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거부하는 사람들: '기계가 쓴 글을 왜 읽어야 하죠?'

사빈 체텔러는 아직 AI의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최근 정말 좋은 문장을 읽었는데, '글을 쓸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이 쓴 글을 내가 왜 읽어야 하냐'는 말이었어요. 정말 강렬한 말이고, 제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죠."
런던에서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는 체텔러는 정규직과 파트타임을 포함해 약 1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우리가 직접 쓰지 않은 걸 보내는 이유가 뭘까요? 봇이 쓴 신문을 읽고, AI가 만든 노래를 듣고, 네 아이를 키우는 직원을 해고해서 돈을 좀 더 버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그 안에 기쁨도, 사랑도, 창립자로서 느낄 수 있는 향상심도 없어요. 저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그는 2022년 말 챗GPT 출시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AI 침공'에 저항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후 챗GPT를 포함한 AI 서비스들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소프트웨어 회사 세무쉬(Semrush)에 따르면 매달 50억 건 이상의 방문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챗GPT 같은 AI 시스템을 훈련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며, 훈련 이후에도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많은 전력이 소모된다.
AI가 사용하는 전력을 정확히 수치화하긴 어렵지만,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 검색 한 건당 전력 소모는 구글 검색의 거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일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런던에서 요가 리트릿 앤 모어(Yoga Retreats & More)를 운영하는 플로랑스 아셰리 씨는 환경적 영향이 AI를 거부하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AI가 영혼이 없고, 제 사업과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느꼈어요. 제 사업은 인간 간의 연결이 핵심이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는 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든다는 거예요. 대부분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죠."
체텔러 씨도 AI가 사회적 선을 위해 활용되는 부분에 대해선 존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AI가 사회에 미칠 더 커다란 영향력에 대해선 우려한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AI로 기사를 번역해 읽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 그런 건 필요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경쟁사들이 AI를 활용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사업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까?
"그런 식이라면, 저희 직원들을 이지젯 타고 밀라노 보내는 게 기차보다 훨씬 싸게 먹히죠. 이미 제 수익률은 성공적이지 않아 보여요, 만약 성공을 돈으로 측정한다면요. 하지만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고, 밤에 얼마나 편하게 잠들 수 있느냐로 성공을 본다면 과연 어떨까요?"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며 공공정책 업무를 하는 시에라 핸슨 씨도 AI 사용을 거부한다. 그녀는 AI가 인간의 문제 해결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본다.
"우리의 두뇌는 하루를 어떻게 구성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도구예요. 코파일럿(Copilot)에 물어보는 게 아니라요. 인간의 역할은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이고, 단순한 작업을 챗GPT에 맡기면 스스로 사고하지 않게 돼요. AI가 만든 완벽한 펑크 록 앨범이 굳이 필요하진 않거든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AI를 외면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건 아니다.
실명 비공개를 요청한 디지털 마케팅 종사자 재키 애덤스(가명)는 처음에는 환경 문제와 '게으름'이라는 이유로 AI를 거부했다.
"데이터 센터가 사용하는 에너지나 차지하는 땅의 규모를 듣고 마음이 불편했어요. 왜 우리가 AI를 써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하지만 1년 전부터 회사 동료 3명이 AI를 도입해 카피라이팅이나 아이디어 회의에 쓰기 시작했고, 6개월 전 그 역시 예산 삭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AI를 사용하게 됐다.
"그땐 제 통제 밖의 일이었죠."
그는 자신이 만약 AI를 계속 거부했다면 커리어에 악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말했다.
"요즘 채용 공고에 AI 경험이 필수 조건으로 들어가 있는 걸 보고, 이걸 익히지 않으면 도태될 거란 걸 깨달았어요."
이제 그는 AI 사용을 게으름이라고 보지 않는다.
"작업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어떤 부분은 더 좋아질 수도 있어요."
그는 현재 AI를 카피라이팅 다듬기나 사진 편집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뉴욕 페이스 대학교의 AI 윤리 전문가 제임스 브루소 교수는 "AI를 거부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말한다.
"왜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 알고 싶다면 인간이 필요하겠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다면 AI를 쓸 거예요. 그래서 형사 재판에선 인간 판사가 필요하고, 장기이식을 누가 받아야 할지 결정하는 데도 인간 의사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날씨 예보나 마취과 같은 분야는 곧 AI가 대체할 겁니다."
한편 애덤스는 직장에서 AI 사용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AI의 영향력이 커지는 데에 회의적이다.
"구글 검색만 해도 AI 개요가 나오고, 이메일에도 요약이 자동으로 들어가 있어요. 이제는 거의 통제 불가능한 느낌이에요. 이걸 다 어떻게 꺼야 하는 거죠?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