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머스크 간 커지는 불화…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과 가장 강력한 정치인이 정면으로 맞대결을 벌이면 무슨 일이 펼쳐질까.
지금 세계는 그 답을 목격하고 있으며,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지닌 두 인물은 의견 불일치를 넘어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의 '스페이스X'사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연방정부와의 대형 계약 철회 가능성을 들먹이며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정부 예산을 수십억 달러씩 절약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론 머스크의 정부 보조금과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라며 협박하는 듯한 게시물을 올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정부 기관과 머스크 간 관계를 갈라놓는다면, 억만장자 머스크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같은 날(5일) 테슬라의 주가는 14% 급락했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의 일방적인 공격만은 아니다. 해당 발언 이후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한편,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감히 끊어보라고 도발했다.
이에 더해 현재 미국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우주비행사와 물자를 보내는데 의존하고 있는 스페이스X사의 무인우주선 '드래곤'을 조기 퇴역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머스크는 진정하기를 촉구하는 X 게시물에 "좋은 조언이다. 알겠다. 드래곤은 퇴역시키지 않겠다"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거의 무한한 자원을 지닌 머스크가 내년 선거 및 예비선거에서 공화당의 경쟁 후보들을 후원하는 방식으로도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5일 저녁에는 갑자기 "진짜 큰 폭탄"을 터뜨리겠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한 미공개 파일에 등장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한편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머스크의 이 같은 주장과 비난에 대해 비교적 소극적으로 반박하며 "이번 일은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자신이 원하는 정책이 채택되지 않아 일론 머스크가 불만을 품은 일에 불과"하다고 했다.
-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는 미국 정부 지출을 실제로 얼마나 줄였나?
- 트럼프의 주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된 10명은 누구?
- 일론 머스크를 둘러싼 논란보다 더욱 심각한 테슬라의 과제
물론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 전체와 벌이는 싸움에서 승리할 수는 없겠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정치적으로, 개인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게 할 수도 있다.
이를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공개 행사에 참석해 머스크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한편,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트루스 소셜을 통해 그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가 몇 달 전 공직에서 물러났다면 좋았을 뻔했다"라고 했다. 그 후로는 자신의 "크고 아름다운" 세금 및 지출 법안 자랑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이날 벌어진 뜨거운 갈등은 쉽게 사그라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고받는 모욕적인 발언과 협박
지난주부터 서서히 시작된 이번 불화는 지난 4일 끓어오르기 시작하더니 5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날 방문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신임 총리가 어색한 침묵 속에 앉아 있는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실연당한 연인처럼 들리는 발언을 했다.
머스크가 자신의 법안을 비판한 데 대해 놀라움을 표현한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가 수억 달러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지난해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하지 못했으리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머스크가 돌변한 이유는 테슬라가 공화당의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 추진으로 피해를 보기 직전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머스크는 곧바로 자신이 소유한 SNS 플랫폼인 X에 접속해 "뭐라는 거야(Whatever)"라고 적으며 2억2000만 팔로워가 보는 가운데 매우 X세대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전기차 보조금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다만 미국에 실존적인 위협 요소인 국가 부채 감소에만 집중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자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난해 대선에서 결국 민주당이 승리했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트럼프를 향해 "정말로 배은망덕하다"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후 오후 내내 머스크는 강력한 공세를 이어갔고, 두 사람 간 갈등은 본격적으로 번졌다.
과거 머스크와 트럼프는 강력하지만 예상치 못한 동맹을 맺었고, 머스크는 결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예산 삭감 권한을 쥔 핵심 직책까지 맡게 되었다. 그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는 연방 기관을 폐쇄하고, 공무원 수천 명을 해고하면서 트럼프 취임 100일 동안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처럼 개성 강한 두 인물이 언제, 어떻게 충돌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추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한동안은 이러한 예측이 빗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머스크의 인기가 떨어지고, 행정부 관료들과 갈등을 빚으며 올해 초 주요 선거에서 정치적 부담이 되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변함없이 그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관계가 소원한 듯 보일 때마다 머스크는 백악관 집무실이나 내각 회의실, 또는 마러라고로 향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기에서 포착되었다.
지난주 머스크가 130일을 끝으로 '특별 공무원'으로서의 시간을 마무리한다고 밝혔을 때도 트럼프는 언젠가 머스크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백악관이 그려진 황금열쇠를 선물하는 등 다정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이제는 백악관의 자물쇠가 다 바뀌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트럼프는 지난 5일 "일론과 나는 좋은 관계였다"라고 발언했는데, 이렇듯 과거형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4일 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미 입국 금지 조치, 하버드에 대한 추가 제재,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음모론 관련 공식 조사 착수 등을 깜짝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머스크의 비판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시도였다는 해석도 있다.
백악관과 친트럼프 의원들은 앞선 머스크의 발언 이후 더 이상 그를 적대시하지 않으며 조심하는 듯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면서…조심스러운 분위기도 끝이 났다.
'제로섬 게임'
이제 관심은 이 불화가 어디로 향할지에 쏠려 있다. 만약 머스크가 트럼프의 법안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재정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지원한다면 공화당은 내부 단속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트럼프가 이미 머스크의 정부 계약을 들먹이며 위협하긴 했으나, 행정부에 남아있는 정부효율부 인사들을 축출하거나, 바이든 행정부가 진행했던 머스크의 사업을 겨냥한 조사를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한편 이번 불화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민주당의 경우 대응법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한때 민주당 지지자였던 머스크를 다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의원들도 거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오랜 격언도 있다.
민주당 전략가인 리암 커는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에 이건 "제로섬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머스크가 민주당 쪽으로 기울수록 공화당에는 손해가 됩니다."
최소한 지금까지 민주당은 한발 물러서서 두 사람의 다툼을 지켜보며 개입하지 않고 즐기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이 싸움이 이어지는 한 그 소음이 미국 정치의 다른 모든 이슈를 덮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갈등은 쉽게 끝날 것 같진 않다.
머스크는 X에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는 3년 반 남았지만, 나는 앞으로 40년 이상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