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에 주요 항공사 '비상 경영' 돌입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가운데, 대한항공이 오는 4월부터 국제 항공유 가격 급등에 대응해 비상 경영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우기홍 대한항공 부회장은 "계속되는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비정상적인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4월부로 비상경 영체제로 전환하고 유가 수준별 단계적 대응 조치를 즉시 시행해 전사적인 비용 효율화를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이란 전쟁의 경제적 여파에 대응하고자 최근 아시아의 여러 항공사가 잇달아 대응 조치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28일 전쟁 발발 이후 원유 가격은 50% 이상 급등했으며, 전 세계 항공유 가격은 2배 이상 치솟았다.
컨설팅 기업 'PwC'의 탄 치 시앙은 항공사들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회사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고자 유사한 비상 대응 체계를 실시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 유가 상승과 역내 항공유 부족이라는 "이중 충격"에 직면한 아시아 항공사들은 이러한 비상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한국은 중동산 석유 의존도가 높아 중동발 에너지 공급 차질에 특히 취약하다.
실제로 최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부산에어 등 여러 항공사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탄 연구원은 시설 개선 연기나 투자 축소 등 내부적인 조치가 대부분이지만, 일부 항공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운항 횟수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번 대한항공의 비상경영 돌입 또한 임직원에게 보낸 공지를 통해 발표됐다.
우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매월 막대한 연료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단순한 일회성 비용 절감이 아니라 구조적 체질을 강화해 안정적인 미래 성장 기반을 다지는 기회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중국과 홍콩
중국은 주요 에너지 생산국이지만 동시에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으로, 중국의 항공 산업은 글로벌 에너지 파동에 취약하다.
중국 최대 국영 항공사 중 하나인 중국동방항공은 지난 30일 글로벌 공급 차질이 올해 운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중국 항공사들은 줄줄이 유류할증료 인상에 나섰다.
또한 중국 당국은 국내 유가 안정을 위해 정유 시설에 에너지 수출 중단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홍콩의 '캐세이퍼시픽'은 모든 항공편에 유류할증료를 적용하면서 여러 항공편 요금이 크게 올랐다고 밝혔다.
일본
일본은 국제 교통 허브인 동시에 주요 항공기 부품 제조업체이기도 하다.
일본 항공사 '전일본항공(ANA)'은 이란 전쟁 이전에 가격이 책정돼 4월과 5월에 발권되는 항공권에 대해서는 유류할증료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ANA 대변인은 기존 할증료와 항공사가 사전에 유가 안정을 위해 취해둔 조치 덕에 현재로서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즉각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일본항공(JAL)은 연료 부족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JAL 측은 중동 노선 폐쇄 이후 수요 증가로 인해 일본-유럽 노선 등 일부 항공편 가격이 인상됐다고 설명했다.
인도
인도 국제 항공사들의 최대 시장인 중동행 항공편이 연이어 취소되면서 인도 항공 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중동행 항공편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며, '에어 인디아'와 같은 항공사들은 새로 편성된 중동행 항공편 운항 계획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있다.
지난주 인도 항공 당국은 올해 3~10월 국내선 운항이 약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3일, 인도 정부는 유가 급등에 따라 항공사들이 가격을 인상할 수 있도록 운임 상한제를 일시적으로 폐지했다.
이미 인도 항공사들은 파키스탄과의 긴장으로 인해 지난 1년간 파키스탄 영공 진입이 금지된 상황이었다.
싱가포르
'싱가포르항공'과 자회사인 저가항공사 '스쿠트' 측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항공유 급증에 항공료를 인상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그룹의 최대 비용 항목인 연료비가 최근 몇 달간 전체 지출의 약 30%를 차지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 가격 조정은 비용 증가분을 "충당하는" 것이지만, 전부 충당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민간항공 당국은 이란 전쟁의 영향으로 2026년 4월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친환경 항공유류세 도입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폐식용유, 동물성 지방 등의 폐기물로 생산되는 지속 가능한 항공유 구매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신설된 세금이다.
싱가포르 경제에서 항공 업계는 핵심 부문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차지한다.
그 외 항공사는?
지난 24일, 필리핀 당국은 이번 이란 전쟁에 맞서 세계 최초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또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일부 자국 항공사들이 해외에서 항공유를 보급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연료 부족으로 항공기 운항이 중단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이달 초, 베트남 항공 당국은 공급업체의 납품 지연으로 인해 이르면 4월부터 항공유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베트남항공은 현재 일부 국내선 항공편 운항을 중단한 상태다. 베트남은 석유의 거의 90%를 중동에서 수입한다.
소규모 항공사들이 가장 큰 타격
한편 전문가들은 대형 항공사일수록 에너지 위기의 영향에 대처할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많다고 전망했다.
'알톤 항공 컨설팅'의 브라이언 테리는 대형 항공사들은 중동에 발이 묶인 걸프 지역 항공사들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자사 항공편을 재배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싱가포르 항공은 런던행 항공편을 늘렸고, 호주의 콴타스 항공은 유럽행 운항 횟수를 늘렸다. 모두 걸프 지역 항공사들이 운항하는 노선이다.
또한 그는 대형 항공사들은 장거리 항공기를 수요가 높고 비싸진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고객들이 몰리는 노선에 집중 투입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콴타스 항공은 일반적으로 미국행에 투입하는 대형 항공기를 최근 수요가 증가한 유럽 노선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콴타스의 저비용 항공사인 '젯스타'와 같은 소형 항공사들은 호주-뉴질랜드 노선을 일부 축소하고 있다.
테리에 따르면 이번 연료 가격 상승은 소형 항공사, 특히 에너지 효율이 낮은 노후 항공기를 운항하는 항공사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소형 항공사들은 선택지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