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글로벌 관세 10%에서 15%로 인상 선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로 도입한 글로벌 관세를 1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연방대법원이 그의 기존 수입 관세 조치를 무효화한 판결을 내린 이후 나온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법원에 의해 폐기된 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소셜을 통해, 해당 관세율을 지금까지 한 번도 활용된 적 없는 무역법이 허용하는 최대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법은 행정부가 의회 승인을 받기 전까지 약 5개월 동안 새로운 관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당초 10% 관세는 오는 24일 화요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인상된 15% 관세가 같은 시점부터 적용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BBC는 이에 대해 백악관에 입장을 문의한 상태다.
1974년 무역법(Trade Act) 122조에 따른 임시 조치인 15% 글로벌 관세는 앞서 미국과 10% 관세 합의를 맺었던 영국과 호주 등 국가들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관세 인상을 결정했다고 밝히며, 전날 내려진 판결을 "터무니없고, 형편없이 작성됐으며, 극도로 반미적인 관세 관련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연방대법원은 6대 3 의견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광범위한 글로벌 관세를 도입한 것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조치라고 판단했다.
가장 최근 정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IEEPA를 활용해 최소 1300억달러(약 188조3000억원) 규모의 관세를 징수한 상태다.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법원의 일부 구성원들이 부끄럽다"고 말하며, 자신의 무역 정책을 기각한 대법관들을 "바보들(fools)"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관세 무효 판결은 진보 성향 대법관 3명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닐 고서치 대법관의 찬성으로 결정됐다.
반면 보수 성향의 클래런스 토머스, 브렛 캐버노,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3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그의 경제 정책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로, 그는 이를 통해 기업들이 해외가 아닌 미국 내에서 투자하고 생산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대통령 권한에 대한 중대한 견제이자, 그의 2기 국정 과제에 큰 타격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가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는 규모인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지만, 이번 주 미국의 무역적자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무역적자는 2024년 대비 2.1% 확대돼 약 1조2000억달러(약 1783조2000억원)에 달했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철강 가공업체 '말린 스틸 와이어 프로덕츠'를 운영하는 드루 그린블랫 대표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제조업 일자리를 통해 중산층으로 올라설 기회를 가졌던 미국의 저소득층에게는 후퇴"라고 말했다.
반면 버지니아주의 대두 농부이자 전미흑인농민협회 설립자인 존 보이드는 "나에게는 엄청난 승리이며 대통령에게는 큰 패배"라고 평가했다.
그는 "사람들이 (판결을)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패배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의 전 무역 고문이자 컨설팅업체 SEC 뉴게이트의 이사인 앨리 레니슨은 "자유무역에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무역 환경이 훨씬 더 복잡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기업들이 앞으로 관세 정책과 관련해 "훨씬 더 파편화된 접근 방식"을 취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판결 후 미국 기업들은 1974년 무역법 122조에 따라 대부분의 상품을 미국으로 수입할 때 15%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다만 핵심 광물, 금속, 의약품 등 일부 품목은 관세 적용에서 제외된다.
한편 다른 미국 법률을 근거로 도입된 철강, 알루미늄, 목재, 자동차에 대한 별도 관세는 연방대법원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백악관 관계자는 지난 20일 영국을 포함해 미국과 기존 무역 합의를 체결했던 국가들도 이전에 협상한 관세율 대신 무역법 122조에 따른 글로벌 관세 적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철강, 알루미늄, 의약품, 자동차, 항공우주 분야 등 영국의 대미 교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야에 대한 기존 합의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정부는 영국의 "대미 특혜 무역 지위"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해당 합의가 유지될지 여부는 "미국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영국상공회의소의 무역정책 책임자인 윌리엄 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 대응이 "영국 기업들에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기업 단체 대표는 새로 도입된 15% 수입 관세가 "무역에도,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도 모두 악영향을 미치며 세계 경제 성장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5% 관세율을 공식 발표하기 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가 상황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며 "가장 공정한 규칙은 상호주의에 기반해야 하며 일방적 결정에 따른 피해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역시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경제에 "독"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메르츠 총리는 예정된 미국 방문을 앞두고 유럽연합(EU) 국가들과 공동 대응 입장을 마련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과 미국 경제에 가장 큰 독은 관세를 둘러싼 지속적인 불확실성"이라며 "이 불확실성은 반드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은 소비자와 기업들이 불법적으로 부과된 관세 환급을 요구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다만 대법원은 실제 환급이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환급이 이루어지려면 법적 다툼이 불가피하며, 그 과정이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미 여러 기업과 무역 단체들은 환급을 요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미국상공회의소의 닐 브래들리 정책 책임자는 "허용되지 않은 관세를 신속하게 환급함으로써 전국 20만 개 이상의 중소 수입업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며 올해 경제 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백만 개 미국 기업을 대표하는 전국소매연맹 역시 법원에 "미국 수입업체에 관세 환급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보장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환급을 통해 경제적 활력이 만들어지고 기업들이 사업과 직원, 고객에게 재투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주를 대표하는 민주당 소속 마리아 캔트웰 상원의원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정부가 기업들에 관세를 환급할 계획이 있는지 질의했다.
그는 서한에서 "이번 행정부가 미국 기업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수천억달러를 징수했고 이제 이를 환급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관세 납부자들에게 공정하고 신속하게 환급할 계획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반면 루이지애나주 공화당 소속 존 케네디 상원의원은 민주당이 환급을 강하게 추진할 경우 오히려 선거 등에서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세 환급이 미국 기업 사회에 호재로 작용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가 "강하게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