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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영포티'는 왜 조롱의 대상이 됐을까

3시간 전
40대 남성 지승렬 씨 뒤로 춤추는 AI로 형상화한 영포티 남성이 있다
BBC

"젊어 보이려고 발악하는 아저씨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시간이 흐르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같아요."

'영포티(Young Forty·젊은 40대)'를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그려지느냐고 묻자, 청년들에게서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온라인에서는 '스윗 영포티'처럼 젊은 여성의 호감을 사려는 40대를 비꼬는 파생 표현이 등장했고, 스스로 '영포티'에 해당하는지를 점검해본다는 셀프 체크리스트도 퍼지고 있다. 한국에서 40대는 왜 조롱과 풍자의 표적이 된 것일까.

지난 9월 아이폰17 출시 직후, 온라인 상에서 뜻밖의 조롱이 등장했다. 20·30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아이폰이 '영포티(Young Forty·젊은 40대)'의 소유물로 묘사됐다.

AI가 생성한 영포티의 이미지에는 스트리트 브랜드 모자와 티셔츠, 데님 반바지, 스니커즈, 그리고 밝은색 최신 아이폰이 등장한다. 이른바 '억지로 젊어 보이려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과장해 그려냈다.

하지만 '영포티'라는 단어가 처음부터 부정적인 표현은 아니었다. 이 용어는 2010년대 중반 마케팅 업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젊은 감각과 소비 성향을 갖춘 40대'를 가리켰다.

건강 관리와 취미 생활에 적극적이고, 새로운 기술과 SNS 문화에도 비교적 익숙한 '활력 있는 중년'이 영포티의 전형적인 이미지였다. 기업들은 이들을 경제력과 트렌드 감각을 겸비한 핵심 소비층으로 주목해 왔다.

'영포티(Young Forty)'라는 용어를 처음 공개적으로 제시한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날카로운 상상력연구소' 소장은 BBC에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에는 40대라고 하면 이미 나이가 든 세대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중간 나이가 40세 안팎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결과 40대는 더 이상 '노년 직전'이 아니라, 사회의 한가운데에 있는 세대가 됐습니다."

그는 이어 "20대와 30대를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살아온 X세대가 40대에 진입했다"며 "40대의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는지 분석했고, 기존의 40대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영포티'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영포티'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영포티' 관련 온라인 언급량 10만4160건 중 55.9%가 부정적인 맥락이었다.

상위 연관 키워드는 '욕하다', '늙다', '역겹다' 등이었다. 불과 10년 만에 '젊은 감각의 중년'은 '조롱받는 세대'로 전락한 셈이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출연진의 캠퍼스 단체 사진
CJ E&M/News1
영포티 세대는 1990년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주도하며 '신인류'로 불렸다. 응답하라 1994에 담긴 시대상처럼, 이들의 20대는 문화와 패션, 스포츠와 여행 등 다양한 취향과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던 시기였다.

2030이 보는 영포티

온라인에서 영포티를 둘러싼 농담과 패러디를 주로 소비하고 생산하는 쪽은 2030세대다. 이들은 영포티를 단순한 패션 취향이 아니라, 말투와 행동, 태도가 나이에 맞지 않다고 느껴질 때 생기는 어색함으로 받아들이며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

20대 황이랑 씨는 영포티란 단어 자체가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한다.

황 씨는 풍자의 이유를 옷차림뿐 아니라 태도에서 찾았다. 그는 "말투나 표현에서 MZ세대를 따라가려는 느낌이 있다"며 특히 "영포티 남성이 10·20대 여성에게 말을 많이 거는 행동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정주은 씨도 영포티를 "40대인 사람들이 어려 보이려고 20·30대처럼 입으려 하거나, 세월이 흘러가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 역시 "말투나 행동이 너무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분위기"를 문제로 꼽으며, "청년에서 이제 어른 나이로 넘어가는 세대가 어려보이고 싶어하니까 사회적인 인식과 어긋나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30대 황치예 씨와 박소현 씨가 서울역에서 취재진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BBC/이선욱
30대 황치예 씨는 2030세대가 40대를 전부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최근 청년정책 플랫폼 '열고닫기'가 20~49세 직장인 3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도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한다.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이 느끼는 불편함의 핵심은 '젊어 보이려는 외형' 자체가 아니라, 상황에 맞지 않게 과장된 퍼포먼스나 언행에 있었다.

'열고닫기'는 설문 조사에서 영포티에 대한 이미지가 뚜렷하게 양분돼 있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은 영포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2030을 흉내내는 40대'(58%), '어린 이성에게 치근덕대는 40대'(38%) 등 부정적인 인상을 우선적으로 떠올렸다. 그러나 동시에 '젊은 감성의 40대'(40%), '평생학습·도전형 40대'(14%) 같은 긍정적 이미지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청년층이 '젊게 보이려는 시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맥락·관계·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 즉 선을 넘는 태도를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정서를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다.

이번 조사를 주관한 원규희 열고닫기 대표는 "온라인에서 소비되는 영포티 이미지는 외형 중심의 조롱이 강하지만, 실제 청년들이 바라보는 영포티는 태도의 문제에 더 가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영포티는 세대 싸움의 언어라기보다, 배우고 존중하며 함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31세 황치예 씨 역시 2030세대가 40대를 전반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황 씨는 "존경할 만한 (직장)선배들도 많고… 저는 사실 그렇게 나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저도 회사 들어갔을 때 '너네 MZ구나' 하면서 보는 시선들이 있었다"며, "영포티도 나름이고 MZ도 나름인데, 그렇게 서로 프레임을 씌우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끼인 세대'

다만 온라인에서 형성된 '영포티 조롱 문화'는 실제 사회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40대들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영포티 아이템이라 중고로 내놓는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젊게 입는 게 왜 문제냐", "아이폰은 우리가 더 먼저 썼다"는 반발도 이어진다.

식품기업 팀장이자 패션 인플루언서인 41세 지승렬 씨는 올해 SNS '영포티 밈'을 보고 "우리 세대가 사회적 비난, 비아냥,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요즘 친구들끼리는 '야, 우리 영포티래', '안녕하세요, 영포티입니다' 하면서 그냥 장난처럼 쓰기도 해요. 저도 꾸미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완전 네 얘기네'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요. 40대 입장에서 이런 흐름이 기분이 좋진 않죠."

지 씨에게 조던·포스·스투시는 단순히 유행상품이 아니라 1990년대 당시 "너무 비싸서 갖지 못했던 로망"이었다며 "그냥 예전부터 좋아하던 걸 편하게 사 입는 것뿐인데 그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건 '이게 왜 욕먹을 일이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세대를 "어릴 때는 누릴 것이 없었고, 성인이 된 뒤에야 조금 누릴 수 있게 된 세대"라고 설명한다. 십대시절 IMF 외환위기를 경험했고 원서를 60~70개 내고 겨우 들어갔던 취업시장이 지 씨가 경험하는 20대 전후의 일이다. 직장에서 이들은 두 쪽 세계가 섞인 샌드위치 세대다.

"직장 문화에서도, 저희 윗세대는 전형적인 권위주의 문화였어요. '하라면 하는' 상명하복 구조였고요. 지금 후배들은 '왜요?'라고 말하는 세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양쪽 문화를 다 경험한 '끼인 세대'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식품기업 팀장이자 패션 인플루언서인 지승렬 씨가 BBC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BBC/김효정
식품기업에서 근무하는 패션 인플루언서인 지승렬(@detailance) 씨는 '영포티 밈'을 보고 "우리 세대가 사회적 비난, 비아냥,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지 씨는 2030세대들이 불편해하는 일부 영포티의 측면이 이런 것과 연관된 것 같다고 했다.

"영포티를 비난하는 이유로 흔히 나오는 게 정치적으로 편향이 강하다, 그걸 강요한다, 회사에서 일하는 스타일도 자기 방식을 강요한다, 이성 관계에서도 선을 넘는다… 이런 이미지들인 것 같아요. 공통점은 '강요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입니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이런 부분을 느낀다고 한다.

"'강요'가 되는 순간 바로 꼰대가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술자리도 거의 안 잡고, 커리어 고민이나 업무 얘기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대화가 깊어질 때만 개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조심하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사회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마침 그들의 옷차림이 지금 밈으로 소비되는 '영포티 스타일'이었던 거겠죠."

옷차림이나 젊은 감각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41세 회사원 류석진 씨(가명)도 "40대는 사회적으로 품위유지도 어느정도 필요한 세대이기도 하고, '영포티'라는 단어가 조롱이 섞여 있어 기분 좋게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말했다.

류 씨는 "나이가 들수록 젊음에 대한 동경이 커지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젊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사실 모든 세대의 공통 관심사 아니겠느냐"고 했다.

"제 스스로 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세대 간 갈등

그렇다면 왜 50·60대가 아닌 40대에 이런 풍자가 집중될까.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2030세대의 경제적 박탈감과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자리한다고 분석한다. 40대는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에 취업했고 부동산 가격 상승기의 수혜도 누린 세대로, 노동소득·자산·소비력 모두에서 생애 정점에 있다.

반면 2030세대는 주거비 급등과 고용 불안 속에서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40대는 '기회의 문이 닫히기 직전 통과한 세대'로 인식되며 반감이 쌓인다는 것이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40대 미혼 남성이 연애·결혼 시장에서 경쟁자로 등장한 점, 세대 간 정치 성향의 차이 역시 갈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재인 고려대 세종캠퍼스 사회학과 교수는 여기에 온라인 환경의 변화가 영포티 조롱을 확대하는 중요한 구조적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에는 20대뿐 아니라 40대도 SNS를 활발히 사용하면서, 예전처럼 세대가 서로 다른 문화 공간을 소비하던 방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취향과 여가가 세대별로 자연스럽게 분리됐지만, 지금은 동일한 플랫폼에서 자기 표현이 이루어지면서 활동 공간이 겹치고, 이 과정에서 세대 간 마찰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이재인 교수는 온라인 환경의 변화가 영포티 조롱을 확대하는 중요한 구조적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Getty Images
이재인 교수는 온라인 환경의 변화가 영포티 조롱을 확대하는 중요한 구조적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구도 역시 조롱의 강도를 높였다.

이 교수는 "사회 초입 단계에 있는 20대 후반~30대 초반 남성, 이른바 '이대남'과, 과거 진보적 성향을 보였던 386세대·40대 후반 남성이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캠프에 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성별이 같고 사회 구조 내 위치도 맞닿아 있는 만큼 비교와 반감이 직접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젊은 남성층의 정치 성향이 과거보다 보수화된 것도 이런 대립 구도를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요인들이 맞물리며 영포티 조롱은 특히 남성에게 집중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오은경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전문가는 "한국 사회에서 40대 남성은 여전히 연봉·직급·집·차로 대표되는 '성공 서사' 중심에 있다"며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 기득권과 권력의 상징으로 읽히기 때문에 조롱의 에너지가 집중된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에서 승진과 평가 권한을 가진 얼굴이 대부분 40대 남성이기 때문에, 청년층은 영포티 풍자를 단순한 '아재 놀리기'가 아니라 권력 세대를 비트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영포티 밈이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이러한 쏠림에 영향을 미쳤다.

오 전문가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진 '젊은 여자에게 들이대는 40대'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소비되면서 풍자 대상이 남성으로 고착됐다"며 "겉으로는 '젊게 살겠다'고 말하지만 젠더 감수성과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는 모습도 조롱을 더 키운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나이 서열' 문화

이처럼 영포티에 대한 조롱에는 경제·문화·정치·젠더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나이 감수성' 문제의 연장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섭 소장은 그 배경에 한국 사회 특유의 나이 서열 문화가 있다고 지목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나이가 곧 서열화돼 있다. 나이 한 살만 많아도 형·오빠 대접을 받으려 하는 문화가 여전히 강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러한 문화가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세대를 번갈아 조롱하는 풍토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포티는 조롱의 첫 타깃이 아니에요. 한국 사회는 이미 '꼰대'라는 말로 나이가 더 많은 세대를 한번 소비했고 그 다음에는 MZ세대를 놀리고 심지어 더 어린 세대까지 계속 돌아가면서 특정 집단을 비하해 왔습니다.

그는 이어, 온라인에서 소비되는 '이상한 40대 남성' 서사 상당수가 실제 현실과는 다른 과장된 이미지라고 지적했다.

"조롱하는 사람들은 왜 조롱할까요? 그 자체가 재미일 수도 있고, 어쩌면 트래픽을 만드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하나 조롱이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죠."

이 같은 구조는 결국 소수의 행동을 전체 세대의 문제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그는 우려했다.

김 소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개인의 매너'가 아니라 혐오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누구도 다른 누구를 조롱하고 비하할 권리는 없습니다. 세대 혐오를 줄이자고 국민에게 숙제를 주기보다, 플랫폼이나 언론 등 이런 혐오 콘텐츠를 트래픽용 아이템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합니다."

영상: 이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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