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한국 입국 왜 다시 줄었나...중국에서 더 좁아진 탈출의 길
코로나19 이후 조금씩 회복되던 탈북민의 한국 입국 흐름에 다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96명으로, 지난해 하반기 131명보다 감소했다.
팬데믹 기간 급감했던 탈북민 입국자 수가 2023년 이후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흐름을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감소는 단순한 등락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오는 통로가 사실상 닫힌 가운데, 중국에서 머물던 탈북민들마저 중국 내 감시 강화로 움직이기 어려워지며 한국행 탈북이 다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민 입국, 왜 다시 줄었을까?
"과거에는 탈북하는 일행을 추적하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일행 속에 스파이를 심어 놓습니다."
"중국 국경을 넘었는데, 메콩강 중간에서 공안이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을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탈북민 구출단체 '나우(NAUH)'가 BBC에 전한 중국 내 탈북민 단속 상황이다.
탈북민 입국자 수가 다시 줄어든 배경으로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코로나19 이후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이후,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탈북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중국 내 불법체류자 단속과 인공지능(AI) 감시 체계가 고도화하며 중국 내 탈북민의 이동과 은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탈북 비용이 크게 상승한 점 역시 탈북 시도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국경이 오랫동안 강하게 통제돼 왔다는 점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이미 중국에 들어와 있던 탈북민들이 더 이상 움직이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복수의 구출 단체들은 BBC에 최근 중국 내에서 탈북민의 이동과 은신, 그리고 제3국으로 탈출 과정 전반이 지난해보다 더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단속과 검문이 잦아지고, 이동 과정에서 위험이 커지면서 구출 성공 사례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북·중 국경이 사실상 봉쇄되며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탈북이 극도로 어려워진 상태에서 현재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민 다수는 이미 중국에 장기간 체류해 온 이들이다.
임순희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선임연구위원은 "이제는 목선 탈출 혹은 DMZ를 건너서 오는 것 말고는 (북한에서 나오는) 실질적인 탈북이 불가능해져 탈북민 입국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탈북 비용 증가 역시 탈북민 구출 활동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다.
나우는 올해 중국 내 탈북민 구출 과정에서 운송 수단과 브로커 비용, 식사와 은신처 비용 등을 포함해 1억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밝혔다.
지철호 나우 정착지원센터장은 1인당 탈북 비용이 "코로나 전에는 180만~200만원 정도였지만, 코로나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라며 "지난해까지는 750만~800만원이었다면, 올해는 100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구출 가능 인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탈북민 입국 감소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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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불안감
현장 활동가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 제한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내 감시 체계가 정교해질수록 탈북민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도 커지고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지 센터장은 탈북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불안함'을 꼽았다. 그는 "현장에서 만나는 탈북민들의 얼굴이나 행동, 언어 자체가 불안하고 항상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중국 내에서 신분 없이 살아가는 탈북민들은 공안에 발각될 경우 강제송환 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살아간다. 15년 넘게 중국에 살았던 탈북민들조차 중국 내에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감시에 노출되며 심리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단체 링크(LiNK)의 박석길 한국지부 대표는 "팬데믹 이후 (탈북) 상황이 계속 어렵다"라며 "올해 중국 내에서 북한 주민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에 대한 체포가 전반적으로" 이어지며 탈북민 구출 활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지난 9월 북·중·러 정상이 모두 참석한 중국의 대규모 열병식이 탈북민 구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큰 정치 행사가 있을 때면 북한 주민을 돕는 사람들은 훨씬 더 조심하게 되고, 활동 속도가 크게 느려지거나 심지어 행사 전후로 (구출 활동이) 완전히 멈추기도 한다"며 이 정치 행사가 올해 탈북민 입국자 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중국 내 감시가 어떻게 강화됐을까?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에 어느 정도 감시와 통제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기술 발전과 맞물려 그 강도가 한 단계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과거에는 중국 공안이 탈북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알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진단이다.
공안이 사진 촬영 앱을 통해 매일 위치를 확인하거나, 정기적으로 거주지를 직접 점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임순희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감시가 중국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의 감시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이러한 통제가 한국행을 선택하게 만들기도 한다.
임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한국으로 오는 탈북민 중 일부는 "감시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불안감을 느끼고 오는 분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중국 내에서 탈북민뿐 아니라 탈북을 돕는 "활동가들에 대한 압박 역시 커졌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회장은 중국 내 불법체류자 단속 강화가 탈북민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민을 겨냥한 조치라기보다는 중국 내부 통제 강화 흐름 속에서 탈북민들이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는 지적이다.
탈북민 감소의 의미는?
한국 통일부는 중국 내 탈북민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통일부는 BBC에 "중국 내 탈북민들은 은둔생활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라면서도 "중국 정부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을 해주고 있지 않아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탈북민 구출이 어려워진 이유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이후 중국 내 관리 체계가 강화됐고, 민간 차원 활동가의 활동 여건이 변화된 것 등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탈북민 한국 입국 수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 탈북민 지원 정책 변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 입국 인원 감소에 따라 교육시설인 하나원 안성 본원과 화천분소 통합 및 인원 재배치 등 효율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의 수는 2009년 최대치인 2914명을 기록한 뒤, 코로나 기간인 2021년에는 최저치 63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 인식개선 및 우리사회 구성원으로 통합 강화 차원에서 (탈북민) 명칭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러한 탈북민 입국자 수 감소는 탈북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더 위험해지고 있다는 환경 변화를 암시한다.
이는 구출 가능성을 낮추기도 하며 체포와 강제송환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한 정보 접근에 제한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임 선임연구위원은 감소 추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탈북이) 어려워지면서 우리가 북한 내부의 상황을 알 수 없었던 상황으로까지 갈까 봐 굉장히 걱정스럽습니다. 북한 내부 정보가 나오지도 않고, 우리의 정보가 들어가지도 않는 1990년대 이전 상황이 올까 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중국 내 감시와 통제가 강화됐다고 해서, 탈북 시도나 구출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다.
나우는 올해 1월과 3월, 그리고 9월과 10월에 걸쳐 총 9명의 탈북민을 구출했고, 그중에는 일흔에 가까운 고령의 탈북민도 있었다. 링크도 올해 중국에서 태어난 탈북민의 아동 4명을 포함해 11월 초까지 총 15명을 구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