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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축구 경기에서 러시아 국가가 연주된다?...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전략

2024.09.13
축구, AK-47 소총, 그래피티용 스프레이 페인트를 묘사한 이미지
BBC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는 미디어 및 문화 사업을 통해 아프리카의 언론인, 인플루언서,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

10대 축구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러시아 국가를 듣는다. 경기장 근처에 열린 그래피티 페스티벌에서는 예술가들이 모여 벽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이곳은 러시아가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는 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인 부르키나파소이다.

BBC가 발견한 증거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디어와 문화 사업을 통해 아프리카의 언론인, 인플루언서,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

이러한 행사를 추진하는 단체는 “러시아와 아프리카 사이 정보 가교”를 자처하는 신설 러시아 언론 기관인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다.

현재는 해체된 용병 단체 ‘바그너 그룹’이 설치한 조직을 계승한 단체로, 전문가들은 러시아 보안국과 관련 있다고 추정한다.

바그너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지 1달 후인 2023년 9월에 등록된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는 프리고진 산하 해체된 기업의 직원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특히 사헬 지역의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의 군사 정권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쿠데타가 발발한 이들 국가에서는 서방 국가가 지하디스트 단체 문제에 맞서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으며, 식민지 잔재라고 비난하며 프랑스와 같은 서방 동맹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대신 이들은 러시아로 방향을 틀었다.

아이비 세토르지에
Russdiary (Telegram channel)
가나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아이비 세토르지에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를 ‘러시아의 분쟁 지역’으로 표기한 일련의 기사를 발표했다

현지 문화 행사 외에도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는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로 된 뉴스 웹사이트와 동영상 채널, 텔레그램 채널 5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 한 채널은 구독자 수가 약 6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일부 텔레그램 채널은 프리고진이 이끌던 기업에서 개설한 기존 채널을 ‘재활용’한 것이다. 이들은 서아프리카에서 바그너의 군대를 사실상 대체한, 러시아 국방부의 준군사 단체인 ‘아프리카 군(African Corps)’을 최초로 홍보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채널에는 친러시아 성향의 서사가 가득하며, 허위 정보, 특히 미국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가득하다.

‘아프리카 이니셔티브’ 웹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미국이 아프리카를 생물무기의 생산 및 실험대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오랫동안 크렘린궁이 주장해 온 허위 정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생물 연구소가 우크라이나에서 아프리카로 이전된다는 크렘린궁의 근거 없는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기사도 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프리카 소재 미국의 생물 실험실 숫자가 증가하고 주장하면서 “연구 및 인도주의 프로젝트라는 겉껍질 아래 아프리카 대륙이 미 국방부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며 미국이 아프리카 지역에서 비밀리에 생물학적 실험에 관여하고 있다는 주장을 늘어놓는다.

‘폴란드 국제 문제 연구소’에서 중동 및 아프리카 프로그램 책임자인 제드레이 체렙 연구원은 과거 프리고진의 선전선동은 주로 프랑스를 겨냥했으나,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는 “미국을 더 많이 겨냥하고 있다”면서 “반미 성향이 훨씬 더 강하다”고 지적했다.

전쟁 ‘투어’

지난 6월, 8개국 출신 블로거들과 언론인들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를 7일간 둘러보는 "프레스 투어(기자단 현장 방문)"에 초대받았다. 해당 여행은 러시아 국영 언론사와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 관료들이 기획한 것으로, 참가자들은 모스크바 소재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본사도 방문했다.

러시아에서 공부한 과학자이자 해당 ‘투어’에 참여한 가나 출신 블로거이기도 한 레이몬드 아그바디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우리가 얻는 정보는 이번 전쟁이 실제로 무엇에 관한 것인지 설명해주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해당 투어에는 각각 가나, 말리 출신 언론인도 함께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에 대한 여러 거짓 주장을 퍼뜨리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한 미국인 인플루언서 잭슨 힝클도 참여했다.

친크렘린 성향의 한 뉴스 웹사이트는 이번 기자단 현장 방문에 대해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귀국했으나, 만족해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을 둘러보는 기자들의 모습
mariupol-news.ru
아프리카 언론인들은 7일간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 지역을 둘러보는 여행을 다녀왔다

참가 언론인들은 모스크바 방문 이후 1250km를 이동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의 항구 도시 마리우폴을 찾았다. 이후 자포리자 내 마을들을 방문했는데, 모두 러시아가 이번에 우크라이나를 전면으로 침공한 후 초기에 점령한 지역이다.

방문 기간 내내 러시아 관리들이 참가 언론인들과 동행했으며, 러시아 군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상징하는 ‘Z’ 표시가 그려진 차량을 타고 함께 이동했다.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는 이미 지난 5월 말리의 블로거들을 위해 러시아가 점령한 마리우폴을 둘러보는 별도의 "프레스 투어"를 조직한 바 있다.

여러 국가에서 온 언론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자단 현장 방문은 특정 국가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곧잘 활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컨트롤 리스크’와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수석 분석가인 베벌리 오칭은 “서방 세계 언론은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주요 이슈에 대한 보도를 위해 (언론인을 대상으로) 꾸준히 진행되는 교육에 집중하는 반면, 러시아는 이러한 가이드 투어를 특정 서사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며 중국도 비슷한 행사를 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칭 연구원은 아프리카 기자들이 직접 여행을 다녀와 보도하기에 “진정성이 있다는 인상을 준다”면서 왜냐하면 “러시아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려는 더 큰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 기자들이 직접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다가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해당 투어 이후, 아프리카 언론인들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도시를 ‘러시아 내 분쟁 지역’이라고 지칭하고, 점령지에 러시아가 세운 정부 관료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러시아 정부의 선전선동을 그대로 반영하고,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에 대한 러시아 측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다.

‘멀티미디어 그룹’에서 운영하는 영문 웹사이트 ‘조이온라인’에 올라온 가나 출신 언론인 아이비 세토르지에의 기사는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지아 지역(주도는 현재 우크라이나가 통제 중이다)은 “유럽 러시아(유럽에 속해 있는 러시아의 부분) 남부에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토르지에 기자는 BBC에 해당 지역이 러시아에 의해 불법적으로 합병됐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이 같은 보도는 자신만의 판단에 기반한 것으로, 러시아로 “기울어진” 게 아니라고 말했다.

사헬 지역에서의 아프리카 이니셔티브 활동
BBC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는 아프리카 사헬 지역에서 그래피티 페스티벌, 축구 경기, 영화 상영회, 응급처치 교육과 같은 행사와 사업을 후원한다

무술 대회와 그래피티 페스티벌

"프레스 투어" 외에도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사헬 지역 지부는 러시아의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한 지역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BBC는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텔레그램 채널, 페이스북 페이지를 모니터링했는데, 이곳에는 이들이 현지에서 벌이는 활동에 대한 영상, 이미지, 보고서가 공개된다.

부르키나파소에서 BBC는, 러시아 국가가 연주되는 축구 대회, 학교에서 러시아에 대해 배우는 ‘우정 수업’, 소련의 무술인 ‘삼보’ 대회, 시민과 경찰을 위한 응급 처치 교육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푸틴 대통령과 부르키나파소의 전 지도자 토마스 싱카라를 그릴 수 있는 그래피티 페스티벌 등의 행사가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후원으로 열리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아프리카 이니셔티브 회원’들이 현지 주민들에게 식료품을 나눠주는 모습도, 바그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바그너 활동에 대한 내용을 담은 ‘더 투어리스트’ 상영회가 열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찾아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배후는?

‘폴란드 국제 문제 연구소’의 체렙 연구원은 “원래 ‘아프리카 군’은 프리고진이 만들어놓은 모든 군사적 조직을 지우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고자 세워졌다. 하지만 종종 ‘아프리카 군’의 미디어 센터 역할을 했던 ‘아프리카 이니셔티브’가 이미 있던 모든 자산을 재사용하는 데 더 유연하고 편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체렙 연구원의 지적이다.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대표이자 편집장은 아르톰 쿠레예프로, 러시아 전문가들에 의해 FSB 요원으로 확인된 인물이다. 쿠레예프는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모스크바 소재 싱크탱크 ‘발다이 클럽’과 관련돼 있다.

아울러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웹사이트에 부편집장으로 등록된 안나 자마라에바는 전 바그너 언론 담당자이다.

프리고진의 ‘정치적 기술자’로 알려진 빅토르 루코벤코는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부르키나파소 사무소를 설립했으나, 최근 몇 달 전 해당 직위를 떠났다. 범죄 전과가 있는 러시아 민족주의자인 루코벤코는 모스크바에서 스위스 시민을 공격한 혐의로 5년을 복역했다. 해당 스위스 시민은 이후 사망했다.

한편 BBC는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에 연락해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모스크바 소재 사무실은 취재진의 문의를 받았다고 확인해주긴 했으나, 이메일로 답장을 받지 못했다. 이후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는 BBC에 보냈다고 주장하는 답장을 인용해 BBC가 웹사이트에 게재한 보도에 대한 반응을 내놨다.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는 "축구 대회와 같은 사헬 지역에서의 인도주의적 활동"이 "러시아 축구를 개선하고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영화 상영과 학교 수업의 목표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위대한 러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라 밝혔다.

이 단체는 BBC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기사를 반복하고 옹호했지만, 새로운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지칭한 것에 대해서는 러시아 헌법과 러시아 법률을 언급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지난 2월, 미국 국무부가 공개한 한 보고서에 대응해 ‘아프리카 이니셔티브’ 웹사이트에는 기사가 올라왔다. ‘아프리카 이니셔티브’ 편집부는 “러시아에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고, 아프리카에 러시아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며 “다양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서방 국가에 대한 비난 등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는 동안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는 사헬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8월 마지막 주에는 부르키나파소 출신 학생 약 100명이 러시아에서의 교육 기회에 관한 강연에 참석했다.

강의 이후 촬영된 영상 속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한 십대 청소년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러시아의 문화와 양국 정부 간 관계에 대해 배웠다”고 말한다.

*참고: 이 기사는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주장을 반영하여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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