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공습으로 집이 무너지기 몇 분 전에 겨우 도망친 레바논 주민
이곳 레바논에서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 및 주요 인물들이 사망한 이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BBC 취재진은 지난 며칠간 피난민 캠프로 변신한 학교 건물에서 지내고 있는 여러 레바논 가족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 학교에서는 피난민 약 2000명이 지내고 있으며, 이중 수백 명은 교실에 자리가 없어 학교 안뜰에서 잠을 청한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두 손자를 돌보며 이곳에서 지내는 어느 가족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손주들만 겨우 챙겨 도망쳤습니다'
움 아마드 할머니는 자신들이 살던 곳 바로 옆 건물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심하게 피해를 보았으나, 자신과 가족들은 “마법처럼” 겨우 생존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도망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손주들만 겨우 챙겨 도망쳤습니다. 집도 군데군데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 가족은 차로 뛰어들었고, 더 많은 건물이 폭격당하는 동안 움 할머니의 남편이 겨우겨우 운전대를 잡았다.
할머니 부부가 뒤를 돌아보니 이들이 살던 집은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움 할머니는 눈물을 터뜨리지 않고자 애쓰며 “적어도 우리에게 돌아갈 집이란 없다는 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울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울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신의 은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움 할머니의 두 손자는 장애와 정신 건강 문제가 있다.
움 할머니는 좌절감과 분노에 휩싸여 “가자 지구의 아이들도 안타깝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은 대체 무슨 죄가 있냐”고 말했다.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학교 복도 밖에서는 구호팀이 물품을 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이내 할머니의 어린 손자가 울기 시작했다.
“손자가 얼마나 겁에 질려 있는지 보세요. 큰 소리가 날 때마다, 문이 쾅 닫힐 때마다 울면서 비명을 지릅니다.”
움 할머니는 손주들이 밤에도 더 이상 잠을 자지 않아 자신과 남편도 덩달아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제 손주들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모든 아이들이 큰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공습이 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거죠.”
레바논 남부 티레 근처 작은 마을에 살던 이들이 집을 떠나 현재 머물고 있는 이곳은 베이루트 소재 어느 학교 건물의 교실이다. 학교는 이들 가족처럼 남부에서 수도로 피난 온 피난민들을 위한 캠프로 변신했다.
교실 안 칠판과 벽, 창문 등에는 빨래가 걸린 빨랫줄이 이곳저곳 걸려 있다. 바닥에는 매트리스 몇 장이 깔려 있고, 학생들이 쓰던 의자는 움 할머니 가족을 위한 가구가 됐다. 교탁에는 냄비, 프라이팬 등이 놓여 있었다.
한편 취재진이 움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동안 남편인 바라캇이 들어왔다. 그는 헤즈볼라에 대한 언급 없이 이 책임은 정치인들의 탓이라고 했다.
“우리가 가자 지구 주민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건 우리의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땅을 지키고 싶습니다. 레바논인들은 우리 자신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이곳에서 지내는 다른 많은 가족과 마찬가지로 움과 바라캇 부부에게 이는 처음 겪는 전쟁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 1982년, 2006년에도 집을 잃었다. 이번이 벌써 3번째다.
바라캇 할아버지는 자신과 가족들은 지쳤으며,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이스라엘 아이들의 죽음도, 우리 아이들의 죽음도 원치 않습니다.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취재진은 바라캇 할아버지에게 곧 평화가 찾아온다고 믿는지 물었다.
“아니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평화를 원치 않습니다. 그건 매우 분명한 일이고,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치렀던) 2006년 전쟁보다 훨씬 더 힘든 전쟁이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움 할머니는 “우리가 가자 지구의 아이들을 위해 울듯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울고 있다.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의 자식을 위해 울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집에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 '헤즈볼라'는 무엇이며,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는 이유는?
- 더 큰 전쟁 또는 불안한 휴전? … 레바논 '통신기기 폭발' 이후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이스라엘 군이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
취재진은 또 다른 가족도 만나봤다.
가족을 이끌고 학교 건물로 피난 온 카말 무센(65)은 “짧은 경고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에게 집을 비우고 떠나라는, 이스라엘 군이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고 회상했다.
무센은 지난 28일 정오 무렵 이 같은 메시지를 받은 수많은 이들 중 하나다. 그에 따르면 메시지를 받은 뒤 “30~40분 후” 이웃 건물이 피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챙길 수 없었습니다. 그저 자동차 키를 챙겨 가족들과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무센은 가벼운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지금 입고 있는 옷뿐”이기 때문이다.
무센은 학교 안뜰에서 딸과 손자, 이웃 2명과 함께 앉아 있었다.
“이곳도 다 찼습니다. 남부에서 피난 온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무센의 가족들은 첫날 밤엔 야외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행히 마찬가지로 남부에서 온 친척들이 이곳에 머물고 있음을 알게 돼 이들이 지내는 교실에서 비좁은 틈을 비집고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무센의 딸 나다는 “한 교실에서 16명이 함께 생활한다”고 했다.
“2006년 전쟁 당시에도 이곳에 왔습니다.”
나나 또한 이번 전쟁은 더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저들(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수장을 죽였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전쟁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드론에 대한 두려움
한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도 머리 위에서는 이스라엘 드론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드론이 저공비행을 하며 선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몇 분 뒤, 큰 폭발 소리가 들렸다. 이스라엘이 이곳 학교에서 멀지 않은 다히에 지역에 공습을 가한 소리였다.
나다는 돌아갈 집 같은 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고자 애쓰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이곳 학교 화장실의 물이 바닥났고, 직원들이 나서 되는대로 우선 고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도착하기 시작하는 도움의 손길
한편 학교 안뜰에 트럭 한 대가 멈추더니, 인부들이 매트리스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덕에 적어도 몇몇 피난민들은 딱딱한 바닥에서 자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학교 관리자는 이 많은 사람들을 언제까지 도와주고 수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집을 잃은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챙겨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레바논 혹은 베이루트의 다른 지역에서 옷과 식량을 들고 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학교 관리자는 이스라엘의 표적이 된 레바논 내 다른 지역에서도 더 많은 피난민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호소했다.
시리아를 통한 국외 탈출
한편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를 통한 레바논 탈출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부터 살아남길 바라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레바논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사라 토마즈(34)는 지난 27일 어머니와 두 형제자매를 데리고 베이루트 남부 교외의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토마즈는 BBC 아랍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지도자를 암살하기 전 가족들과 레바논 탈출 결정해 다행이라고 했다.
토마즈의 가족은 10시간 가까이 차로 시리아를 거쳐 요르단에 도착했다.
“어머니의 친척이 있는 요르단에서 머물 수 있는 곳이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며,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죠…”
“현재 레바논에서 탈출할 수 없는 친척들도 있으며, 일부는 시리아를 통해 레바논을 떠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합니다.”
추가 보도: 에타르 샬라비(BBC 아랍어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