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으로 악몽이 된 아시아 노동자들의 '걸프 지역 취업'
사이렌이 울려 퍼지지만, 노마 택타콘(49세)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다.
남편과 세 자녀가 있는 고국 필리핀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중동 카타르에서 그는 가사관리사로 일한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이번 전쟁으로 인해 카타르마저 포화 속에 놓였고, 이곳에 발이 묶인 택타콘의 유일한 바람은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다.
택타콘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사일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마다 무섭고 불안해진다"면서 "나는 반드시 살아서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우리 가족의 전부"라고 토로했다.
미국 군사 기지가 자리한 부유한 걸프 국가들 조차 이란의 공격 목표가 되면서, 많은 외국인 거주자가 출국했고 관광객과 여행객들도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수백만 명에게 이르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가사관리사부터 건설 노동자까지, 이들은 오랫동안 중동 경제를 떠받치는 동시에 고국에 두고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다.
택타콘 또한 23세 아들이 경찰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각각 22세와 24세인 두 딸이 간호사 공부를 마쳐 해외 고소득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지난 20년 동안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지에서 가사관리사로 일했다.
전쟁이 벌어진 현재도 계속 이곳에 머무르는 이유는 바로 월급이다. 중동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한 달에 최저 500달러(약 75만원)를 받는데, 이는 고국에서 비슷한 일을 할 때 버는 돈의 4~5배에 달한다.
택타콘은 "이 세상이 다시 평화로워지고 모든 것이 예전 같아지기를 바란다. 이 전쟁이 멈추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 전쟁으로 택타콘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 남편과 함께 작은 사업을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다.
이번 분쟁의 첫 희생자 중 한 명은 이스라엘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던 필리핀 여성 메리 앤 베올라스케스(32)였다. 주필리핀 이스라엘 대사관에 따르면 베올라스케스는 텔아비브에 있는 아파트에 탄도 미사일이 떨어진 날, 환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던 중 부상을 입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이 지역 이주 노동자는 2400만 명으로, 전 세계 최대 해외 취업지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출신이 대부분이다.
ILO는 이들 대부분이 저임금이나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며, 의료 서비스와 같은 기본적인 복지 혜택도 거의 누리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이번 분쟁으로 남아시아 이주 노동자 최소 12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아부다비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네팔인 디바스 슈레스타(29)도 그 희생자 중 하나다. 그는 3월 1일 이란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삼촌 라메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조카에게 네팔로 돌아오라고 설득했지만, 아부다비에서의 일이 좋고, 삶이 만족스럽다고 했다"고 전했다.
"걸프 지역에서 일하는 친척들이 많아 정말 걱정스러웠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슈레스타는 가족들에게 자신은 안전하다고 안심시켰다. 또한 페이스북에는 자신도 뉴스에 "걱정"되기는 하지만, "뉴스가 때때로 과장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라메시에 따르면 슈레스타는 2015년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네팔 지진으로 피해를 본 부모님의 집을 다시 지을 돈을 모으고 있었다.
그는 "슈레스타는 외아들이었다"면서 "정말 착하고 똑똑한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120km 이상 떨어진 두바이에서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물탱크 공급업자 아흐마드 알리(55)가 요격된 미사일 파편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아들 압둘 하크 또한 아버지를 따라 UAE에서 일했지만, 전쟁 발발 전 방글라데시로 귀국했다.
아버지는 매달 500~600달러를 가족에게 송금해왔는데, 국민 소득이 낮은 방글라데시에서는 엄청난 금액이다.
하크는 아버지가 라마단 기간, 사람들이 금식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크는 BBC에 "아버지는 두바이의 사람들을 정말 좋아했다. 다들 친절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 같아요. 뉴스를 보지도 않으셨고, 스마트폰도 없었거든요."
이제 하크에게 두바이와 중동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현재 그곳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다."
아시아 각국 정부는 중동 내 자국민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데려오고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공습 위협으로 두바이, 아부다비, 카타르를 오가는 항공편에 차질이 생기면서, 귀국을 원하는 노동자들은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 귀국 항공편인 필리핀항공 비행기에는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에서 출발해 육로로 최대 8시간을 이동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한 필리핀 노동자 234명과 사우디 현지에 있던 109명이 탑승했다.
현지 정부에 따르면, 3월 23일 현재 필리핀 노동자 약 2000명과 그 가족들이 귀국한 상태다.
중동은 해외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 200만 명 중 절반가량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들이 보내오는 송금은 필리핀 경제의 10%를 차지한다.
방글라데시에도 이러한 송금은 매우 중요하다. 1400만 명에 달하는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대부분이 중동에 거주한다.
이번 분쟁 발발 이후, 방글라데시 노동자 약 500명이 귀국했으며, 방글라데시 정부는 바레인에서 출발하는 귀국 항공편 최소 2편을 추가로 마련했다.
하지만 아예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미얀마 출신 수수(31)는 2021년부터 계속된 참혹한 내전으로 어지럽던 고국을 떠나 두바이에서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았다. 현재 부동산 회사에서 운영 전문가로 일하는 그는 두바이에서 2년째 거주 중이다.
수수는 지금의 재택근무 상황이 코로나19 봉쇄 당시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다만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창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대피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비상 가방도 준비해 뒀어요… 미얀마에서부터 생긴 습관이죠."
그런데도 그는 "(미얀마보다) 여기는 훨씬 더 평온하다. 결국엔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믿는다"고 마무리했다.
추가 보도: BBC 미얀마어 서비스, BBC 인도네시아어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