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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해진 푸틴의 그늘 속, 젤렌스키-트럼프 회동

1일 전
젤렌스키 대통령
Getty Images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15일 알래스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합의에 실패했다.

이번 백악관 회담에는 독일, 프랑스, 영국, EU 집행위원회 정상들도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주요 정상들의 입장은 무엇이며,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가로막는 핵심 쟁점 및 장애물은 무엇일까.

더 강해진 푸틴

이번주 백악관 회담에는 참석하지 않으나, 푸틴 대통령은 이미 확실한 승자로 자리매김한 모양새다.

우선 세계 최강대국 정상과 나란히 서며 지정학적 무대에서 전 세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아울러 스티브 로젠버그 BBC 러시아 에디터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아직 어떠한 굵직한 양보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주 알래스카에서 열린 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기대했던 러시아의 휴전 선언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에게는 오히려 많은 것을 얻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레드카펫 환대를 받았고, 하루 종일 지정학적 무대의 중심에서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와 나란히 서 있었다.

아울러 러시아도 여러 이득을 챙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그 어떠한 주요 양보나 타협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다.

최근 몇 주간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을 계속 거부한다면 더 강경한 대러 조치를 실시하겠다고 위협해왔다. 그러나 백악관은 아직 이 위협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10일 이내에 휴전 합의에 이르지못할 경우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전투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제재가 가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이번 전쟁의 설계자인 그는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에 초청받았다.

지난 15일 알래스카에서 만나 악수하는 미-러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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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진 모습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성과로 제시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이는 "확실한 푸틴의 승리"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게 톰 베이트먼 BBC 기자의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휴전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는 그가 지난 3월부터 줄곧 요구해 온 사항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얻어내지 못했다. 진전이 있었다고 밝히긴 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이 모든 상황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가 이제는 휴전이 아닌 평화 협정 모색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푸틴 대통령의 강화된 영향력이 드러난다.

BBC 모니터링의 비탈리 셰브첸코 러시아 담당 편집장에 따르면 수년간 서방 국가들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알래스카에서 정상회담까지 열렸음에도 푸틴 대통령의 입장은 과거부터 조금도 변한 바 없다.

푸틴 대통령은 알래스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도, 만나는 중에도, 만난 이후에도 일관되게 우크라이나 내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근본 원인'이란 그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른바 "특별 군사작전"을 개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즉 우크라이나를 독립 국가로서 해체하려는 의도다.

그리고 현재, 냉혹한 현실 속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이 아닌 '지속 가능한 평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의 입장에 동의하는 쪽으로 선회한 듯하다. 푸틴 대통령에 따르면 지속 가능한 평화는 오직 이러한 '근본 원인'이 제거되어야만 가능하다.

결국 다시 한번,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모양새다.

레드카펫을 함께 걷는 미-러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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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설계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의 외교 무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에 초대받았다

더욱 멀어진 유럽 동맹국들

한편 우크라이나의 가장 가까운 유럽 동맹국들의 경우 이번 주 워싱턴 회담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나, 지난 15일 알래스카 회담 등을 계기로 중심 무대에서 더욱 멀어진 듯 보인다.

유럽 동맹국들은 줄곧 휴전을 촉구했으나, 이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최선의 방법을 두고 미국과 유럽 간 의견차는 한층 더 벌어졌다.

제임스 워터하우스 BBC 우크라이나 특파원은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휴전은 생략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나오며 "EU와 유럽은 타격을 입었다. 이는 그들의 핵심 요구 중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베이트먼 기자는 푸틴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에 자신과 트럼프의 관계에 "훼방을 놓지 말라"고 경고할 수 있는 거대한 무대를 제공받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 동맹국 간 분열을 심화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집권 이후 줄곧 이를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조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가 당시 대통령이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되풀이해오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푸틴 대통령은 이 같은 발언이 2020년 대선이 "도둑맞았다"는, 여전히 트럼프 지지층 대다수를 흔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허위 주장과 직접 연결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푸틴 대통령은 짧은 몇 문장만으로, 그것도 무려 미국 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련해준 무대를 잘 활용해 미국과 유럽간 균열은 물론 미국 내부의 분열까지 이용하고 심화시킨 셈이다.

키어 스타머 총리와 젤렌스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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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비롯한 유럽 정상들 역시 이번 주 워싱턴을 찾을 예정이지만, 트럼프와 유럽 사이의 입장 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갈구하던 보장만큼 받지 못한 젤렌스키

한편 이번주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어떤 심정일까.

극도로 불안할지도 모른다. 올해 2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이 특히 참담하게 끝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측 불가능하고 적대적인 러시아와 대립 중인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가장 최우선 과제는 어떤 형태로든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주 알래스카 회담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기에 실망감을 느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폴 아담스 BBC 외교 전문기자는 가까운 시일 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의미한 안정 보장이 휴전을 향한 외교적 노력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보장이 없다면 향후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유럽 동맹국들은 올해 초부터 '의지의 연합'을 논의해 왔다.

앞서 스타머 총리는 휴전 시 우크라이나에 "안보 보장 부대"를 파견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전 계획"이 마련된 상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총리실에 따르면 이 군대는 "우크라이나의 하늘과 바다를 보호하고, 우크라이나군을 재건"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어떤 병력으로 구성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는 게 아담스 기자의 지적이다.

게다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 카드를 버리고 살상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입장을 바꾸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불과 일주일 전보다도 더 불리한 처지로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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