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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법원: 평등법상 '여성'의 정의는 생물학적 여성

2일 전

영국 대법원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만장일치로 자국 평등법이 정의하는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을 의미한다고 결론 내렸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스 등 영국 전역에서 성에 기반한 권리가 적용되는 방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오랜 법적 다툼의 정점과도 같은 판결이다.

여성 권익 단체 '포 위민 스코틀랜드'가 성에 기반한 보호는 여성으로 태어난 이들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며 스코틀랜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이번 소송에서 대법원은 이들 시민단체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패트릭 호지 영국 부대법원장은 이번 판례가 어느 한 쪽의 승리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며,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역시 해당 법에 따라 차별로부터 보호받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지난 2010년 제정된, 영국 전역에 적용되는 '평등법'의 해석이었다.

법정에서 스코틀랜드 정부는 '성별 인정 증명서(GRC)'를 소지한 트랜스젠더도 생물학적 여성들과 동일한 성에 기반한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호지 판사는 해당 법에서 '여성(woman)'과 '성(sex)'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지가 핵심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만장일치로 지난 2010년 제정된 평등법에서 '여성'과 '성'이라는 용어는 생물학적 여성과 생물학적 성을 의미한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짓밟고 승리했다는 식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권고합니다."

아울러 호지 판사는 해당 법률은 트랜스젠더에게 "성전환이라는 보호받는 특성에 기반한 차별로부터의 보호뿐만 아니라, 본인이 획득한 성별에서의 실질적인 직접 차별, 간접 차별 및 괴롭힘으로부터도 보호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밖에 모인 여성들
EPA
이번 대법원 판례는 해당 법률상 여성의 정의를 둘러싸고 수년간 벌어진 논쟁 끝에 나왔다

스코틀랜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포 위민 스코틀랜드' 운동가들은 법정에서 나오면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이번에 쟁점이 된 평등법은 '성(sex)'와 '성전환(gender reassignment)'를 포함해 다양한 특성에 기반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대법원은 해당 법에서 말하는 '성'이 과연 생물학적 성별인지 혹은 2004년 '성별 인식법' 상 정의된 법적인 '증명된' 성별을 의미하는 것인지 판단해야 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2004년 법에 따라 성별 인정 증명서(GRC)를 취득했다면 모든 목적에 있어" 성별이 바뀐 것으로 간주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포 위민 스코틀랜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용어에 대한 "상식적인 해석"을 요구하며, 성별은 "변경될 수 없는 생물학적 상태"라고 주장했다.

여성 권익 단체인 ‘포 위민 스코틀랜드' 시위대
EPA
판결 발표 날 대법원 밖에 모인 시민단체 운동가들

판결 직후 '포 위민 스코틀랜드'의 공동 설립자 수잔 스미스는 "오늘 판사들은 우리가 늘 믿어온바, 즉 여성은 생물학적 성별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성별(sex)은 현실이며 이제 여성들은 여성 전용 서비스나 공간이 진짜 여성들을 위한 곳이기에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대법원의 판단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존 스위니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정부는 이번 판결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스위니 대표는 SNS를 통해 "이번 판결은 웨스트민스터(의회)에서 통과된 2가지 관련 법률 사이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해주었다"면서 "이제 우리는 이번 판결이 미칠 영향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의 권리 보호가 우리 행동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코틀랜드 정부 대변인은 이번 소송에 대해 정부 내각은 "충실히 임했다"고 강조하며, 현재 '평등 및 인권위원회가' 이번 판결 이후 관련 지침을 수정 중이라고 밝혔다.

영국 중앙 정부 대변인은 이번 판결이 "여성 및 병원, 보호시설, 스포츠 클럽과 같은 서비스 제공자들에 명확성과 신뢰를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단일 성(sex)을 위한 공간은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우리 정부는 지속해서 이를 보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인 보수당의 케미 베이드녹 대표는 이번 판결에 대해 "명백한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개인적으로 괴롭힘 당하거나 일자리를 잃었던 모든 여성들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이 평등법상 모든 트렌스젠더는 성전환을 기반으로 한 차별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강조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보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깊은 우려'

이번 판결 소식이 전해진 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은 SNS를 통해 "이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게 된 배경에는 집요하게 파고든 특별한 스코틀랜드 여성 3명이 있다. 이들은 (소송에서) 승소함으로써 영국 전역의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를 보호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유명 트랜스젠더 권리 옹호 운동가이자 '스코틀랜드 녹색당' 의원인 매기 채프먼은 "인권 측면에서 깊이 우려되는 판례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로 중요한 보호가 사라질 수 있으며, 수많은 트랜스젠더와 그들이 사랑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깊은 불안과 걱정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JK 롤링
Getty Images
작가 JK 롤링은 여성 권익 단체 '포 위민 스코틀랜드'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앞서 '포 위민 스코틀랜드'는 만약 대법원이 스코틀랜드 정부의 편을 드는 판단을 내린다면 병실, 교도소, 대피소 및 지원 단체와 같은 단일 성을 위한 공간 및 서비스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

트랜스젠더들은 이번 사건이 자신들이 성별 전환에 따른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코틀랜드 트랜스'의 빅 발렌타인 대표는 법원 판결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법이 성별 인정 증명서(GRC)를 소지한 트랜스 남성과 여성을 어떻게 인정하는지에 대한 지난 20년간의 이해를 뒤집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트랜스젠더들이 남성을 위한 공간 및 서비스에서도, 여성을 위한 곳에서도 모두 배제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고 시사하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럼 어디로 가길 바라는지, 그리고 이번 판단이 모두에게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상과 어떻게 일치하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사건은 트랜스젠더와 여성의 권리를 둘러싼 오랜 논쟁 끝에 나왔다. 이러한 논쟁에는 남성일 때 강간 범죄 저지르고 여성으로 성전환한 이슬라 브라이슨이 처음에는 여성 전용 구치소에 수감된 일, 여성 간호사가 트랜스젠더 의사의 여성 탈의실 사용에 반대한 뒤 벌어진 국민보건서비스(NHS) FIFE 고용 관련 재판 등이 포함된다.

NHS FIFE 측은 이번 법원의 판결을 "신중하게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생물학적' 성 혹은 '증명된' 성?

재판부는 성별을 "생물학적"이 아니라 "증명된" 개념으로 해석할 경우 남성과 "여성의 정의를 모호하게 하며, 이에 따라 성별이라는 보호받는 특성의 일관성을 해친다"고 밝혔다.

아울러 성별을 '증명된" 개념으로 정의할 경우, 여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트랜스 여성 또한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으로 간주되어 레즈비언 전용 공간이나 단체에 대한 보호가 약화할 수 있다는 예시를 들었다.

이에 더해 탈의실, 호스텔, 의료 서비스, 여학교 및 남학교 등을 예로 들며 단일 성별을 위한 공간이 "일관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성별 기준이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단일 성별을 위한 단체나 자선단체, 여성 스포츠, 공공 부문의 평등, 군대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혼란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발생했으며, 성별을 증명서 기준으로 해석할 경우 발생하는 실질적인 문제들은, 이같은 해석이 옳지 않다는 명확한 증거"라는 설명이다.

‘트랜스젠더의 권리는 인권이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
PA Media
이번 소송은 젠더 이슈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 제기되었다

영국에서 성전환은 법적으로 보호되는 특성이기에,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단일 성별을 위한 공간은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경우" 성별 인정 증명서(GRC) 소지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소재 글라스고 칼레도니안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닉 맥커렐 부교수는 이번 판결로 인해 성별 인정 증명서(GRC)를 지닌 트랜스젠더 여성은 단일 성별을 위한 공간 출입을 제한받았을 경우 자신이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을 펼칠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직장에서도 생물학적 성별을 기반으로 직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인해 단일 성별을 위한 공간을 둘러싼 논쟁이 "해결"되지는 않으리라는 주장이다.

맥커렐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로 인해 하루아침에 트랜스젠더들의 서비스 이용이 중단되는 건 아니"라며 "새로운 정의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따라 서비스 제공자들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맥커렐 교수는 이번 판결이 내려졌다고 해서 여성 스포츠에서의 트랜스젠더 참여에 관한 규정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재검토"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소송의 배경은?

이번 법적 분쟁은 지난 2018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공공 부문 이사회에서 성별 균형을 보장하고자 고안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시작했다.

'포 위민 스코틀랜드'는 의원들이 이 법률의 할당 기준에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고, 이 문제는 스코틀랜드 법원에서 여러 차례 다루어졌다.

스코틀랜드 내에서 가장 최근 벌어진 재판인 지난 2022년에는 스코틀랜드 정부가 승소했다. 당시 쇼나 해일데인 판사는 성별(sex)은 "생물학적 성이나 출생 시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스코틀랜드 의회는 법적 성별 변경 절차를 간소화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영국 중앙 정부가 나서 이를 가로막았고, 이후 스코틀랜드 정부는 해당 개정안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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