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스 대표 오늘 미 의회 출석…쿠팡 사태는 왜 미국까지 갔나
쿠팡이 지난해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한국에서 청문회와 경찰 조사 등 고강도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해럴드 로저스 쿠팡 한국 법인 임시 대표가 23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에 출석을 앞두고 있다.
하원 법사위는 지난 5일 서한을 통해 한국 정부의 법 집행이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고 있는지 검토하겠다며 로저스 대표에게 자료 제출과 증언을 요구했다.
이번 로저스 대표의 소환은 공개 청문회가 아닌 디포지션(deposition), 즉 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선서 하에 진행되는 비공개 증언 청취 절차로 파악된다. 미국 의회는 입법 및 감독 권한에 따라 특정 사안에 대해 자료 제출과 증언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절차가 반드시 공식 청문회나 입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조사 과정은 향후 입법 논의나 정책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발생한 쿠팡과 관련한 일련의 사안들에 대해 미국 정치권이 문제 제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정치권의 발언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표적화하고 있다며 미국 하원 법사위가 쿠팡 해럴드 로저스 대표에게 증언을 요구하면서 이번 사안은 급격히 확장됐다.
빌 해거티(공화·테네시) 상원의원은 지난 9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법사위의 쿠팡 소환 소식을 공유하며 "강력한 한미 경제 관계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이 항상 미국 기업을 공정하고 차별 없이 대우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히며 "법사위원회가 중요하고 시의적절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데럴 아이사(공화·캘리포니아) 하원의원도 이날 해거티 의원의 게시물을 공유하며 "의회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미국 노동자와 미국 기업을 옹호한다"고 밝혔다.
하원 무역 관련 위원회 인사들도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13일 열린 하원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회 청문회에서 에이드리언 스미스(공화·네브래스카) 하원의원은 한국이 "미국 기술 리더들을 공격적으로 표적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쿠팡에 대한 차별적 규제 조치가 그 사례"라고 언급했다.
수잔 델베네(민주·워싱턴) 하원의원 역시 "내 지역구에 있는 기업들, 예를 들어 쿠팡으로부터 한국 규제 당국이 약속을 위반하고 있다"는 기업의 우려를 듣고 있다고 밝혔다.
캐롤 밀러(공화·웨스트버지니아) 하원의원도 한국이 최근 "두 명의 미국 경영인을 상대로 정치적 마녀사냥을 시작했다"며 쿠팡 사태를 언급한 바 있다. 두 명의 미국 경영인은 김범석 쿠팡 의장과 로저스 대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원 법사위원장이기도 한 짐 조던(공화·오하이오) 하원의원은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미국과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며 상호 관세 인상 소식을 밝힌 이후 엑스에 "쿠팡과 같은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표적으로 삼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쿠팡 관련 우려를 언급한 바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3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회담에서 밴스 부통령과 쿠팡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김 총리에 따르면 밴스 부통령은 미국 기업인 쿠팡이 한국에서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문의했고, 김 총리는 한국 정부가 차별적 수사를 진행한 바 없다는 입장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밴스 부통령은 이 문제가 양국 정부 간 오해로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공화·민주당 의원과 행정부 인사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쿠팡 사태는 미 정치권의 관심 사안으로 부상했다.
미 의원들은 왜 쿠팡에 관심을 가질까?
그렇다면 한국에서 시작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어떻게 미국 의회의 관심 사안으로 확산했을까.
이 같은 공개 발언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쿠팡의 워싱턴 내 로비 활동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준비 위원회에 약 100만 달러(약 14억6000만원)를 기부했고, 트럼프-케네디 센터에 10만 달러(약 1억5000만원)를 기부한 바 있다.
미국의 비영리 정치자금 감시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쿠팡의 로비 지출은 2021년 94만 달러(약 13억원) 수준에서 2024년 330만 달러(약 48억원)까지 급증했다. 2025년에도 약 227만 달러(약 33억원)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인 트로이 스탠가론 전 우드로윌슨센터 한국역사·공공정책센터 국장은 BBC에 쿠팡의 미국 내 로비 지출 규모는 메타, 구글, 아마존 등 "기술 산업 전반의 기준으로 보면 중간 수준"에 가깝지만, "쿠팡의 로비 활동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 카네기멜론 전략기술연구소 연구원이기도 한 스탠가론 전 국장은 "쿠팡의 로비스트들 중에는 하원 법사위원장 짐 조던과 대럴 아이사 하원의원의 전 보좌관들이 포함돼 있다"며 "이들은 쿠팡 사안에 대해 비교적 강경하게 발언해 온 의원들"이라고 덧붙였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 자료에 따르면, 쿠팡이 설립한 정치활동위원회(PAC)인 COUPAC은 지난해 여러 연방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수잔 델베네 의원과 캐롤 밀러 의원은 지난해 8월 29일과 11월 21일, 각각 5000달러씩 두 차례에 걸쳐 총 1만 달러를 기부받았다. 에이드리언 스미스 의원과 대럴 아이사 의원은 지난해 11월 21일 각각 5000달러를 기부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빌 해거티 상원의원은 4월 29일 3500달러, 5월 13일 1500달러를 받아 총 5000달러를 기부받았다.
미국은 기업 PAC이 연방 후보자에게 선거(예비선거와 본선)별로 최대 5000달러까지 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 선거 주기 동안 동일 후보가 두 차례에 걸쳐 기부받을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치자금 기부와 로비는 미국 정치에서 일반적인 범위의 활동에 해당하며, 특정 의회 움직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로비는 어떻게 정책에 영향을 미치나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국민이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보장한다. 로비 활동은 이 청원권에 근거한 합법적 정치 활동으로 인정된다.
기업이나 단체는 등록된 로비스트를 통해 의회나 행정부를 상대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로비 활동과 지출은 분기별로 공개할 의무가 있어 로비 활동에 투명성을 보장한다.
로비스트는 누구를 상대로 어떤 사안을 논의했는지, 얼마를 지출했는지 보고해야 하고, 이러한 자료는 누구나 검색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나 노조가 의원에게 직접 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대신 정치활동위원회(PAC)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금한 자금을 후보자에게 기부한다.
로비의 핵심은 단순한 자금 제공이 아닌 접근과 설득이다. 기업은 특정 사안을 단순한 기업의 문제가 아닌 정책 문제로 재해석해 정치권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본력과 네트워킹 기술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워싱턴 DC에서 가장 인기 있는 로비스트는 '회전문 인사'로 불리는 전직 국회의원이나 고위 보좌관 출신이다. 이들은 퇴직 후 기업 임원이나 로비 회사로 이동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정부나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 워싱턴 소식통은 BBC에 "팬데믹 이후부터 의회에서 쿠팡 명함이 자주 오갔다"고 전했다. 실제로 쿠팡은 2021년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워싱턴에서 로비 지출을 꾸준히 늘려왔다.
소식통은 쿠팡이 큰 액수의 기부뿐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을 의원들에게 전달하는 이른바 '스몰 로비'와 회전문 인사 고용에 중점을 뒀고, 그 로비의 결과가 지금 워싱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로비는 의회의 관심을 환기하는 통로로 작동할 수 있고, 실제 정책 변화 여부와는 별개로 의회 차원의 문제 제기가 외교·통상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미 의회의 쿠팡 관심, 한국에는 어떤 의미일까?
이번 사안은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 의회가 '차별적 규제'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경우, 이는 향후 디지털 규제나 플랫폼 정책과 관련한 통상 논의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덤 패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반도 담당 보좌관은 지난 10일,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담에서 "쿠팡 관련 사안은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위기로 떠올랐지만, 한미 간 지정학적 이슈로 사실상 전환된 듯 보인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이 미국 기업들을 불공정하게 표적 삼고 있다고 판단하고 "무역 및 관세 분야에 조치를 취할 경우 한국은 상당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워싱턴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한미 관계 전반으로 확대 해석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회의 문제 제기가 정치적 메시지의 성격이 강하며, 실제 통상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스탠가론 전 국장은 "의회의 이번 움직임은 쿠팡이 보다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이 사안에 대한 행정부의 입장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의회의 자체적인 입법활동 부진과 다가오는 중간선거로 인해 올해 안에 새로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며 이번 청문회는 쿠팡 사안에 대한 "한국의 접근 방식에 대해 의회가 불만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현지 소식통은 한미 관계가 중요한 시점에 "의회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면 워싱턴 행정부는 결국 한국 정부에 이에 대해 따질 수밖에 없다"면서도 쿠팡 문제가 한미 통상 문제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미 의회는 엡스타인 파일,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중동 정세, 관세 문제 등 여러 현안을 동시에 다루고 있기에 쿠팡 사안이 워싱턴의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