 명인 친린 리는 이 법안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이 컸다고 했다.

"만약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150년 전 (차별받던) 철도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처지가 된다"는 설명이다.

리는 원래 오스틴 교외 어느 조용한 주택가에서 아파트를 빌려 살고 있었다. 일과 소송 준비로 바빠 계약 만료 2주 전이 되어서야 겨우 새로운 월셋집을 알아볼 시간이 났다.

소송이 기각되었을 당시 한창 이사 중이었다는 리는 법원은 자신을 비롯한 원고들이 이 법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이 과정 전체가 자신에게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생각만 해도 너무 번거롭기에 사람들이 이곳 텍사스에서 일하거나 공부하기 꺼릴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위안은 중고차 상점 일 외에 지역사회 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번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도 텍사스주 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주도하며, 이 법은 "2025년 판 중국인 배척법"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882년, 미국에서는 반중 정서를 바탕으로 '중국인 배척법'이 통과된 바 있다. 중국인 노동자들의 미국 이민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위안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출신 국가를 근거로 나 같은 사람들의 주택 소유를 제한하는 건 그 자체로 차별적"이라고 설명했다.

위안은 두 자녀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했다. 최근 그가 집회에서 연설할 때 13살 난 아들 또한 그 뒤에 서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싸움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는 위안은 "아이들에게도 앞으로 차별당하거나 누군가 괴롭힐 때면 이런 식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지역으로 눈 돌리는 중국 기업들

영세사업자인 위안은 이번 법안이 사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자신의 가게를 찾는 고객 중 적어도 3분의 1이 중국계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위안은 "중국계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사업자들은 이러한 생태계에 의존해 살아간다"고 했다.

한편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국계 다국적 기업들도 이번 법안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주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21년 기준 중국 기업 34곳이 텍사스에서 벌인 투자 프로젝트는 38건에 달한다. 총 27억달러의 자본 투자를 통해 4682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번 법안이 통과되며 일부 중국 기업들은 현재 텍사스 외 지역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텍사스 북부 댈러스에서 상업용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는 낸시 린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전기차, 태양광 패널 분야를 포함해 잠재적인 중국계 기업 고객들이 투자 계획을 부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린은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계 기업의 텍사스 진출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그리고 이미 임대 계약을 체결한 기업들도 갱신하기 힘들어진다. 갱신한다고 해도 1년 이내로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사실 중국계 미국인들의 토지 소유권 투쟁 역사는 100여 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텍사스에는 비미국 시민의 토지 구매를 제한하는 법이 1965년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다 이 법은 "불합리하고 차별적"이며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다.

중국인 사업가의 공군기지 인근 토지 구매가 위협적이었나?

애벗 주지사는 텍사스 주민들의 안전과 안보야말로 자신의 최우선 관심사라고 말한다.

BBC의 논평 요청에 대해 주지사 사무실 측은 중국 등 "적대적인 외국 세력"의 "텍사스 내 토지 소유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 보도자료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텍사스 공공정책재단'의 척 데보어는 이 법안을 지지하는 이들 중 하나다.

데보어는 "적대적 세력이 텍사스 델리오의 라플린 공군기지나 주를 먹여 살리는 목장과 같은 우리의 군사기지, 농지, 인프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면서 이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입법 추진의 배경에는 중국인 쑨광신의 토지 매입 논란이 있다. 사업가인 쑨 회장은 2016~2018년 풍력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으로 러플린 공군기지 인근 토지를 포함해 텍사스 내 14만에이커(약 566 ㎢)에 달하는 토지를 사들였다.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의 승인을 받았음에도, 텍사스주는 2021년 "핵심 인프라" 분야에서는 특정 국가의 기업과 계약할 수 없다는 법을 제정하며, 그의 프로젝트를 무산시켰다.

2024년 텍사스의 존 코닌 상원의원은 쑨 회장이 중국공산당 당원이자 중국인민해방군 고위 인사 출신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그가 중국 정부를 대신해 미 군사기지를 감시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쑨 회장 측은 즉각 반발했고, 그의 자회사 중 한 곳은 2024년 소송을 제기하여 미국 당국이 이미 안보 우려를 검토한 뒤 해당 프로젝트를 승인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의 외교 및 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조사한 결과, 중국의 대미 간첩 사건은 총 224건으로 집계됐다.

국가안보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간 중국공산당 관련 안보 위협이 증가했다고 말한다.

홀든 트리플렛 전 FBI 베이징 연락사무소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위험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트리플렛 전 사무소장은 "미국의 지방 차원을 겨냥한 정보 공격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면서 "(중앙 정부가 아닌) 지방의 개인이나 단체들은 이러한 위험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의 비영리 인권 단체 '미국 시민 자유 연맹(ACLU)'의 패트릭 투미는 SB 17 법안의 경우 일부 공직자들이 중국인과 중국 정부를 잘못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인들의 텍사스 주거용 부동산을 소유 혹은 임대가 국가 안보에 해를 끼쳤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규제 측면에서도 텍사스 새 법안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사라 바우얼리 단츠먼은 "관할 충돌 문제를 피하려면 이러한 사안은 (지방 정부가 아닌) 연방 정부가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텍사스주의 이번 법안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가적 트렌드

사실 SB 17과 같은 법이 미국에서 처음은 아니다.

중국계 미국인이 모인 비정부기구 '100인회'에 따르면 2021년 이후 공화당이 주도하는 주를 중심으로 총 26개 주에서 중국을 겨냥한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 제한법 50건이 통과됐다.

대부분의 주 법안은 2023년 이후 제정되었는데,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 계기였던 중국의 스파이 풍선이 북미 영공을 가로질러 날아간 해이기도 하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 또한 중국인의 미국 내 농지 매입을 금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미는 "텍사스 법안이 경종이 되어야 한다"며 이 법이 아시아계 이민자를 포함한 커뮤니티가 국가 안보의 위협이라는 거짓 주장을 무기화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위안은 중국계 미국인들이 맞서 싸우지 않으면 다른 주에서도 텍사스의 새 법과 유사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오하이오주는 "적대 국가"를 대상으로 한 금지법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그 범위는 더 넓어 영주권자도 포함될 수 있다. 현재 이에 반대하는 시민 운동가들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위안은 "그들은 민주주의의 규칙을 다시 쓰려고 한다"며 "하지만 우리에게는 흐름을 바꿀 기회가 여전히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점점 중국을 닮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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