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114쪽 분량' 윤석열 탄핵 결정문, 어떤 내용 있었나

헌법재판소가 4일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결정문은 총 114쪽, 9만 2천여자에 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61페이지), 박근혜 전 대통령 (89페이지) 과 비교했을 때 역대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운데 가장 긴 결정문으로 남았다.
그간 논란의 중심이 됐던 탄핵심판 쟁점에 대한 윤 대통령 측 주장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 사안에 대해 매우 중대하게 '대한 국민의 신임을 저버렸다'고 표현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4일 22분 간 선고요지를 낭독한 뒤 오전 11시 22분 '윤석열 파면'을 주문했다.
간결하고, 국민들이 알아듣기 쉽게 작성된 명확한 요지문이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헌재가 대통령의 헌법상, 법률상 권한을 남용했는지 따지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던 만큼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들은 '대통령'과 '권한'이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피청구인은 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한 제22대 국회와의 대립 상황을 병력을 동원하여 타개하기 위해 이 사건 계엄을 선포했다' 등 네 가지의 근거로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는 결론 아래에는 보충의견들도 첨부됐다.
'헌법 위주의 판단'

헌법재판소가 발표한 결정문에 기재된 국회의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 사유는 총 다섯 가지다.
▲계엄 선포,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포고령 발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대한 압수수색, ▲법조인 체포 지시.
또한 마지막으로 헌재는 위 다섯 가지 사안들에 대한 헌법 및 법률 위반의 중대성도 평가했다. 즉, 이러한 전반적인 행위가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할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본 것이다.
헌재는 위의 탄핵 소추 사유들을 각각 평가한 후 모두 위헌으로 판결냈다.
앞서 논란이 됐던 '형법상 내란죄'는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내란죄 철회 논란은 국회 측이 "형법상 내란죄를 탄핵소추 사유에서 사실상 철회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재판이 오래 걸리고, 입증이 어려운 형법상 내란죄를 생략하겠다는 취지였다.
다만 이에 대해 윤 대통령 측은 "내란죄 철회는 탄핵소추서의 80%를 철회하는 것"이라며 각하해야 한다고 반발했지만, 헌재는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후 변론 종결 때까지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4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에서 문형배 재판장은 결정요지를 낭독하며 "동일한 사실에 대해 단순히 적용법조문을 추가, 철회, 변경하는 건 '소추사유'의 추가, 철회,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적법요건에 대해 언급했다.
전 헌법재판소 공보관 노희범 변호사는 이 부분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별도로 판단하느니, 마느니 이런 표현은 안 썼거든요. 형법에 관해서는 굳이 이곳에서 판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겁니다. 헌법 위반 위주로 판단하더라도 탄핵 심판에 있어서 결론을 내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판단한 거예요."
내란죄를 포함한 형법 위반 여부 등은 형사재판에서 밝혀질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탄핵 심판에서까지 확장해 다루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즉, 내란죄를 직접 판단하지는 않았으나 제시한 다섯 가지의 쟁점에 대한 사실관계는 모두 인정함으로써 형사재판에서의 내란죄 적용에 영향을 미치게끔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대통령 탄핵 사건들에 대한 법리는 이와 같이 정리될 것이라는 게 노 변호사의 설명이다.
"직접적으로 내란죄 위반이라는 판단은 안하고 헌법상 위반 사안만 판단한거죠. 하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행위가 내란이란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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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의견은?

114쪽 분량의 결정문 마지막에는 이미선, 김형두, 김복형, 조한창, 정형식 재판장의 보충의견도 추가됐다.
먼저 이미선, 김형두 재판관은 탄핵심판절차에서 전문법칙에 관한 형사소송법 조항들을 완화해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헌법재판소법 제40조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법 제40조는 헌재의 심판절차에 관해 헌재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재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 행정소송법 등 다른 소송절차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복형, 조한창 재판관은 탄핵심판의 중대성, 피청구인의 방어권 보장 등을 고려할 때 헌법재판소가 앞으로는 탄핵심판 절차에 있어 형사소송법상 전문법칙을 보다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정형식 재판관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될 경우 다른 회기 중에도 다시 발의하는 횟수를 제한하는 규정을 입법할 필요성을 시사했다.
노희범 변호사는 "결국 수사 절차에서 수집된 증거 서류를 엄격하게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들과 입법적으로 발의를 제한해야 된다는 등의 법률적 필요성에 대한 내용들이 주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핵 사유를 판단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내용들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굳이 기재가 됐어야했나 싶은 부분들이거든요.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소수 의견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두 재판관이 '위법이다'라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이번 보충 의견은 또 그런 건 아니라는 거거든요."
즉, 8명의 헌재 재판관들이 법리적 논쟁이 거의 없이 '완벽한' 전원일치 판결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장 평의 기간'을 거치고 '최고 분량'의 결정문이 나온 것에 대해서 노 변호사는 "적법 요건을 따지는 데 많이 할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법 요건 주장을 많이 했잖아요. 여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거죠. 이번 사건에서 전원 일치라는 결정이 그걸 보여줍니다."
적법 요건은 어떤 행위를 적법하게 할 수 있는 요건이다. 헌재는 이 사건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가 적법한지를 따지기 위해 계엄 선포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국회 법사위가 조사 없이 탄핵소추을 의결한 게 적법한지 등의 여섯 가지 요건들을 따져 '적법' 판단을 내렸다.
노 변호사는 또 "가급적이면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서 전원일치 의견을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고요. 재판장 개개인이 진보 성향인지, 보수 성향인지에 따라, 즉 이념적 가치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