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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효과?' 캐나다 총선, 집권 자유당이 승리하고 보수당이 패배한 이유

1일 전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이 28일(현지시간) 치러진 연방 총선에서 반트럼프 정서를 등에 업고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거의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겨졌던 자유당이 보여준 놀라운 정치적 반전이다.

개표가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근 10년간 정권을 유지해 온 자유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다수당 지위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카니 총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여론 분열 등 여러 주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야당인 보수당의 경우 의석수가 증가했음에도 패배했다. 이번 캐나다 총선에서 중요한 5가지 요소를 살펴보았다.

1.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트럼프의 위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 및 캐나다의 주권을 훼손하는 '합병' 발언 등이 이번 총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로 인해 갑자기 총리의 리더십과 경제적 생존이 결정적인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카니 총리는 이를 전략적으로 유리하게 활용해 선거 유세 기간 자신이 라이벌인 보수당의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대표뿐만 아니라 트럼프에 맞서는 모습을 강조했다.

카니 총리는 선거 유세는 물론 승리 연설에서도 줄곧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캐나다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우리가 분열하길 원한다"고 강조하며 캐나다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포일리에브르 당대표의 경우 선거 기간 반트럼프 메시지보다는 생활비, 주택 가격 위기, 범죄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하며, 집권 자유당이 이러한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국과의 기존 관계는 "끝났다"고 표현한 카니 총리는 이번 총선 이후 미국과 새로운 경제 및 안보 관계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트럼프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캐나다 사업가이자, 과거 보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바 있는 케빈 오리어리 또한 성공적인 선거 전략이었다고 인정했다.

오리어리는 투표 마감 직전 B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캐나다 국민들은 미국에 대한 불만이 크다. 그리고 카니 총리는 이를 유리하게 활용했다"고 했다.

"카니 총리는 자신과 당이 저지른 실수로부터 캐나다인들의 주의를 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국민들에게 '그쪽은 그만 보고 국경 남쪽(미국)을 보세요. 제가 여러분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 셈입니다."

2. 정치 신인의 깜짝 데뷔

올해 초만 해도 카니 총리는 정치계에 몸담아본 적 없는 전직 중앙은행 총재였다.

그러다 3월 중순 자유당 대표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더니 선출직 공직 경험이 전무한 인물로는 처음으로 총리로 올라섰다.

그렇게 처음으로 선거 운동을 펼치며 유권자들을 대면한 그는 오타와 지역구 하원으로 당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당을 깜짝 승리로 이끌었다.

사실 카니는 오랫동안 캐나다 정계 진출을 생각했던 인물로, 올해 1월 쥐스탱 트리도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임하자 기회를 포착해 뛰어들었다.

또한 과거 캐나다와 영국 중앙은행 총재로 활동하며 두 나라의 위기 극복을 도왔던 경험을 내세우며 캐나다인들이 경제 전망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현 정치 환경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에 더해 지난달 말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면서 카니 총리는 선거 운동 기간 마치 오디션을 보듯 대중에게 자신을 보여줄 기회를 얻었다. 그는 유세 현장을 떠나 대통령과 통화하고 미국 각료들과 만나는 등 총리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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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석수는 늘어났으나, 제1당은 되지 못한 보수당

다른 때였다면 보수당이 성공한 선거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2011년 선거에서 보수당은 득표율 39.6%로 제1당이 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가 대부분 집계된 가운데 '캐나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포일리에브르 대표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득표율 약 41.6%을 기록해 2011년의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보수당 자체도 보유 의석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총 149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총선 실시 직전 의회가 해산될 당시 120석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자유당을 중심으로 결집하면서 이번에는 149석만으로는 제1당으로 정권을 잡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승리가 눈앞에 보이던 보수당으로서는 쓰라린 패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연이어 선거에서 패배한 보수당은 앞으로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포일리에브르 대표는 승복 연설에서 "우리에겐 오늘 밤 축하할 일이 많다"면서 보수당 의석수를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결승선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5년 선거에서 자유당이 승리한 이후 3번째 당대표인 그는 보수당 당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선거 당일인 28일 밤, 포일리에브르 대표는 지지자들을 향해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당대표직 유지 의사를 드러냈다.

4. 선거를 통해 드러난 분열

한편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캐나다 사회의 분열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는 카니 총리의 도전 과제로 남을 수 있다.

특히 오타와 중앙정부로부터 오랫동안 소외당했다고 느껴온,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평원 지역인 앨버타와 서스캐처원주에서 자유당은 거의 외면받았다.

이미 선거 전부터 해당 지역 일부에서는 자유당이 다시 집권할 경우 국가 통합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캐나다의 13개 주에서 각 정당이 획득한 의석 수
BBC
캐나다 13개 주별 각 정당이 획득한 의석수(붉은색: 자유당, 푸른색: 보수당, 하늘색: 블록 케베쿠아당, 노란색: 신민주당, 초록색: 녹색당)

카니 총리 또한 승리 연설에서 이 같은 분열을 언급하며 다른 결과를 바랐을 유권자 수백만 명의 심정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모든 캐나다인을 위해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생활비 문제, 특히 주택 가격 문제에 집중했던 포일리에브르 대표의 메시지 또한 여러 청년층의 공감을 샀다.

4월 25일 '나노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18~34세 사이 유권자들의 경우 보수당 지지율이 44%로, 31.2%인 자유당 지지율보다 더 컸다. 특히 청년 남성들 사이에서 그 격차가 더욱 극명했다.

이와는 별도로 '아바커스 데이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중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우려한다는 이들은 약 18%였다. 60세 이상의 경우 이 수치는 45%로 급증했는데, 이는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세대 별로 양극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8일 밤 포일리에브르 대표는 청년 지지율 증가 등 보수당이 이룬 인구통계학적 혁신에 대해서도 청년층 등 보수당이 여러 인구 계층의 마음을 얻으며 혁신을 이루었다고 언급했다.

포일리에브르 대표는 "너무 오랫동안 소외되고 뒤처져 있던 수많은 이들을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냈다"고 했다.

5. 좌파 신민주당의 몰락

이번 선거에서 캐나다 국민들이 자유당 혹은 보수당에 표를 몰아주면서, 군소 정당, 특히 좌파 성향의 신민주당(NDP)은 타격을 입었다.

일부 소규모 정당은 득표율이 크게 추락했는데, 특히 신민주당의 경우 2021년 18%를 기록했으나, 현재 전국 개표 현황을 살펴보면 득표율 6%에 그친 상황이다.

거의 8년 동안 신민주당을 이끌었던 자그미트 싱 대표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하원선거에서도 패배했으며, 대표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싱 대표는 "오늘 밤이 신민주당에 실망스러운 순간임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싸움을 멈추면 패배할 뿐"이라고 했다.

녹색당 또한 득표율이 2%에서 1%로 절반이나 떨어졌다.

비영리 여론 조사 기관인 '앵거스 리드 연구소'의 샤치 컬 대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자유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배경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각종 위협, 합병 이야기 등이 중도 좌파 유권자들에게 큰 동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퀘벡주를 기반으로 한 정당인 블록 케베쿠아당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7%의 득표율을 유지하고 있다. 개표가 97% 진행된 시점에서 퀘벡에서 23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는 공식적인 양당제 국가는 아니나, 역사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보수당 혹은 자유당이 내각을 이끌어왔다.

캐나다의 정치 시스템에서 군소 정당 또한 여전히 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민주당과 블록 케베쿠아 당은 한때 하원에서 공식 야당(최대 야당)을 구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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