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서 팩트체킹 기능 없앨 것'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모기업인 '메타'가 제3자가 사실 관계를 규명하는 '팩트체커' 정책을 폐지하고 대신 X의 '커뮤니티 노트'와 유사한 방식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게시물의 정확성에 대해 사용자들이 직접 나서 의견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메타의 블로그 게시물과 함께 공개된 영상을 통해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제3자의 점검이 "너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현재 저커버그 CEO 및 다른 IT 기업 경영진이 취임식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애쓰는 가운데 발표된 정책이다.
미국 공화당 소속 유명 인사이자 최근 메타가 닉 클레그의 후임으로 최고 글로벌 업무 책임자로 임명한 조엘 카플란은 메타의 독립적인 점검자에 대한 의존은 "좋은 의도"였으나, 때때로 자주 검열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 내 친트럼프 인사들은 메타의 이 같은 팩트체킹이 우파의 목소리를 검열하고 있다며 비판해왔다.
이번 메타의 정책 발표 이후 트럼프 당선인은 기자 회견에서 저커버그 CEO의 결정에 감명을 받았다며 메타가 "많은 진전을 보았다"고 평가했다.
- '트럼프 암살 시도 사건' 이후 SNS를 뒤덮은 음모론과 혐오 발언
- EU, 하마스 가짜뉴스 확산하는 일론 머스크의 ‘엑스’ 조사
- 럼블: 사용자가 주류 플랫폼에서 ‘취소당하는’ 것을 막겠다는 SNS 기업
그러나 온라인 혐오 발언 반대 운동가들은 이러한 메타의 정책에 대해 실망감을 표하며, 트럼프 편에 서고자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이라 비판했다.
글로벌 대기업들에 책임을 묻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하는 사회 운동 그룹인 '글로벌 위트니스'의 애바 리는 "저커버그 CEO의 이번 발표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 아부하려는 노골적인 시도"라면서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위 "검열"을 "피하겠다는 주장"은 SNS 플랫폼이 조장하고 촉진하는 혐오와 허위 정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이라고 덧붙였다.
X 따라하기
지난 2016년 도입된 메타의 팩트체킹 기능에 따라 메타의 의뢰를 받은 독립적인 기관이 허위 정보이거나 오해의 소재가 있는 게시물의 진위를 판단한다.
이에 부정확한 정보로 판단된 게시물에는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라벨이 부착되고, 사용자들의 피드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우선 미국을 시작으로" 해당 기능은 사용자들이 작성하는 커뮤니티 노트로 대체될 예정이다. 메타는 영국이나 유럽연합(EU)에서는 제3자의 팩트체킹 기능을 "곧장 제거할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커뮤니티 노트 시스템은 일론 머스크의 인수 이후 X로 이름을 바꾼 트위터에서 처음 도입된 기능이다. 서로 관점이 다른 사용자들이 의견을 달며 논란이 되는 해당 게시물에 맥락이나 추가 설명을 다는 방식이다.
머스크 CEO는 메타가 비슷한 기능을 채택했다는 소식에 "멋지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온라인상의 아동 안전에 대해 연구하는 영국의 '몰리 로즈 재단'은 이번 발표에 대해 "온라인 안전이 크게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재단의 이안 러셀 회장은 "우리는 자살, 자해, 우울한 콘텐츠에도 이번 변경 조치가 포함되는지 여부 등 이번 조치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밝혀주길 촉구한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조치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선 메타 측은 BBC에 자살 및 자해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콘텐츠를 "매우 심각한" 정책 위반으로 간주할 것이며, 자동 검토 시스템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에서 페이스북의 게시물 진위 판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팩트체킹 기관인 '풀팩트'는 자사 업무를 둘러싼 "편향성 의혹"을 전면 반박한다고 밝혔다.
풀팩트의 크리스 모리스 CEO는 메타의 이번 결정은 "전 세계에 무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망스러운 퇴보 조치"라고 비난했다.
'페이스북 감옥'
플랫폼에서 유해한 내용을 골라내는 모더레이터(점검기관)들과 함께 팩트체크 기관들은 인터넷의 긴급구조대를 자칭한다.
그러나 메타 경영진은 이들의 개입이 너무 과하다는 결론을 내린 듯하다.
카플란 신임 최고 글로벌 업무 책임자는 지난 7일 "무해한 콘텐츠들이 너무 많이 검열되고 있으며,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페이스북 감옥'에 갇혀 있다"면서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의 대응이 너무 느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영상 속 저커버그 CEO는 이러한 변화는 "(서로 대립하는 요소 사이의) 주고받기"라고 표현했는데, 어느 정도 위험이 뒤따른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저커버그 CEO는 "(이번 정책 변화는) 우리가 나쁜 콘텐츠를 덜 적발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이지만, 실수로 무고한 사람들의 게시물과 계정을 삭제하는 빈도도 줄어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정책 변화는 빅테크 기업들이 콘텐츠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하거나,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유럽이나 영국 규제 당국의 기조와는 상충한다.
그렇기에 우선 현재로서는 미국에서만 기존의 관리 체계에서 벗어나겠다는 메타의 결정은 그리 놀랍지 않을 수 있다.
'급진적인 변화'
메타는 이번 블로그 게시물을 통해 자사의 규칙과 정책이 "기존 정책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것도 되돌리겠다"고 밝히면서 "TV나 의회에서는 할 수 있는 말을 우리 플랫폼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재 메타를 포함한 빅테크 기업들은 오는 20일로 예정된 트럼프의 취임식에 대비하고 있다.
몇몇 빅테크 CEO들은 공개적으로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하고 나섰으며, 당선인의 플로리다 소재 별장인 마라라고 직접 방문해 만난 이들도 있다.
지난해 11월 저커버그 CEO도 마라라고로 향했으며, 메타는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기금에 100만달러(약 14억)를 기부하기도 했다.
아울러 저커버그 CEO는 이번에 공개된 영상에서 "최근 선거는 다시 한번 언론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문화로의 전환점처럼 느껴진다"고 발언했다.
미 뉴욕 타임즈는 메타가 이번 정책 발표 전 트럼프 측에 미리 알렸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자유민주당 소속인 클레그 전 영국 부총리가 물러나고 미국 공화당원인 카플란이 메타의 새로운 최고 글로벌 업무 책임자로 임명된 것도 메타의 방향 전환과 정치적 우선순위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또한 지난 6일에는 트럼프의 측근으로 손꼽히는 데이나 화이트 '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UFC)' 회장이 메타 이사회에 합류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기도 했다.
한편 미국 세인트 존스 대학교 로스쿨의 케이트 클로닉 부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지난 몇 년간 이어진, 특히 머스크의 X 인수 이후 피할 수 없어 보였던" 흐름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클로닉 교수는 B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용자들의 발언에 대한 SNS 플랫폼의 사적인 관리 및 감독은 점점 더 정치쟁점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기업들이 괴롭힘, 혐오 발언, 허위 정보와 같은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신뢰와 안전 장치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면, 이제는 "정반대 방향의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