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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국가보안법상 국가 전복 혐의로 14명 유죄 판결

2024.05.30
홍콩 47의 얼굴
BBC
‘홍콩 47’은 3년 전인 지난 2020년, 비공식 예비선거를 조직해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홍콩 법원이 30일(현지시간)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기소된 민주화 운동가 47명 중 14명에게 국가 전복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중국 당국에 의해 제정된 국가보안법 도입 이래 최대 규모의 사건이다.

이 14명엔 뤙국홍 전 야당 의원, 헬레나 웡 전 의원뿐만 아니라 언론인 출신 운동가 기네스 호, 간호사인 위니 유 등 2019년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 참여한 일반 홍콩 시민도 포함됐다.

이들은 지난 2020년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를 뽑고자 비공식적인 예비 선거를 진행해 정부를 “전복하려”했다는 혐의를 받는 운동가 47명 중 일부다.

이날 법원은 이들이 예비 선거에서 당선됐다면 "홍콩에 헌정 위기를 (초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 단체와 여러 서방 국가들은 검찰이 "정치적 동기"를 갖고 이들을 기소했다며 이번 판결을 규탄했다.

나빌라 마스랄리 유럽연합(EU) 대변인은 "이번 유죄 판결은...홍콩의 기본적인 자유와 민주적 참여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페니 웡 호주 외교부 장관은 "홍콩 당국이 민주 인사와 야당 세력, 언론, 노동조합, 시민 사회에 압력을 행사하고 체포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계속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것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유죄 판결을 받은 운동가 중 한 명인 고든 응은 호주 시민이다.

앤드류 찬, 알렉스 리, 조니 찬 등 고등법원 판사 3명은 민주화 후보가 당선됐다면 그들이 홍콩 정부가 제출하는 "모든 예산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통과를 저지"하려 했을 것이라는 검찰의 주장에 동의했다.

또 법원은 이들의 행위가 "(홍콩) 정부 법에 따른 의무 및 기능 수행에 있어서 심각한 간섭, 방해 또는 약화"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약 3년 전 피고인들의 자택 및 기기에서 발견된 서한과 선거 운동 자료를 증거로 들었다.

한편 법원은 전직 구 의원 출신인 로렌스 라우와 리 위션 등 피고인 중 2명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의 경우 “이러한 계획의 당사자”이거나, “국가 권력을 전복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검찰 측은 이러한 일부 무죄 판결에 대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47’ 중엔 홍콩에서도 가장 유명한 민주화 운동가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의 활동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요구하며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왔던 2014년 민주화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이먼 청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들 운동가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다양하고 보편적인 홍콩 시민들의 열망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청은 홍콩을 떠나 영국에서 망명을 승인받은 상태다.

한편 이번 재판은 중국으로의 반환 이후 홍콩의 시민 자유에 대한 또 다른 시험대로서 큰 관심을 끌었다. 언론 재벌 지미 라이에 대한 재판과 함께 이번 재판을 통해 국가보안법이 반정부 목소리 탄압에 이용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더욱 주목받았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2019년 시위 이후 제정된 해당 법을 통해 홍콩은 안정을 되찾았으며, 질서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격렬한 시위 현장
Reuters
지난 2019년, 중국 당국이 제안한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분노는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를 촉발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홍콩은 법치 기반 사회다…그 누구도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불법적인 활동을 하거나, 법적 제재를 피할 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오 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특정 국가들이 중국 내정에 개입하거나, 개별 사법 사건을 통해 홍콩의 법률 시스템을 비방하거나 훼손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홍콩 당국은 이 법의 유죄 선고율이 거의 100%에 달한다며 자랑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이것이야말로 해당 법이 반대파들을 잠재우기 위해 사용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거의 300명에 달하는 이들이 이 동일한 법 아래 여러 혐의로 체포됐다.

47인 중 유죄를 인정한 31명을 포함한 나머지 활동가에 대한 선고는 이후 내려질 예정이다. 국가 전복죄로 유죄 판결이 나올 시 최고 종신형을 받을 수 있으며, 국가 전복죄 위반의 경우 유죄를 인정한다고 해서 감형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청은 여러 활동가들이 유죄를 인정한 것에 대해 “아마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알고 있기에 실용적인 판단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권위주의적으로 변해가는 정권하에 운동가들이 처벌 수위를 낮추고자 강제로 고개 숙여야만 하는 비극적인 현실을 반영한다”고 비난했다.

'그가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30일 남편 뤙국홍 전 야당 의원의 유죄 소식을 들은 바네사 찬은 “우리 모두 독립성, 개방성, 자유를 사랑할 뿐이다. 남편이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냐?”고 물었다.

마찬가지로 시민운동가인 찬은 다른 이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고자 했으나, 경비가 삼엄한 법원 앞에서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판결을 앞두고 진행된 BBC 중국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찬은 “남편이 안됐다…남편은 현재 나처럼 비참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긴 머리로 인해 ‘장발’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뤙 전 의원은 수년간 홍콩에서도 가장 완강한 반체제 인사로 손꼽힌다.

하루에 15분만 남편을 면회할 수 있는 찬은 남편은 이전에도 몇 차례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투옥된 바 있으나, 이번엔 조금 다르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에는) 사회적 환경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민주화 운동은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수감 생활은 그저 사소한 계획 차질에 불과했습니다…사람들은 출소 후 할 일이 많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뤙국홍 전 야당 의원
Getty Images
‘장발’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뤙국홍 전 야당 의원은 한 떄 자신을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남편은 “작은 감옥에서 더 큰 감옥으로 이송될 때만 풀려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60대인 두 사람은 지난 2021년 초에 뤙 전 의원이 투옥되기 불과 몇 달 전 공식적으로 결혼했다. 뤙 전 의원은 이후 줄곧 수감된 상태다.

한편 이번에 유죄를 인정한 31명 중 하나인 헨드릭 루이의 양어머니인 엘사 우는 사회 복지사인 아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다고 토로했다.

루이는 이번 재판의 핵심인 비공식적인 예비 선거에 출마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는 “아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직접 봤다. 그래서 ‘내가 선거에 출마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게 됐다”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아들이 계속 사회복지사로 일했다면 나았을 것 같습니다.”

법원 앞에 몰린 사람들과 경찰의 모습
Reuters
이번 판결을 앞두고 며칠간 법원 앞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판'

한편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인 비공식적 예비선거는 앞서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홍콩 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2020년 7월 치러졌다.

다가올 입법회 선거에 출마할 야권 후보를 뽑기 위한 해당 선거엔 홍콩 시민 6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그러나 실제 입법회 의원 선거는 연기됐고 2021년 12월에야 치러졌다. 논란 끝에 선거제가 개편된 상태였고, 선거에선 친중 후보들이 의석을 휩쓸었다.

새로운 선거제에 따라 중국 당국이 출마할 수 있는 의원을 선별하게 됐으며, 유명한 야당 의원들은 이미 상당수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상태였다. 당시 홍콩의 투표율은 30%에 불과했다.

한편 홍콩 행정부는 민주화 운동가 47명에 대해 이들이 정부를 약화하려는 “악의적인 계획”을 꾸몄다며 검사 측의 기소를 옹호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논란으로 얼룩졌다.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 배심원이 아닌 홍콩 행정부가 직접 뽑은 판사 3명이 판결 내리게 되는데, 이에 홍콩의 관습법 제도와는 어긋난다는 비난이 일었다.

이번 사건의 피고인 대부분이 2021년 1월 체포된 이후 줄곧 수감된 상태다. 재판은 지난해 초가 돼서야 비로소 시작됐다. 이들의 보석 신청은 거부당했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경우 재판 전 구금이 일반화됐다.

첫 번째 보석 심리는 무려 나흘 동안 이어졌는데, 그동안 피고인들은 옷을 갈아입거나 몸을 씻을 수조차 없었다. 이후 10명이 실신했으며, 몇몇은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아시아 법 센터’ 소속 에릭 라이 연구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판”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7월 예비 선거에 출마했다가 이후 홍콩을 떠난 서니 청은 “이번 판결로 사실상 홍콩에선 모든 반정부 목소리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으로 망명한 청은 동료 활동가들이 그립다면서 “함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동료들이 꿈에 나온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엄청나다”고 덧붙였다.

추가 보도: 프란시스 마오, BBC News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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