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을 조성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 사이 기회를 엿보는 시진핑 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만약 화가 났더라도 중국은 이를 꽤 잘 숨기는 모습이었다.
무역 전쟁에서의 승자는 없다고 계속 경고해왔던 중국은 우선 미국 측에 대화를 하자고 촉구했다.
워싱턴DC 현지 시각으로 자정까지 참는 모습을 보였던 중국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예고한 10% 추가 관세가 4일(현지시간) 공식 발효되자 보복 조치를 발표했다. 오는 10일부터 석탄, 원유, 대형차 등 여러 미국산 제품에 10~15%에 달하는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는 결정이었다.
중국은 추가적인 관세를 피하고, 두 경제대국 간 관계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는 상황을 막고자 미국과 대화할 수 있길 바라며 침착한 태도를 보인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따지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의 경우 공식적으로 발효되기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주 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추가 관세 부과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첫 임기 중 수백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수많은 관세에 더해 추가로 얹어지는 것이기에 중국 입장에서는 더욱 얼얼한 조치일 것이다. 게다가 현재 중국 국민들은 이미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중국과 미국은 이전에도 관세를 두고 정면으로 맞붙은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많은 게 변했다.
우선 중국 경제의 대미 의존도는 2020년에 비해 감소했다. 그동안 중국은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적극적으로 무역 협정을 맺었고, 현재 120여 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카네기 차이나'의 총 자 이안 연구원은 머지않아 협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이번 추가 관세 10%가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리더십 약화 분위기 속 '윈-윈' 메시지 전파 기회를 엿보는 시 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상황에서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포착했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에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취임 첫 달부터 자국 뒷마당에 분열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은 과연 자신들에게는 무슨 요구를 할지 궁금해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과 대조적으로 자신들이 차분하고, 안정적이며, 아마도 더 매력적인 글로벌 무역 파트너로 돋보이길 바랄 것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스팀슨 센터'에서 중국 연구를 이끄는 윤 선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를 도전과 위협으로 내몰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중 전략적 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리더십 및 신뢰도 악화는 중국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중 관계 자체에서는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지만, 분명 중국은 이러한 시련을 기회로 삼고자 할 것입니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을 이끄는 시 주석은 자신들이 대안적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세상을 향한 야망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 주석은 전 세계 여러 곳을 방문하며 세계은행과 같은 주요 국제기구 및 '파리 기후 협정'과 같은 협약을 지지했다.
중국 관영 언론에 따르면 이는 전 세계 각국을 포용하고, 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행보다.
지난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WHO 자금 지원을 중단했을 때도 중국은 추가 자금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이 WHO에서 탈퇴한 이후 중국이 그 자리를 채우리라는 기대가 높다.
오랫동안 미국의 자금에 의존해왔으나 도움이 끊길 위기에 처한 다른 국가 및 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자국 경기 상황이 좋지 않지만, 중국은 미국이 떠난 그 공백을 채우고자 나설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세계 최대 원조 공여국으로서 미국이 제공하는 모든 해외 원조를 동결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지원하는 해외 원조 프로그램 수백 개가 중단되었다. 이후 일부는 재개되었으나, 관련자들에 따르면 USAID의 미래 자체가 불투명해지면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현대사 전문가인 존 델러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원칙이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입지를 더욱 약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델러리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주요 무역 파트너에 대한 관세 부과와 대외 원조 동결의 조합은 개발도상국 및 선진국 모두에 미국은 국제 파트너십과 협력에 관심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미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후퇴하면서 시 주석이 일관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윈-윈(상호 이익)' 세계화 메시지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지난 50년간 미국이 이끌어온 세계 질서를 뒤집고 자신들이 주도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현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이 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동맹
한편 총 연구원은 "중국이 (이를 기회 삼아) 정말 핵심적인 이점을 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약간 회의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태평양 지역의 많은 미국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에는 중국과 협력해야 할 이유가 있지만, 동시에 경계해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 한국, 필리핀, 호주는 서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다들 중국에 대해 우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주 국제 문제 연구소'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영향"으로 인해 호주, 일본, 한국 간의 3국 관계 결속 가능성에 "탄력이 붙었다"고 한다.
이들 3국과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독단적인 행보 및 중국과 대만 간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중국은 대만을 언젠가는 자국의 일부가 될 지역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대만은 오랫동안 미-중 관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로, 중국은 미국이 대만을 지지한다고 볼만한 모든 행보에 반발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합병 혹은 그린란드 매입을 언급하며 거듭 위협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침략 징후에 미국 정부가 반격하며 지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곳 지역 국가들 대부분이 중국과의 경제 균형을 맞추고자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이용했다.
그러나 중국을 경계하지만 미국을 확신하지 못하게 된 이들 국가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중 그 어느 나라도 포함하지 않고 새로운 아시아 동맹체를 구성할 수도 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인들이 음력 설을 맞아 재물의 신이 깃들기를 염원하던 지난 주말 이 같은 관세를 발표했다.
일 년 중 최대 명절을 맞아 근로자 대부분이 고향으로 떠난 수도 베이징의 텅 빈 거리에는 현재 밝은 붉은 등불이 휘날린다.
관세 소식에 대한 중국 당국의 초기 반응은 법적 조치 착수 및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불만 제기에 그쳤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미국에 끼칠 영향은 미미하다. WTO의 분쟁 해결 시스템은 지난 2019년부터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가 사건을 처리할 판사 임명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은 보복 관세를 발표했고, 긴 연휴가 끝나며 중국 공산당 관리들도 베이징의 일터로 복귀했다.
이제 이들에게는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중국 관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에 고무된 상태였다. 특히 지난달 시 주석과의 전화 통화를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멋진 통화"였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중국을 자국의 최대 외교 및 경제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는 더욱더 힘들어질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미국 연구 센터의' 우 신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함, 충동성, 무모함은 필연적으로 양국 관계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에는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 심지어 극단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지닌 매파적 인사들도 상당히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4년간 양국 관계는 어쩔 수없이 심각한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중국 당국은 무역 전쟁의 여파가 안 그래도 둔화하고 있는 경제에 미칠 피해 및 미-중 관계에 대해 분명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재의 정치적 흐름 속에서 국제 사회를 자신들의 영향권 안으로, 자신들과 가깝게 끌어들일 기회를 모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