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이 왔을 때 동물원에서는 어떻게 동물을 보호할까?
홍학을 화장실에 모아두는 것부터 코알라들의 먹이를 챙겨두는 것까지, 허리케인 상륙 소식이 전해지면 동물원들은 비상 계획을 실행하느라 바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동물원은 갈수록 더 강력해지는 극한 폭풍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허리케인 ‘헬렌’이 북상하면서 비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플로리다주 소재 클리어워터 수족관의 동물 관리 부담당자인 켈리 마틴과 동료들은 밤 8시 30분경 거세지는 비바람에도 집에 전화를 걸어 적어도 자정까지는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마틴과 팀원들은 이곳 허리케인 위기 속에서 수족관 내 모든 동물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특히 마틴은 동물들과 함께 허리케인을 견뎌내는 ‘견디기 팀’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그 허리케인으로 인한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14년간 해당 수족관에서 일했던 마틴은 “우리 모두 좋은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밤 9시, 건물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물 밖 도로를 점령한 물줄기는 이내 수족관으로도 스며들기 시작했고, 이내 직원들은 1.2m 높이의 바닷물에 잠겨버렸다.
마틴은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자신 있어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내 전기가 나갔다.
팀원들은 수조 속 동물들이 안전한지 확인한 뒤 이들을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옮겼다. 그 후 1층에서 작업을 계속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에 4층으로 신속하게 이동해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4층에서 이들은 허리케인이 지나가기만을 밤새워 기다렸다.
마침내 새벽 3시, ‘생명 확인’ 알람이 울렸고, 수위가 제법 낮아진 덕에 마틴은 아래층으로 안전하게 내려가 수족관의 전반적인 상황을 살피고, 수조와 전시관이 입은 피해를 살펴볼 수 있었다.
마틴은 “우울한 걸음”이었다면서 “눈에 피해 상황이 들어왔다. 망연자실했고, 가슴이 내려앉았다”고 회상했다.
냉동고, 수의학 장비, 물 펌프, 세탁기, 공기 압축기 등 수족관 운영에 필수적인 수많은 도구와 장비가 망가져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사망한 동물들은 없었다.
마틴은 “동물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면서 “피곤했지만 안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수조가 손상된 탓에 마틴은 신속히 바다거북 7마리, 매너티 2마리(예티, 잠보니)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 동물들은 현지 경찰의 도움을 받아 48시간 안에 주 내 다른 수족관으로 옮겨졌다.
그 이후로 매일 마틴과 동료들은 물을 치우고, 수족관을 정리하고, 망가지거나 없어진 물품의 목록을 정리하고 수리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마틴은 “앞으로 몇 주, 몇 달간 할 일이 참 많다”고 했다.
언제 완전히 복구할 수 있을진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마틴은 허리케인 헬렌에 대비해 성공적으로 잘 대응해냈다고 본다. 팀원들이 폭풍 대비안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실행했기 때문이다.
수족관 측에서 매년 폭풍 대비안을 철저히 검토하고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동물과 장비들을 더 높은 곳으로 이동시키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 덕에 헬렌이 상륙했을 때도 이들은 최대한 안전하게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헬렌으로 인해 피해를 본 지 2주도 채 되지 않았으나, 이제 이곳 수족관에서는 허리케인 ‘밀턴’의 상륙을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말고도 수많은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긴급히 대비에 들어갔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 수족관에서는 1층에 있던 펭귄 9마리, 물해파리 1마리, 뱀 6마리, 도마뱀 3마리, 거북 3마리, 악어 2마리, 두꺼비 2마리, 소라게 1마리를 더 높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뒀다.
인근 사라소타에 있는 모트 해양 연구소도 허리케인 헬렌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또한 헬렌으로 인해 주요 진입로인 다리가 파손돼 웨스턴 노스 캘리포니아 자연 센터는 당분간 문을 닫았으며,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그린빌 동물원에도 나무가 쓰러지고 침수됐다.
기후 변화로 인해 허리케인 헬렌과 같이 더 강한 바람과 강우량을 몰고 오는 극단적인 폭풍이 발생하면서 미국 전역의 동물원, 수족관 등 여러 동물 관련 시설에서는 매년 이에 대한 계획을 검토하고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최악의 순간에 대비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동물원과 수족관에서는 일반적으로 일 년 내내 연습하며 완벽하게 구현하고자 하는 맞춤형 비상 계획을 갖고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마련된 ‘2006년 동물 복지법’에 따라 동물 관련 시설은 이 같은 계획을 마련해 둬야 한다.
아울러 미국 국립기상청으로부터 ‘폭풍 대비 시설’임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의 댄 애쉬 회장은 AZA의 인증을 받으려면 시설은 화재, 토네이도, 허리케인, 홍수 등 해당 지역별 극한 기상 상황에 대비해 매년 최소 4회 이상의 실제 비상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고 한다. 즉 시설 직원들은 “무슨 일이 닥쳐도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되고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 팜비치 동물원의 사육사들은 야외에서 살아가는 동물인 홍학들이 사람을 따라 실내 대피소로 이동하는 훈련을 1년에 몇 차례 실시한다. 허리케인이 다가오면 실내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팜비치 동물원의 동물 담당자인 마이크 테렐은 “홍학이 자신을 키가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매우 창백한 홍학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면서 “이러한 관계 덕에 홍학들은 우리를 따라 걸어 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에게 다가가 같이 가달라고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팜비치 동물원의 사육사들은 날 맑은 날에도 동물원 주변을 산책하는 등 정기적으로 연습하기 때문에 실제 비상 상황 시 대피해야 할 때도 “별다르지 않은 하루의 일부”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또한 팜비치의 사육사들은 몸길이가 2.7m에 달하는 미시시피악어인 프레드와 윌마에게도 허리케인 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매일같이 가르친다. 고함원숭이들에게도 매일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운송 상자로 옮겨타는 방법을 가르친다. 표범 새시에게는 우리로 몸을 숨겨야 한다는 표식인 종소리를 듣고 행동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테렐은 “우리는 이걸 게임처럼 만들었다.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면서 “(대피 훈련을) 동물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을 일상에서 계속 반복한다. 그래서 실제 비상 상황이 와도 동물들이 너무 놀라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곳에는 비상 발전기도 있으며, 비상 냉장 트럭도 있다. 뒤뜰의 나무는 언제나 다듬어 놓는다. 직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중앙 집중식 저장고에는 비상시 먹일 먹이와 물, 기타 주요 물품을 쌓아 뒀다.
그러나 테렐은 코알라처럼 오랫동안 보관해 둔 게 아닌 신선한 유칼립투스 가지와 잎을 먹는 동물을 위한 비상 공급망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테렐의 ‘견디기 팀’의 팀원 중 적어도 1명은 늙은 개미핥기 크루즈를 위해 심장약 밀크쉐이크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테렐은 “모든 동물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자원이 총동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 허리케인 ‘어마’ 상륙 당시 팜비치 동물원은 청개구리, 수달, 중부리새 한 마리를 잃었다. 허리케인으로 혼란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죽은 것으로 보인다. 플로리다의 네이플스 동물원에서도 당시 아프리카 영양 2마리가 죽었다.
그러나 다른 동물원에 비하면 비교적 상황이 괜찮은 편이었다.
일례로 뉴올리언스에 있는 오듀본 아메리카 수족관에서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전기가 끊기고 비상 발전기가 고장 나면서 모래뱀상어 6마리를 비롯해 해마, 톱가오리, 해파리, 매가오리, 피라냐 등 530여 종에 달하는 동물 1만 마리 중 거의 대부분이 죽었다.
그럼에도 안전 훈련에 대피 계획이 포함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리버뱅크 동물원의 동물 복지 및 관리 책임자인 그레그 페치는 시설 내 모든 동물을 대피시키는 건 이들에게도 큰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며, 사육사들이 동물들에게 이러한 부담을 줄 수는 없다고 했다. 게다가 폭풍우 예보가 내려졌다고 해서 예상 경로대로 지나간다는 보장도 없다.
대신 대부분의 시설에서는 우리를 허리케인에 견딜 수 있는 정도로 보강해 동물들이 평소처럼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벙커 형식으로 집을 짓거나, 금속 용접 및 콘크리트로 만든 축사를 개방형 축사 옆에 만들어 동물들이 밤마다 지낼 수 있게 하는 형태다.
페치는 “동물들은 허리케인이 뭔지 모른다. 그저 ‘와 오늘 정말 바람이 많이 부네’ 혹은 ‘비가 많이 오네’ 정도로 생각한다”면서 “보통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사고방식을 지니며, 습관대로 행동한다. 어제 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았기에 어제 했던 행동을 똑같이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텍사스 소재 동물원 겸 리조트인 무디 가든에서는 지난 2008년 9월 허리케인 ‘아이크’로 인해 홍수가 발생해 열대우림 전시실이 침수되고 전력망, 냉난방 장비, 조명이 파손되면서 약 5000만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허리케인이 물러난 뒤 이곳 직원들은 물이 밀려 들어왔던 곳에 방수문과 밀폐 시설을 구축했다.
무디 가든의 축산 담당자인 그레그 휘태커는 “피해 부분을 수리하며 아이크 기간 겪었던 침수에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보강 작업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렇게 특수 보강된 공간을 만들 수 없는 여건이라면, 사육사들이 나서 평소 사람을 위해 만든 공간을 동물들의 피난처로 바꿔놓기도 한다.
템파 동물원의 부담당자인 티파니 번스는 “우리는 복도, 화장실, 사무실 등의 공간도 이용하고, 이 건물에 동물들을 붙잡아 두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면서 “모든 건물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 가지 유명한 사례는 1992년 허리케인 ‘앤드류’ 상륙 당시, 마이애미 동물원의 사육사들이 홍학을 남자 화장실에서 지내게 하며 이들을 보호했던 일이다.
마이애미 동물원의 친선대사인 론 맥길은 “화장실은 최적의 공간이었다. 창문도 없고 바닥도 타일로 돼 있어 홍학들을 위한 침구를 깔고 나중에 청소하기도 쉬웠다. 그리고 더럽게 들리겠지만 변기 물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변기를 깨끗이 청소해 홍학들이 마실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다소 괴이한 방법이었지만 효과적이었다. 맥길은 “허리케인 앤드류 상륙 당시 홍학들을 화장실로 데려간 것이 이들의 생명을 구했다”고 본다.
이후 1998년 허리케인 조지, 1999년 허리케인 플로이드 상륙 때도 이 홍학들은 이 화장실로 들어가 지냈다고 한다.
당시 허리케인 앤드류는 시속 241km/h가 넘는 바람을 동반한 5등급 폭풍으로, 마이애미 동물원 중심부를 관통하며 시설을 박살냈다. 동물원의 모노레일 트랙이 지지대에서 떨어져 나와 이리저리 흔들렸을 정도다. 맥길은 “(트랙이) 마치 뒤틀린 옷걸이 같았다”고 회상했다.
동물원을 둘러싼 소나무 암석 숲은 “마치 이쑤시개처럼 뒤틀리고 나무들이 온통 부서져” 있었으며, “마치 신이 40km 길이의 제초기를 들고 이곳을 휩쓴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거대한 검은코뿔소 토쉬가 지내던 사슬로 된 우리에는 “마치 대포알이 날아든 것처럼” 구멍이 났으며, 포유류 5마리가 파편이 섞인 물을 마시고 죽었고, 새장에 있던 새 100여 마리도 “어뢰처럼” 날아든 트레일러에 맞아 구조물이 무너지며 목숨을 잃었다.
당시 맥길과 팀원들은 동물원 전체를 파괴한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 데리고 있던 동물 대부분을 대피시킬 공간도 없었다. 그렇기에 자연재해 발생 시 동물들을 보낼 지역 내 다른 시설과의 사전 협의도 중요하다는 게 맥길의 설명이다.
“동물들을 보호할 계획뿐만 아니라, 생존한 동물들을 밖으로 옮길 계획도 세워야 하는데, 우리 시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국 전역의 시설 약 175개 가 모인 동물원 재난 네트워크 ‘동물원 재난 대응, 구조 및 복구(ZDR3)’와 같은 단체는 위기의 순간에 시설 간 서로 공유하고, 전문 지식 인력을 배치해 도움을 주고 있다.
비슷한 동물을 돌보는 시설 간의 협력도 조직적이고 협력적으로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탬파 동물원의 번스는 ‘매너티 구조 및 재활 파트너십’의 회장이기도 하다. 마틴의 팀이 매너티 2마리를 옮겨야 한다고 요청했을 때 번스는 흔쾌히 나섰다.
번스는 “당연히 우리가 나섰다”고 했다. 이들은 무거운 해양 포유류인 매너티를 구조하고, 재활시키고, 풀어줄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을 옮길 특수 트럭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이제 이들은 예티와 잠보니가 야생으로 돌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다른 매너티들과 함께 돌볼 예정이다. 올해 3일 플로리다 헤르난도 해변에 좌초돼 구조된 매너티 1마리도 이곳에 함께 있다.
예티와 잠보니를 보낸 마틴의 팀은 다음 매너티가 들어올 수 있도록 다시 시스템을 복구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안타깝게도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한 매너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