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바라본 남성의 몸': 충격을 불러일으킨 80년대 선정적인 청바지 광고
'세탁소'를 배경으로 한 리바이스 TV 광고는 40년 전 처음 방영되자마자 제품 판매량을 급증시켰다. 하나의 전환점이 된 이 광고는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
1985년 박싱데이(크리스마스 다음 날로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와 쇼핑을 즐기는 서양의 연휴)였던 그날, 연휴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TV를 켠 가족들은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면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한 영국 모델이 미국의 한 세탁소에서 검은 티셔츠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리바이스 501 청바지를 벗은 뒤 속옷 차림으로 세탁기를 돌리는 광고다. 영상에는 마빈 게이의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커버곡이 배경으로 흘렀다. 이 광고는 대중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그 광고가 나온 지도 어느덧 거의 40년이 지났다.
1950년대처럼 꾸며진 세탁소에서 수려한 외모의 닉 케이먼이 옷을 벗는 모습에 미소를 지은 것은 광고 속 여성들만이 아니었다. 영국 광고대행사 BBH가 제작한 50초짜리 이 광고를 통해 리바이스는 단숨에 승자가 되었다. 리바이스 501 모델 판매량이 무려 800%나 증가한 것이다. 당시에는 유행이 지난 제품에 골치 아팠던 한 브랜드에는 엄청난 성과였다.
'세탁소(Launderette)'로 알려진 이 광고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수년간 다양한 패러디가 등장했고, 2024년에는 가수 비욘세가 자신의 앨범 카우보이 카터 수록곡 '리바이스 진'으로 리바이스와 협업하며 이 광고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문화의 도화선
카디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나 하마드는 BBC에 "리바이스의 세탁소 광고는 중요한 문화적 도화선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광고가 "남성성에 대한 문화적 재평가였다"며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제시함으로써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전면에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컨설팅 기업 크리에이티브 이퀄스의 설립자 알리 하난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BBC에 "당시로서는 매우 상징적인 광고였고, 아마도 여성의 시선이 남성의 몸에 집중되는 식으로 기존과는 다른 '시나리오'가 만들어진 첫 사례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당시의 시나리오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진보적이지 못하다. 1970년대 캐드버리 플레이크의 선정적 광고부터, 15세의 브룩 실즈가 "내 캘빈 청바지와 나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아무것도 없어"라는 문구를 속삭이던 논란의 캘빈 클라인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당시에도 TV에 자주 등장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성은 광고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등장하기보다는, 여전히 대상 그 자체로 머무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탁소 광고는 달랐다. 하난은 "여성의 시점이 담긴 광고였다"라고 평가했다. 이 광고는 BBH 창립 파트너 8명 가운데 한 명인 바바라 노크스가 대본을 썼다. 하난은 "노크스의 역할은 광고 역사 속에서 그다지 조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 광고가 '반항적 문화'의 반영이며, 변화를 위한 조건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80년대는 혁신과 창의성의 시대였습니다. 기존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이 대대적으로 뒤집히던 시기였죠."
시각문화 전반을 살펴보면, 1980년대의 화려함과 탐욕을 반영한 작품으로는 드라마 '다이너스티'와 '댈러스', 영화 '스카페이스'(1983)와 '월스트리트'(1987) 등이 있다. 세탁소 광고는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처럼 보였다. 동시에 신화화된 미국에 대한 향수를 담은 스타일의 파스티셰(여러 스타일을 혼합한 작품 형태)라 할 수 있다. 광고의 전반적 분위기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설정됐지만, 케이먼은 매끈한 퀴프 헤어스타일에 몸에 밀착된 티셔츠를 입었다. 그를 바라보는 여성들은 고양이 눈 모양 안경과 롤러 컬 헤어를 했다. 여기에 배경 음악은 1960년대 음악이었다.
광고에서 여성의 시선이 드문 이유는 아마도 업계의 인적 구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하난은 "우리 앞에 여전히 놓여 있는 큰 과제 중 하나는 광고 및 미디어 분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가운데 75%가 남성이라는 점이며, 그 결과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작업이 그들의 관점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세탁소 광고의 파급력은 청바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BBH 공동 창립자이자 세탁소 광고의 아트 디렉터였던 존 헤가티 경은 2023년 BBC 라디오 프로그램 '미디어 쇼'에서 "1985년까지 남성용 사각 속옷은 '1940년대 미국 어딘가에서나 볼 법한, 다소 수상한 속옷'으로 여겨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검열 문제를 피하기 위해 원래 계획했던 삼각 속옷 대신 "덜 음란한" 디자인의 사각 속옷으로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광고 모델에게 사각 속옷을 입혔습니다. 그가 속옷만 남기고 옷을 벗는 장면이 방송되자, 501 청바지 판매량과 함께 사각 속옷 판매량도 급증했습니다."
음악계에도 영향이 나타났다.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은 재발매돼 영국 싱글 차트 10위권에 진입했고, 소울과 R&B 장르에 대한 관심도 다시 불붙었다. 음악 활동 경험이 있었던 모델 케이먼은 마돈나의 눈에 띄며 본격적인 음악 커리어를 시작했다. 마돈나는 그를 자신의 후배로 삼았고, 훗날 히트곡이 된 'Each Time You Break My Heart'의 공동 작곡과 프로듀싱에 그를 참여시켰다.
2021년 세상을 떠난 케이먼은 1980년대 영향력 있는 '버팔로' 패션 운동의 일원이기도 했다. 광고에 캐스팅되기 직전 그는 버팔로 창립자 레이 페트리가 스타일링을 맡은 화보 촬영에서 모델로 등장해, 선구적인 패션 잡지 '더 페이스'의 표지를 장식했다. 1986년 케이먼은 다시 한번 같은 잡지의 표지 모델로 선정됐다.
'새로운 남성'
아마도 이 광고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서구 문화를 지배해 온 공격적이고 육체적으로 위압적인 남성성 개념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일 것이다. 케이먼의 외모는 소년 같고 위협적이지 않았으며,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시선의 집중을 받는 그의 반나체 상태는 오히려 취약함을 암시했다.
남성성의 이같은 재구성은 폭넓은 호응을 얻었고, 여성의 시선은 곧 광고에서 자연스러운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하마드는 "동시대의 문화적 대표 사례로는 1986년 사진작가 스펜서 로웰의 '남자와 아기' 이미지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상반신을 드러낸 남성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담은 아테나의 베스트셀러 포스터(L'Enfant)는 매력적인 남성성을 더욱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 이미지는 고정된 성 역할에서 벗어나 감정적으로 개방적이고 배려심 깊은 남성을 뜻하는 '새로운 남성' 개념과 맞물렸다.
하마드는 이러한 변화가 1960~70년대 제2차 여성운동과 여성해방운동에 기인한다고 풀이했다. 그는 이 운동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화적 재평가와 재협상을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상적인 남성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재구성이 이뤄졌고, 한때 남성성을 약화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부드러움'이라는 특성에도 점차 가치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한편 이 광고의 편집 방식은 단순히 청바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케이먼이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청바지 단추를 풀게 함으로써 그를 하나의 상품으로 대상화하기도 했다. 프랭크 모트는 저서 '남성적 질서: 남성성의 해체'(1988)에서 카메라 앵글을 통해 어떻게 "남성의 신체가 분절되고 성적으로 대상화되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케이먼의 신체 일부를 빠르게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지난 40년간 광고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묘사할 때 사용돼 온 전형적 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며, "다만 그 대상이 남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썼다.
리바이스 세탁소 광고에서 새롭게 등장한 시선은 여성의 시선만이 아니었다. '메트로섹슈얼'이라는 용어를 만든 퀴어 문화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마크 심슨은, 이 광고가 게이 시선을 주류 시청자들 앞에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2008년 블로그 글 '80년대 광고는 어떻게 모두를 게이로 만들었나'에서 이 광고가 "여성들에게도, 게이 남성들이 수년간 사용해 온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남성의 몸을 비판적이고 까다로우며 포식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장려했다"고 썼다.
광고의 장기적 영향
남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프레임은 이후 다양한 광고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1994년 큰 주목을 받은 '다이어트 콜라 휴식' 광고가 대표적이다. 이 광고는 근육질의 건설 노동자가 잠시 쉬는 동안 여성 사무직 직원들의 시선을 받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하마드는 세탁소 광고가 "지속적인 영향력을 지닌 유산"을 남겼다며, 2025년에 재개된 1994년 코카콜라 광고(제이미 도넌 출연)를 그 사례로 들었다. 영화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졌다. 2006년작 '007 카지노 로얄'에서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장면은, 1962년작 '닥터 노'에서 우슬라 안드레스가 등장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만 적용되던 클리셰를 남성에게 적용한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하마드는 세탁소 광고가 획기적이었음에도 해방적인 광고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적 대상화의 성별 구도를 뒤집고, 미디어 표현에 수반되는 시선의 성별만 바꾸는 것이 여성이나 그 누구에게도 본질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2024년 제러미 앨런 화이트가 옥상에서 몸에 밀착된 흰색 속옷만 입고 운동하는 모습을 담은 캘빈 클라인 광고는 성적 대상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게티이미지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대상화의 주체를 바꾸는 것보다 성 역할의 표현 방식 자체를 재고하는 것이 오늘날 성공적인 캠페인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이 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에서 크리에이티브 인사이트 연구원 캐롤리나 삼파이오 레크너는 "비주얼GPS 시각 테스트 결과, 남성성의 범주를 확장해 '부드러움'까지 포함할 경우 모든 인구 집단에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유엔 여성기구가 주도하는 비영리 연합체 언스테레오타입 얼라이언스의 2024년 보고서 '포용성 = 수익성' 역시, "포용적인 광고가 상업적 성과와 브랜드 가치 측면에서 더 우수한 결과를 낸다"고 강조한다.
세탁소 광고가 고정관념을 완전히 해체하거나 성별 간 갈등을 해소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질문을 던졌고, 새로운 관점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놓았다. 2021년 캠페인지 인용에 따르면, 현재 광고·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모던 시티즌스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인 벤 미들턴은 이 광고를 "기성 문화를 넘어선 광고가 탄생한, 광고 역사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공개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헤가티 경은 이 작품을 BBH의 최고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그는 2019년 마케팅 위크 인터뷰에서 "영상 작품에는 특별한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음악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속도감이 완벽해지면 리듬이 생기고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그건 마법 같은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