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핫 이슈’가 된 친환경 증기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맥주 회사 ‘뉴 벨지움 브루잉’의 시작은 창업자들이 1988년 벨기에에서 즐긴 자전거 여행이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인 킴 조던과 제프 레베쉬는 당시 여행을 통해 벨기에의 양조 기술을 고향으로 들여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로부터 3년 후, 두 사람은 직접 만든 첫 번째 맥주 ‘팻 타이어’를 지역 축제에서 선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12종 이상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30년간 미국 시장에 특화된 맥주를 만들어 왔다. 이들과 다른 맥주 생산자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스팀(증기)’을 사용한다는 점일 것이다.
증기는 양조 장비를 소독할 때 쓰일 뿐만 아니라, 양조 과정의 핵심 부분이기도 하다.
양조장에 있는 커다란 원뿔 모양 주전자는 맥아즙(양조 초기 단계에서 보리를 으깰 때 나오는 액체)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킨다.
이 과정은 맥주에서 원치 않는 풍미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끓이고 난 맥아즙은 용기에 담겨 효모를 넣고 발효 과정을 거쳐 맥주가 된다.
그리고 주전자에서 나오는 증기 중 일부는 열 교환기로 포집해 다음 번 양조에 사용한다.
증기는 산업 혁명의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여러 산업 분야의 생산 공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증기는 식음료 산업에서도 많이 쓰인다. 제약 회사에선 살균 목적으로 사용하고, 병원을 비롯한 다양한 건물에선 증기를 난방에 이용한다.
하지만 증기는 주로 화석 연료로 가동되는 보일러로 만들어진다. 때문에 탄소 배출량이 크다.
2018년 미국에서 산업 에너지 사용량의 73%가 화석연료였다. 그리고 그 중 40%가 증기 생산 보일러를 가열하는 데 쓰였다.
이를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전기 보일러로 바꾸는 것이다. 전기 보일러에 쓰이는 전기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다고 가정하면, 탄소 배출량은 대폭 줄어든다.
하지만 전기 보일러를 전환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다.
영국의 엔지니어링 기업 ‘스파이렉스 그룹’의 마우리지오 프레지오사는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라며 “비용 문제가 전기 보일러 확산 속도를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비용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전환은 비교적 간단하다.
프레지오사는 자신의 회사는 기존 시스템에 끼워넣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들은 (보일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기존 증기 인프라를 계속 사용할 수 있죠.”
이러한 특징은 ‘(보일러 교체를 위한) 가동 중단 시간’을 줄여줄 수도 있다. 이는 정밀하게 맞춰진 생산 공정을 활용하는 기업들이 전기 보일러를 도입할 때 우려되는 장애물이었다.
미국 스타트업 ‘아트모스제로’는 다른 방식으로 증기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중인 보일러는 공기에서 열을 추출하고, 그 열을 고온의 증기로 바꾸는 열 펌프다.
이 펌프는 끓는점이 낮은 액체 냉매를 폐쇄형 루프를 통해 순환시키며, 공기에 있는 온기를 포집한다.
이렇게 온기를 포집하며 온도가 다소 올라간 냉매는 압축을 통해, 물을 끓일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온도로 상승한다.
그러고 나면, 열 교환기가 냉매의 열을 물로 전달해 증기를 만들어낸다.
이 방식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애디슨 스타크 아트모스제로 CEO는 그들이 보유한 히트 펌프 기술이 기존 설비 대비 수십만 달러를 절감해 줄 것으로 전망했다.
스타크는 “열 펌프 기반 시스템이기 때문에, 기존 보일러보다 훨씬 효율이 높다”며 “1단위의 에너지를 투입해 약 2단위의 열 출력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운영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트모스제로의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로, 더 많은 개발 작업이 필요하다. 목표는 2026년 초에 제조 공장을 건설해 보일러 시스템 공급을 시작하는 것이다.
스타크는 자사의 시스템이 업계가 요구하는 규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은 대량으로 생산되고 설치가 간단합니다.”
친환경 증기 장비 업계에선, 향후 몇 년간 이에 대한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한다.
마우리지오 프레지오사는 “시장의 최종 소비자가 기대하는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사람과 지구에 주는 영향을 줄이며 지속 가능한 기업 활동을 하는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려 합니다. 규제 압력과 더불어, 이런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친환경 증기 설비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콜로라도에 있는 뉴 벨지움 브루잉에선 현재 양조장의 보일러 중 하나를 열 펌프 시스템으로 교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이는 사업 초기, 지역 축제에서 맥주를 판매하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이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향한 여정의 일환이다.
이 회사는 태양열 패널을 설치하고 폐수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2020년 8월에는 이 회사의 맥주 팻 타이어가 미국 최초로 탄소 중립 맥주 인증을 받기도 했다.
‘2030년까지 완전한 탄소 중립을 이뤄내겠다’는 뉴 벨지움 브루잉의 약속은 이런 식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리고 양조 과정에서 증기를 만드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