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거의 비명도 지르지 못했습니다' … 미사일 폭격으로 폭파된 버스의 승객들을 구출한 소년

지난 13일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2발이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 지역을 덮쳤을 당시, 13세 소년 키릴로 일리야센코는 어머니와 함께 버스에 타고 있었다.
일리야센코는 현지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무언가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떨어지기 시작했다"면서 이후 비명과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회상했다.
어안이 벙벙했던 소년은 무언가 타는 냄새를 맡았고, 버스의 문이 잠겨 있던 탓에 창문을 통해 밖으로 기어 올라가 밖에서 문을 열었다. 그 덕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여러 승객들이 버스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일리야센코는 "승객들은 너무 충격이 심해 거의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면서 "어머니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어머니가 너무 걱정되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불과 몇 분 간격으로 날아든 미사일 2발이 종려주일(부활절 일주일을 앞둔 일요일)을 맞아 외출하던 시민들을 덮쳤고, 이로 인해 최소 3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 사막에서의 거래? … 미국과 우크라, 러시아 휴전 회담 앞두고 회동
-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서 신속한 휴전을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
- 트럼프, 젤렌스키와 통화...'미국이 우크라 발전소 운영' 제안

일리야센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버스 업체 '일렉트로아브토트란스'에 따르면 운전기사를 포함해 버스 안에 있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수미시의 아르템 코브자르 시장대행은 일리야센코가 병원으로 옮겨졌고, 머리에서 파편 1개를 제거했으나 나머지 2개는 제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한 2022년 이후 수미시를 노린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시민들이 충격에 빠진 가운데 사망자 명단이 속속 공개되기 시작했다. 숨진 이들의 직업은 예술가, 변호사, 의대생, 음악가, 학교 교사 등 다양하다.
'수미 국립극장'의 오르간 솔리스트이자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올레나 코후트도 이날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극장 측에 따르면 단원들은 "코후트의 음악, 미소, 친절함"을 결코 잃지 못할 것이라며 "매우 따뜻한 사람이자 진정한 프로"였던 코후트의 죽음을 애도했다.
수미 제2 중등학교의 교사였던 마리나 추데사도 희생자 중 하나다. 추데사는 첫 번째 미사일이 떨어졌을 당시 어머니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2번째 미사일이 떨어지며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학교인 '스타로실스키 리세움'에서는 6학년 학생이었던 막심 마르티넨코와 그의 부모인 나탈리아와 미콜라가 교회에 가고자 외출하던 길에 숨졌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수업, 문화 행사 등이 열리던 수미국립대학의 컨벤션 센터다.
공격 직전만 해도 이곳에는 안데르센의 동화 '돼지치기 왕자'를 원작으로 한 어린이 연극 공연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다 첫 번째 미사일이 건물 지붕을 관통했고, 사진을 통해 건물 잔해로 뒤덮인 내부를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이 지역을 노린 이번 공격에 국제 사회가 비난하고 나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쓰레기 같은 자들만 벌일 수 있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14일 러시아 국방부는 해당 미사일은 수미 지역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군 장교 회의를 노린 것이었다면서,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이곳 주민이자,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돕는 단체의 대표로 활동하는 올렉시 사크노는 BBC 우크라이나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온이 따뜻해졌음에도 시민들은 충격으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조대원들에 따르면 수미 지역의 민가 50채가 피해를 입었다. 사크노 대표는 주민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자 이리저리 애쓰고 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은 최근 러시아가 수미 지역을 포함해 동부 지역에 대한 새로운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주민들은 SNS를 통해 도시를 떠나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다. 일부 뉴스 보도에 따르면 접경 지역 일부 주민들은 이미 대피에 나섰다.
사크노 대표는 지난 3년 동안 수미 주민들은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피난 가방을 싸두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도의 공황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주민들은 앞으로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